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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사기자 ro@kyunghyang.com

ㆍ중남미·아시아 망친 초긴축 프로그램
ㆍ동유럽에도 요구

1990년대 동아시아 외환위기 이후 국제통화기금(IMF)은 ‘선진국 금융자본을 위해 빚을 받아오는 대행업체’란 오명을 썼다. 구제금융국에 대한 고금리와 재정긴축, 시장 전면개방 등 혹독한 요구조건 탓이었다.

외환위기는 94년 멕시코 등 중남미 국가들을 시작으로, 97년 한국을 포함해 인도네시아·태국 등 동아시아 국가들로 옮아갔다. 이후 98년 러시아·동유럽 국가들로 이어졌고, 99년엔 브라질을 강타했다. IMF의 판박이식 처방의 결과는 대체로 참담했다. 고금리로 내수기반이 붕괴했다. 국내 기업들이 초국적 투기 자본들에 헐값 매각되는 일이 속출했다. 예외없이 농민·빈곤층·노동자는 고통을 받았으며 사회 양극화가 심화됐다.


중남미 국가들에선 80년대 초 IMF 프로그램이 적용되면서 ‘신자유주의 실험’이 시작됐다. 이후 이들은 ‘잃어버린 10년’의 성장을 만회하기 위해 지금도 고전 중이다. 아르헨티나는 95년 이래 꾸준히 두 자리 수준의 실업률을 벗지 못 하고 있으며 2002년 또다시 디폴트(채무불이행)로 국가부도사태를 맞았다. 멕시코에선 농민반란이 일어나는 등 정치·사회적 불안으로 큰 비용을 치러야 했다. 계속되는 금융 불안으로 지난 4월 또다시 470억달러의 구제금융을 신청했다.


동아시아의 경우 중남미와는 달랐다. 외환위기 당시 이들의 거시경제상황은 나쁘지 않았다. 흑자재정에 인플레이션 수준도 낮았다. 아시아의 위기는 높은 단기외채 비율, 국제적인 환투기에 의한 것이었다. 국가채무가 없는 이들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았다. 그런데도 초긴축 프로그램이 강요됐다. 기업부채 비율이 높았는데도 초고금리 정책을 추진해 기업들이 줄줄이 파산했다. 은행들이 부실채권을 떠안아 문을 닫는 일이 속출했다. 인도네시아에선 석유에 대한 정부 보조금 폐지로 폭동이 일어났고, 태국 바트화 환율은 IMF의 호언장담과 달리 심각한 폭락을 거듭했다. 반면 서방의 금융기관들은 부실 기업들을 매각·분할하면서 큰 이득을 봤다. 오히려 같은 위기 상황에서 IMF 프로그램을 거부한 말레이시아는 신속한 경제회복세를 보였다.


최근 또다시 신흥국들의 IMF행이 이어지고 있다. 경기침체가 계속되면서 상당수 동유럽 국가들이 구제금융을 신청한 상태다. 많은 이들이 현재 동유럽의 위기가 과거 동아시아 위기와 흡사하다고 지적한다.


10년 만에 수면 위로 떠오른 IMF는 ‘가진 자만을 위한 조직’이란 비난에서 벗어나기 위한 제스처도 보이고 있다. 지난 3월엔 ‘신축적 신용공여제도’를 도입했다. 일시적 유동성 위기에 빠진 우량 회원국에 까다로운 조건없이 자금을 이용할 수 있게 하는 제도다. 지난달엔 루마니아에 대한 지원 조건으로 내걸었던 재정적자 목표를 대폭 높여주기도 했다. 합의 당시 IMF가 예상했던 루마니아의 경제성장률이 크게 빗나간 탓이다. 그러나 강도 높은 긴축재정 요구 등 기본 기조는 그대로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장하준 교수는 지난 4월 한 인터뷰에서 “IMF는 ‘우리가 동아시아 금융위기 때 배워서 달라졌다’고 주장하지만 최근 동유럽 국가들과 체결한 조약들로 미뤄 달라진 게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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