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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세|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ㆍ집권세력 성격따라 부의 향배 좌우
ㆍ다수가 원하는 정권·제도 실현돼야

시장의 생산과 결합한 민주주의는 평등할 수도 평등하지 않을 수도 있다. 정치하기 나름에 따라 불평등 민주주의가 나타난다. 최근 미국의 경험연구는 공화당 집권 때보다 민주당 정부에서 사회적 양극화가 완화된다는 것을 제시하여 주목을 끌었다.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사람들은 불평등이 과연 민주주의와 공존할 수 있을 것인가에 주목했다. 시장은 애덤 스미스가 말한 것처럼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움직이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정치의 손에 의해 규제된다. 또한 역사는 방치된 시장이 불평등을 조장하여 사회적 평화를 위협했다는 사실을 증언한다.

최근의 잇단 금융시장의 실패에서 여실히 드러난 것처럼 정치는 규제를 통해 사회적·경제적 불평등의 향배에 심대한 영향을 준다. 불평등의 존재와 정도는 집권세력이 누구냐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보수와 진보는 경제정책 면에서 크게 다르기 때문이다. 1990년대 이전 한국 사회가 급속한 경제발전을 하는 동안에는 상대적으로 경제적 불평등이 큰 문제가 되지 않았으나 고도성장기가 끝나고 안정기에 들면서 불평등은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올랐다. 
 

철문 틈으로 보이는 썰렁한 풍경의 국회의사당. 사회적 다수가 원하는 정치가 이뤄질 때 사회적 불평등 해결이 가능하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사회적 양극화는 정책상 보수정부에서 심화되기 쉽다. 정부 수립 이후 60년 동안 보수세력은 50년 집권한 반면 진보세력의 집권은 불과 10년에 불과하다.

10년을 맡았던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말로는 진보정치를 표방했으나 실질적으로 중산층·서민의 이익을 향상시키지 못했고, 그 결과는 이명박 정부의 등장이었다. 한국 정치가 부패와 유착하고 나아가 고비용구조에 의지하면서 정치인은 여야를 가리지 않고 돈 많은 사람에게 의존하지 않을 수 없다. 기부금에 의존하는 정치인은 기부자의 이해를 외면할 수 없다. 결국 돈이 정치에 영향을 주는 것이다.

한편으로 정치는 부의 향배를 결정하기도 한다.
공공정책은 경제의 규모는 물론 부의 분배와 분포에도 결정적 영향을 준다. 공공정책의 방향은 집권정부의 정치적 성격에 따라 좌우된다. 보수정부는 실업보다는 물가잡기 그리고 누진적 조세정책을 선호하는 반면 진보정부는 고용문제를 중시한다.
 
한국의 역대 정부는 정책면에서 진보적이기보다 보수적이었다. 가장 진보적으로 평가되는 노무현 대통령조차 정서적으로는 진보적이었으나 한나라당과의 연대를 공개적으로 요청할 정도로 진보와는 거리가 멀었다.

미국발 금융위기로 많은 영향을 받은 한국 사회에서 경제적 불평등은 눈에 띄게 심각해졌다. 소득불평등 정도를 나타내는 지니계수는 외환위기 이후 계속 악화돼왔다. 비정규직은 지속적으로 확대되어 오히려 정규직을 압도할 정도다. 장기간의 소득격차 확대가 중산층 감소를 초래해 90년 74.2%였던 도시가구 기준 중산층 비율은 2000년 68.5%에서 2008년 63.3%로 감소했다. 많은 사람들의 예상과는 반대로 진보정부를 자임했던 10년 동안에도 중산층이 감소했다.

사회적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다수가 원하는 정치가 실현되어야 한다. 문제의 해결은 중산층 이하의 사람들이 정치적으로 각성해 자신의 이익을 대표하는 정당에 표를 던지는 길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다음의 세 가지 요인이 불평등의 정치를 고착시킨다. 평등의 정치를 세우려면 이 세 가지 요인을 제거 또는 완화해야 한다.

첫째, 사회적 다수를 점하는 계층을 위한 정치가 되려면 이들 다수가 정치에 참여해야 한다. 그러나 정치적 동원 역시 자원의 문제여서 돈 많은 사람들은 손쉽게 정보를 얻는 반면 중산층 이하 일반 대중은 투표에 필요한 정치 정보를 충분히 갖고 있지 않다.

둘째, 진보정치를 가로막는 것은 지난 20년 이상 응결된 지역주의다. 중산층과 서민들은 자신의 이익을 옹호하는 진보정당이 집권하면 경제적 형편이 나아질 텐데 왜 보수정당을 찍어왔는가? 지역주의 투표의 가장 큰 문제는 지지층에 대한 책임성이 없다는 점이다. 책임성이 취약한 지역주의 정당은 자신들을 지지해준 중산층과 서민의 이해를 대변하지 않고 지역주의 기반을 공고하게 만드는 데만 관심을 둔다.

셋째, 현행 정치제도 역시 불평등의 정치를 재생산하는 데 기여한다. 현재와 같은 소선거구제와 양당제, 대통령중심제 구도하에서 소수정당을 찍어봐야 사표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은 중산층·서민 투표자는 지역주의의 포로로 전락한다. 소수정당의 존립을 허용하는 비례대표제가 도입된다면 서민의 투표는 보다 더 자신의 이해를 대변하는 정책정당으로 향할 것이다.

민주주의에서 경제는 정치에 의해 견인된다. 정치의 승패는 선거에서 결정된다. 이명박 대통령은 선거에서 가장 많은 표차로 상대후보를 제압했다. 한국 민주주의는 그동안 너무 불평등했다. 이제는 보다 더 평등한 민주주의를 가질 때가 되었고, 평등의 정치를 여는 물꼬는 서민과 중산층을 대변하는 소수정당의 원내 진입이다. 이들의 원내 진입을 보장하는 정치제도가 필요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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