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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사기자 ro@kyunghyang.com

ㆍ각국 정부 글로벌 위기후 ‘시장 교정’나서

지난해 8월,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국가의 귀환’을 전망했다. 시장의 탐욕을 제어하지 못한 결과 심각한 글로벌 위기가 발생했고, 그 반성으로 국가가 경제무대에 복귀할 것이라는 예고였다. 실제로 위기 이후 ‘큰 정부’의 시대가 도래했다. 각국 정부는 앞다퉈 ‘시장 교정’에 나섰다. 특히 각 정부는 이번 위기의 주요 진원지인 금융권의 메커니즘을 손질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미국·유럽 고삐풀린 금융 감독강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지난 14일 월가의 심장부인 페더럴홀 연설에서 “우리는 이번 위기의 핵심인 무모한 행동과 통제되지 않은 과잉 상태의 옛날로 돌아가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지난 6월 발표한 ‘금융개혁안’ 처리에 대한 강한 의지를 다시 천명한 것이다.
이번 개혁안은 대공황 이후 최대의 금융규제 시스템 개혁으로 평가받는다. 골자는 고삐 풀린 금융권을 규제하는, ‘감독 강화’다. 금융감독협의회를 신설하고,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금융부문 전반에 대한 감독권한도 대폭 강화했다. 또 부동산담보대출(모기지) 등 소비자들과 밀접한 금융상품을 감독하는 소비자금융보호청을 신설하고, 실패한 대형 금융회사들의 파산 절차가 쉽도록 그 권한을 정부에 부여했다.

유럽에선 영국이 금융개혁의 선봉에 섰다. 영국 재무부는 미국에 이어 지난 7월 금융시장개혁안을 발표했다. 재무부 장관을 의장으로 하는 금융안정위원회(CFS)를 신설하고, 금융감독원(FSA)의 제재 권한을 대폭 높이는 등 역시 금융감독을 강화하는 내용이다. 금융위기 당시 엄청난 자본을 투입해 비대해진 은행들에 대한 규제 강화 조치도 이어졌다.
영국의 로드 터너 금융감독원장은 지난 2일 “대형 은행의 파산을 쉽게 하도록 하는 법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부가 위험한 금융기관들의 자기자본비율을 일반적인 건전성 수준보다 높이도록 강요할 권한을 갖게 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독일과 프랑스는 금융업 종사자들의 성과급 상한제를 강력 주장하고 있다.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최근 다른 나라 정상들에게 보낸 서한에서 보수 지급에 대한 엄격한 제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지난 16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금융안정위원회(FSB·모든 G20 국가들이 참여하는 금융시스템 관리감독기관) 2차 총회에선 ‘금융회사 보상원칙의 이행 가이드라인’을 마련했다. 금융회사들의 ‘보너스 잔치’에 제동을 건 것이다.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은행 등 금융회사들은 임직원들에게 성과급을 지급하기에 앞서 독립적인 이사회의 감독을 받아야 한다.

미 의회도 올초 성과급 지급 제한 내용을 담은 법안을 통과시켰다.


일본 하토야마 정부도 규제 착수

54년 만에 정권교체를 이룬 일본 역시 규제 개혁에 본격 착수할 전망이다. 하토야마 정부는 기업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고 주주들을 보호하기 위한 법률 도입을 약속했다. 또 은행의 중소기업 대출 관련 정보를 공개하도록 해 중소기업 대출을 확대할 계획이다. 앞서 지난 6월 일본 금융청은 모든 대출업체의 등록 요건을 강화하는 내용의 법안을 시행했다. 또 대출 규모의 상한선을 설정하는 총량규제제도도 도입했다.

이번 금융위기의 뇌관이 된 헤지펀드 등에 대한 규제도 이뤄지고 있다. 독일과 프랑스가 주도하는 유럽위원회(EC)는 지난 3일 헤지펀드 및 사모투자펀드 규제안을 내놨다. 세계증권시장 감시문제를 협의하는 국제기구인 국제증권감독기구(IOSCO) 역시 금융위기 재발 방지를 위한 글로벌 차원의 헤지펀드 규제 기본지침을 지난 6월 발표했다.


스위스 은행들도 은닉계좌 공개키로

조세 피난처 국가들은 꼬리를 내리고 있다. 각국 정부가 금융거래의 투명성을 높이는 취지에서 ‘조세 피난처와의 전쟁’을 선포했기 때문이다. 스위스 투자은행 UBS는 지난달 미 법무부와 미국인 고객 1만여명의 비밀계좌를 공개하기로 합의했다. 대표적 조세 피난처들도 사실상 은행 비밀주의를 포기하고 있다.
리히텐슈타인은 지난달 자국 은행에 은닉된 20억~30억파운드 규모의 영국인 비밀계좌 5000여개의 정보를 영국 정부에 넘겨주기로 했다. 지난 3월엔 케이맨제도, 버뮤다제도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에 맞춰 자국 은행의 고객 정보 제공에 협력하겠다고 했다. 싱가포르는 지난 6월 조세 피난처 논란을 막기 위해 다른 국가들과 이중과세방지협정을 맺어 고객 정보 교환을 허용하도록 세법을 개정하겠다고 발표했다.

각 국가들 사이에 이 같은 인식이 확산되자 국제 공조도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24~25일 미국 피츠버그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3차 정상회의에서도 금융위기 재발을 막기 위한 금융 규제 강화가 중점적으로 논의될 예정이다. G20 정상들은 지난 1, 2차 회의에서 다양한 금융시스템 규제 합의를 이끌어냈다. 유럽연합(EU) 역시 지난 5월 금융감독체계 개편안을 채택했다. 지난 17일엔 비공식 회의를 갖고 금융기관의 성과급 제한 규정을 G20 회의에서 밀어붙이기로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장은 스스로 기능할 수 없다는 사실이 많은 사례를 통해 나타나고 있다. 국가의 정치적 개입은 피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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