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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희진기자 worldhj@kyunghyang.com

ㆍ‘시장경제는 망상’ 지적한 경제인류학자
ㆍ‘국가·사회의 시장복속 결과’ 명확히 그려

 


칼 폴라니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믿는 대로 시장은 정말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합리적인 질서를 스스로 유지하는 걸까.
 
헝가리 출신 경제인류학자 칼 폴라니(1866~1964)는 이 명제에 동의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저서 <거대한 전환>을 통해 “시장 스스로의 조정으로 재화의 생산과 분배의 질서를 유지하는 ‘자기조정 시장경제’는 도달할 수 없는 적나라한 유토피아’라고 지적했다.

책 <거대한 전환>을 번역한 홍기빈 금융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칼 폴라니의 핵심 주장은 시장경제의 비인간성이나 비합리성을 고발하려고 한 것보다 시장경제란 현실과 동떨어진 망상에 불과하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스스로 수요와 공급을 조절해 균형을 유지하는 ‘자기조정 시장’ 논리는 국가를 배제한다. 이 논리는 시장 역시 인간의 필요에 따라 자연적으로 생겨났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그러나 폴라니는 이런 주장이 시장자유주의자들이 만들어낸 하나의 발명품이라는 것을 역사 연구를 통해 증명해나간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오늘날 시장과 비슷한 전국적 시장을 탄생시킨 것은 16세기 이후 중앙집권적 절대주의 국가에 의해서였다. 중상주의를 신봉한 국가는 세수를 늘리기 위해 길드의 폐쇄성을 깨고 보편적인 시장 창출에 앞장섰다. 시장의 보편화는 인간의 필요에 의해 자연적으로 탄생된 것이 아니라 국가의 개입 결과인 것이다.

그는 또한 최소 200년 전만 해도 시장경제가 보편적인 경제 형태가 아니라 ‘부수적인 존재’로 억압돼 왔다고 서술했다. 시장이 자유롭게 풀려나면 16세기 영국에서처럼 급속도로 인간과 자연을 파괴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폴라니가 제시하는 해결책의 방향은 카를 마르크스나 존 메이나드 케인스가 주장했던 시장경제를 없애거나 국가에 의한 적절한 개입 등으로 규제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사회’라는 하나의 실체를 발견함으로써 문제 해결에 접근한다. 국가와 시장은 사회가 필요로 하는 기능을 수행하기 위한 제도에 불과하다고 보았다. 지금처럼 신자유주의가 전 지구적으로 확대되면서 국가와 사회를 시장의 부속물로 여길 때의 결과도 명확하게 그리고 있다. 폴라니는 국가와 사회가 시장에 복속되면 인간의 자유와 이상을 근본적으로 파괴하는 비극만 낳고 모두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보았다. 이것이 최근 세계가 폴라니를 다시 주목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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