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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광영 중앙대 교수·사회학


개인들에게 시장은 한편으로 기회이고, 다른 한편으로 위협이다. 시장이 난폭한 폭군이 될 수도 있고, 풍요를 가져 오는 구원자도 될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한 인식은 이미 18세기부터 이루어졌다. 초기 통제를 받지 않았던 폭군과 같은 시장은 결국 대규모 실업과 빈곤을 가져다 준 대공황을 불러일으켰다. 파국으로 치달은 고삐 풀린 시장은 결국 시장에 대한 규제를 초래했다.




오늘날에는 개인의 건강도 관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시장도 적절하게 관리할 필요가 있다는 견해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시장이 만병의 근원도 아니며 만병을 치료하는 특효약도 아니라는 현실적인 인식이 시장에 대한 지배적인 인식이다. 그리하여 시장을 적절하게 관리하는 것이 현대국가의 과제가 되었다.

유럽의 경우, 18세기 이래 오랜 자본주의 진화과정을 겪으면서, 시장의 영역과 국가의 영역이 변화를 거듭하면서 오늘날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반면 한국과 같은 신흥 산업국가들에서는 아직 시장의 영역과 국가의 영역이 기능 차원에서나 비중 차원에서 적절한 자리매김을 하지 못하고 있다. 국가의 계획에 의해 산업화해왔기 때문에 국가의 개입은 아직도 생산 영역에 치우쳐 있다. 국가의 분배 개입은 미미한 수준이다.

한국은 199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하면서 선진국 클럽 회원이 되었다. 제3세계 국가들과의 비교 대상이 아니라 OECD 국가들과 비교를 해야 하는 선택을 스스로 한 것이다.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말은 선진국이 되고자 열망하는 한국 사람들이 생각하는 선진국의 기준이다. 글로벌 스탠더드는 어떤 특정한 나라의 기준이 아니라 선진국 여러 나라들이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는 사회 속성이다. 글로벌 스탠더드에 비추어 들여다본다면, 한국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OECD 국가들과의 비교를 통해 우리를 들여다보면, 한국 사회는 지나치게 시장화된 사회
. 과잉 시장화라고 불릴 수 있는 사회가 되었다. 국가의 역할은 미미한 반면, 시장이 개인이나 가족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정도가 OECD 국가들에 비해 훨씬 높기 때문이다. 국민들이 살아가는 데 중요한 요소는 교육, 의료와 주택이다. 국민의 삶에서 이들 세 영역이 대단히 중요하기 때문에 선진국에서는 정부가 이들 영역에 일정한 방식으로 개입하고 있다. 이들 세 가지 영역에서 한국은 시장화의 정도가 가장 높은 나라다.

교육 영역을 보자. 한국의 대학 진학률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2005년 18~21세 인구 중 대학에 등록한 인구 비율은 65%로 그리스와 함께 세계 최고 수준이다. 미국(45%)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OECD 국가들은 30% 내외에 그쳤다. 그런데 고등교육 비용은 대부분 부모가 부담한다. OECD 국가들 가운데 부모의 교육비 부담이 가장 높은 나라가 한국이다. 전체 국내총생산(GDP)에서 정부의 고등교육비 지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0.7%로 OECD 국가들 가운데 가장 낮았다. 이는 OECD 평균 1.3%의 절반 정도에 불과한 것이다. 물론 대학에 들어가기 전 사교육비는 고등교육 통계에 고려되지도 않았다. 한국의 고등교육은 매우 낮은 공공성을 특징으로 한다.

의료의 경우도 비슷하다. 한국의 경우 의료 서비스가 사적 영역에서 이루어지고, 재정만 의료보험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특징이다. 의료 서비스의 공급과 재정 조달이 공적으로 이루어지는 대부분의 OECD 국가들에 비해 의료의 공공성이 낮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전체 의료비 가운데 정부의 지출은 OECD 평균(73%)에 훨씬 못 미치는 55%에 불과하다. 가장 낮은 멕시코의 45%보다는 높지만, 유럽 선진국의 80%에 비해서는 매우 낮은 수준이다.

주거도 삶의 질과 관련하여 중요한 요소이다. 국민의 삶의 질 향상과 관련한 정부의 역할은 적절한 수준의 공공주택을 공급하는 것이다. 한국의 경우 주택 공급은 대부분 건설업체들에 의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공공주택 비율도 대단히 낮다.
2002년 월드컵 대회에서 한국 축구국가대표팀을 이끈 히딩크 때문에 많이 알려진 네덜란드의 경우 공공주택 비율이 35%로 OECD 국가들 가운데 가장 높다. 유럽 대부분의 경우 15~18% 수준이다. 상대적으로 공공주택의 비율이 낮은 남유럽과 영어권의 경우 7% 미만이다. 공공주택 정책으로 유명한 싱가포르의 경우 85%가 공공주택에서 살고 있고, 홍콩의 경우에도 45% 정도의 주택이 공공임대주택이거나 정부 지원을 받는 주택이다.
인구밀도가 높은 이들 나라는 주택 부족이 심각했기 때문에 공공주택 정책에 심혈을 기울였다. 한국의 경우 공공주택은 5%도 되지 않는다. 그래서 주택이 시장 상품이 되어, 주택이 거주의 공간이 아니라 재테크의 수단으로 인식되기에 이르렀다.

세계화 시대를 맞아 우리는 글로벌 스탠더드를 끊임없이 외치고 있다. 무엇이 글로벌 스탠더드인지를 아무도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지 않고, 자신들에게 유리한 부분만 글로벌 스탠더드로 내세우고 있다. 그 결과 합리적이고 성찰적인 논의가 사라지고, 아집과 무지에 기초한 우격다짐이 넘치는 사회가 되어버렸다.



과연 21세기 한국 사회는 어떤 사회가 되어야 하는가?

모두 선진사회가 되기를 원한다면, 피부에 와닿는 선진사회의 모습은 어떤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그것은 어렵고 추상적인 사회도 아니고 실체가 불분명한 막연한 모습의 사회도 아니다. 선진사회가 되는 것은 한국의 보통사람들이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가 되는 것이다. 개인이나 가족이 불확실하고 불안한 삶에서 벗어나 안정된 삶을 영위하는 사회가 되는 것이다.

그것은 다른 선진국과 마찬가지로 시장에 대한 적절한 규제와 관리를 통해서만 가능할 것이다. 국민의 삶의 안정을 위해 과잉 시장화된 삶의 영역을 줄이고, 정부의 역할을 늘려야 한다. 현대국가의 존재 이유는 바로 국민의 복지 증진이다. 글로벌 스탠더드는 국민의 삶의 질과 관련하여 논의되어야 한다. 시장 과잉 사회에서 정부의 새로운 역할 정립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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