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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에게 무심코 건네는 반말도 차별입니다.’ 

지난해 말 거리에 현수막을 걸었다. 내가 활동하는 장애여성공감의 발달장애여성 반차별투쟁단 ‘반가워 만세’의 구호를 담은 현수막이다. 처음엔 ‘장애인에게 함부로 하는 반말은 차별입니다’라는 문장을 쓰고자 했으나 구청에선 시민들의 민원을 고려하여 ‘무심코’를 덧붙여 차별의 의도성이 없다는 것으로 수정을 요청했다. 

무심코 반말해본 적이 있는가? 나이에 따른 서열을 강조하는 한국사회에서 무심코 하는 반말은 상대방이 나보다 나이가 적거나, 위치가 낮을 때 쉽게 일어난다. 반말할 수 있는 나의 위치가 보장되지 않으면 누군가에게 무심코 반말하는 건 어렵다. 

많은 발달장애여성은 미성숙한 사람 취급을 받으며 일상적으로 반말을 듣는다. 누군가는 ‘무심코: 아무런 뜻이나 생각이 없이’ 자유롭게 말하는 상황이 누군가에겐 일상의 차별로 와 닿는다. 사회적으로 왜, 어떤 타자에 대해선 무심코 말하게 되는가? ‘무심코’라는 말이 행위의 의도성이 없음을 설명할 순 있겠지만, 차별의 일상성은 성찰하기 어렵게 한다.

무심코 말하는 사람들에게 말하기 위해 ‘반가워 만세’는 긴 시간 몸을 움직여 목소리를 냈다. “안전한 공원을 만들어라. 나이를 묻지 마라. 지나가는 사람 몸 뚫어져라 쳐다보지 마라. 임신했느냐고 결혼했느냐고 물어보지 마라. 사생활 묻지 마라. 시비 걸지 마라. 우리 몸 훑어보지 마라. 장애여성한테 혐오 차별 하지 마라. 차별하지 않게 교육을 받았으면 좋겠다.” 

목소리를 내기 위해 배우고, 협력하고, 때론 포기하고, 종종 갈등했다. 서로를 지지하며 갈등하는 관계 속에서 목소리는 커지고, 다양한 말은 장애와 나이, 몸, 섹슈얼리티 등 차별이 발생하는 다층적인 구조를 드러낸다. 

무심코 건넸다는 말들은 발달장애여성의 사회적 처지를 일깨워주는 말이었고, 자주 감정은 상했다. 감정을 표현하면 서툰 사회성, 미성숙함이란 말로 되돌아오기 일쑤였다. 입에 머금고, 몸에 가둬야 했던 답답함들이 동료들을 만나 감정을 표현하는 것에도 자신감이 생겼다. 내가 겼었던 불편함에 저항하는 것은 쉽지 않았지만, 동료의 어려움에 조언할 수 있는 귀중한 경험이 되기도 한다.

혼잣말이 아니라 누군가와 소통하기 위해 말할 공간이 필요하다. ‘반가워 만세’는 천호공원에 나가 직접 행동도 했다. 현수막의 구호를 외치기 위해 막상 팻말을 들고 사람들을 향해 나간 날엔 떨렸다고 한다. 여유 있게 연습하고 호기롭던 모습은 긴장으로 주춤하기도 했지만 마스크로 무장하고 동료의 손을 잡았다. 발달장애여성이 동료 시민으로 살아가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경험했기에 용기를 낸다. 들어야 하는 위치에 있던 이들, 발달장애여성이 주어진 자리를 이탈하는 순간이다. 그런데 언제까지 ‘무심코’ 한 말이라고 대꾸할 텐가. 

어디에나 목소리가 있다. 하지만 어떤 목소리는 대화의 상대를 만나지 못해 흩어지기도 한다. 말이 되지 않는다고, 듣지 않아서, 믿어주지 않아서, 권력이 없어서 공명하지 못하는 목소리들이 얼마나 많은가. “우리의 목소리를 공부하라.” 청소년 인권침해 증언대회에서 누군가가 말했다. 소수자의 경험을 존중하고 배우지 않아도 되는 권력에 대한 일침이다. ‘무심코’ 들어선 안될 말이다.

<이진희 | 장애여성공감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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