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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흑인 페미니스트 작가 벨 훅스는 <All about Love(올 어바웃 러브)>에서 “사랑이란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의 영적인 성장을 위해 자아를 확장하려는 의지”라고 정의한 바 있다. 그는 오늘날 우리가 잘못된 사랑관을 가지게 된 여러 가지 배경 중 하나로 가부장제 사회의 남성성 구축방식에 주목한다.  

가만히 남성 문화를 생각해 보자. 어린 시절부터 남성은 외로움, 슬픔, 아픔, 참된 감정을 감추고 거짓 자아를 만들어야 강한 남자라고 배운다. 강자에게 눈치 빠르게 복종하고, 약자를 무시하고 지배하며 힘으로 누르는 게 남자답다고 배운다. 그래야 출세하고, 출세하면 모든 걸 가지게 되며 그간의 고통과 비굴함을 보상받는다고도 배운다. 힘 있는 자는 무엇이든 할 수 있으며 어떠한 거짓과 기만도 용서받는다는 교훈을 현실에서 직접 체득한다. 

음란물, 성매매, 성희롱, 성폭력, 불법촬영, 접대문화, 클럽문화가 한 줄로 꿰이는 건 바로 이 때문이다. 남성에게 여성은 지배와 통제라는 남성(성)을 증명하고 구축하는 도구였다. 여성은 부위별로 측정되고 전시되는 살덩이, 뇌 없는 인형, 구멍, 자궁이다. 힘 좀 쓰게 되면 자연스레 따라오는 전리품이거나 권력을 과시하기 위한 액세서리다. 더 많이 가질수록, 가졌다고 큰소리 칠수록 ‘쎈’ 놈이 된다. 강압적으로 푼돈으로 기술의 힘을 빌려서라도 허세로라도, 함부로 하거나 소유해야 한다. 그래야 남자다! 

문제는 젊은 남성들이다. 이들은 아버지 세대로부터 온갖 무용담을 들으며 남성성의 실천 양식을 물려받았다. 집·학교·군대·직장에서 각종 미디어를 통해 갖은 방식으로 습득했다. 어쩌면 기술의 발전으로 보다 빨리 더 어린 나이에 ‘남자다움’의 의미를 학습했을 것이다. 그런데 아버지 세대의 여자들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남자가 원하는 상에 모든 것을 맞추고 선택되기만 기다리는 여자, 무슨 짓을 해도 용서하고 포용해 주는 여자, ‘망나니’를 멋지게 다시 태어나게 해줄 여자, ‘조용히 은거지의 그늘에 숨어’ 아이를 낳아주고 정갈한 밥상을 차려주며 쥐꼬리만 한 월급을 두세 배 뻥튀기해 놓은 듯 알뜰히 살림을 키우는 여자는 이제 드물다. 재능으로도, 성적으로도, 힘으로도, 논리적으로도 지배·통제가 어렵다. ‘남자답게’ 애써 해보려고 하면 할수록 더 낭패다. 아버지들로부터 전수받은 ‘전통적’ 기술들은 이제 범죄행위가 되었다. 

혼란스러운 자아는 익명 뒤에 숨어 키보드로 분노를 뿜어내거나, ‘믿을 만한’ 친구들과의 단톡방에서 분열을 봉합하려 한다. 오랜 훈육의 결과 익혀 온 잡기를 공유하며 거짓과 허세로 남성성을 과시하고 불법촬영물과 성구매 경험으로 공모자가 되어 남성연대를 구축하려 한다. 결과는 더 비참하다. 때와 장소를 가려가며 아슬아슬 유지해야 하는 이중생활 때문에 기만의 가면은 늘어만 간다. 여성과 분리된 채 상호 나눌 수 없는 비밀을 쌓아가는 ‘가면무도회’장에서 남성들은 진솔한 감정으로부터 점점 소외되고 피폐해진다. 그럴수록 ‘진짜’ 사랑을 나누고자 하는 그 ‘여성’은 알 수 없는 대상으로 점점 더 멀어진다. ‘물게’(물 좋은 게스트), ‘와꾸’가 좋은 ‘헤픈’ 물건, 마구 만지고 약물을 먹여 강간해도 되는 ‘싸구려’들과 어떤 사랑이 어떻게 가능한가. 그렇지 않은 여성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이성애 남성들의 실존적 불안은 더 증폭된다. 때로는 생존 전략으로, 때로는 별생각 없이 자연스럽게 익혀온 남성성이 이제 남성 자신에게도 독이 되었다. 

사랑은 단순히 열정적 감정이거나 일방적으로 쟁취되는 소유물이 아니다. 벨 훅스가 지적했듯 행할 때 비로소 존재한다. 동등한 인간 간 상호 존중을 통해 쌓아올리는 과정이다. 진실은 실천의 토대이고 신뢰는 결과다. 조롱과 무시, 학대와 모욕, 폭력과 혐오는 사랑의 실천과 양립될 수 없다. 남성의 성적 욕망에 강박적으로 매달리는 사회, 여성의 몸을 통해 일방적으로 해소하는 것이 남자답다고 가르치는 사회, 몸의 주체가 동등한 인간이 아닌 사회, 평등에 대한 요구가 갈등으로 이해되는 사회에서 영적인 성장이 가능한 사랑은 애초에 불가능한 기획이다.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눈앞에 놓인 거울을 똑바로 쳐다보자. 사랑을 일회성 욕망, 허세용 전리품, ‘원하는 대로 맞춰주는 서비스’로 축소시키는 과정에서 막대한 경제적 이득을 취한 자들은 누구인가. 당신의 자아를 분열시키며 진정한 사랑을 방해하는 자들은 누구인가. 영혼을 황폐화하고 인간다운 삶 자체를 불가능하게 하는 자들은 누구인가. 진실과 정의에서 멀어지게 하는 그 거울을 남성 스스로 과감히 깨트릴 때가 되지 않았는가.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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