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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은 복지나 정책 대상으로서 다뤄진 역사가 극히 드물다. 청년 세대의 어려움을 풍자하는 신조어는 매년 수십 개씩 만들어지지만 이를 해소할 법안은 하나조차 만들어지지 않는다. 20대 국회에는 청년기본법을 비롯한 42건의 청년과 관련한 법안이 계류되어 있음에도 그중 유일하게 통과된 것이라곤 공공기관에 청년을 3% 의무고용하는 ‘청년고용촉진특별법 일부개정법률안’뿐이다. 이마저도 본래 5% 고용을 목표로 했던 것이지만 당장의 3% 고용도 지키지 않는 현실 앞에서 좌절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국정연설에서 32번씩 ‘청년’을 언급했다. 그러나 청년을 그럴듯한 수식어로 사용하며 자행한 것은 불안정한 첫 일자리로 내모는 노동개악이었고 청년 주거빈곤 해결과는 거리가 먼 기업형 임대주택이었다. 정부가 바뀌었다고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다. 국정연설에서 33번씩 ‘청년’을 부르면서도 청년위원회를 폐지하고 일자리위원회로 대체했다.

당장의 청년 실업 해결이 시급한 것은 사실이지만 고용 문제에만 집중하는 것은 하나만 알고 열은 모르는 주먹구구식 대처에 불과하다. 청년문제는 더 이상 미취업자로 한정되는 일시적 실업 상태 등의 어려움이 아니다. 학교에서 일자리로, 가족과의 집에서 나만의 집으로, 원래의 가족에서 새로운 가족으로 이행할 때 겪는 실업과 주거빈곤 그리고 연애, 출산, 결혼을 포기하는 ‘3포 세대’가 되는 청년 일반의 구조적 문제가 존재한다. 청년의 삶이 안정적인 토대 위에서 연속성을 가질 수 있도록 국가적 차원에서 이를 책임지고 종합적으로 지원할 청년기본법이 필요한 이유다.

청년기본조례를 만드는 지자체가 늘고 있지만 청년기본법이 없는 상태에서는 지자체의 역량에 기댈 수밖에 없는 문제를 낳는다. 

청년기본조례 제정 후 이와 관련한 예산 증대와 다양한 정책을 시도하는 지자체가 있는 반면 그러한 의지가 없어 조례를 제정하고도 속 빈 강정처럼 내버려두는 지자체가 있기도 하다. 청년기본법을 제정해 중앙정부에서 5년마다 중·장기 계획을 마련하고 각 지자체, 지역 청년과 지속적으로 협업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몸에 난 상처는 환부가 어디인지 눈으로 분명히 확인할 수 있어 아픔을 금방 깨달을 수 있다. 역시 모양과 깊이에 따른 적절한 치료법도 재빨리 처방할 수 있다. 그러나 사회사가 삶에 낸 상처는 경우가 다르다. 눈에 보이지 않아 통증을 깨닫기 힘든 데다 개인의 불행과 같은 일로 취급하곤 홀로 아픔을 삼키기 일쑤다. 아프다고 우는 순간 이는 노력의 부족으로 치부되어 무능력자로 낙인찍히기 때문이다. 지금의 청년이 딱 그런 모습이다.

이러한 고통에 지치고 무뎌져서는 안된다. 우리네 삶의 정답이 더 이상 ‘탈조선’이 될 순 없다. 어쩔 수 없게 되면 죽지 뭐, 하는 섬뜩한 농담을 진담 섞어 나누는 일은 그만두고 싶다. 지금이 아니라 나중으로 미뤄졌던 청년에게 필요한 것은 삶을 넓게 조망할 권리와 이를 풀어낼 공간이다. 스스로의 삶을 꾸미기보다 다른 무언가를 위해 그럴듯한 수식어로 낭비되던 일들을 끝마치고 청년의 삶에서 주어 자리를 되찾는 과정, 그 첫번째에 청년의 목소리가 함께하는 청년기본법 제정이 있다.

<민선영 | 청년참여연대 공동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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