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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활동하는 장애여성공감의 회원활동은 주로 주중 낮시간에 이루어진다. 세상의 시계가 바쁘게 돌아가는 평일, 경제활동 참가율 63.3%(2016년 기준)에 포함되지 않는 이들의 시계는 분주하다. 집에선 출근에 정신없는 가족들 대신 설거지하고 이불도 개준다. 싱크대를 물기 없이 닦고, 저녁상에 오를 미역국도 시원하게 끓여 놓는다. 가사노동은 주로 한가해 보이는 돈 못 버는 발달장애여성 몫이다. 집안일 뚝딱 해치우고 공감으로 출근한다. 내 경험과 감정을 실은 노래를 만들고, 적성 안 맞는 보호작업장 일을 마치고 헐레벌떡 한글반에 오고, 손재주 발휘해 20개의 수첩을 만들어 활동가들에게 선물하기도 한다. 사무실 문구와 이면지 정리, 회원공간 청소, 서류 파쇄, 우편물 발송, 우체국 업무 보조 등 자원활동까지 하면 몸이 고단해진다. 하루해는 언제나 짧다. “제가 도울 일 없어요?” 더 일하고 싶고 해낸 일은 인정받고 싶다. 임금으로 환산되는 노동으로, 경제활동 인구로 인정받지 못하지만 이미 이들은 노동하고 있다.

가족이 주는 약간의 용돈과 최저임금 수준에 못 미치는 보호작업장 월급 5만~15만원. 저축은 어림없다. 돈이 있어야 독립도 하고 눈치 안 보고 살 텐데…. 미래도 준비해야 하지만 현재의 사회생활을 위해선 돈이 필요하다. 모임 회비 3000원을 내고 당당히 참여하고, 동료회원들과 가끔은 외식도 해야 한다. 남들 눈엔 그냥 돌아다니는 걸로 보이지만, 서울인권영화제 개막공연을 하러 가는 길이고, 차별금지법 제정 촉구 집회에 가는 길이다. 왜 이들이 하는 일과 가치를 제대로 보려 하지 않는가?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따른 수급권자라고 마음 편하게 나랏돈 받아 쓴다는 오해도 받는다. “자존심이 상하죠. 내가 생산적인 일을 해서 돈을 벌진 못하지만, 내가 무능한 것 같진 않은데, 그건 인정받지 못하고 수급자라는 것만 이야기되니까. 나도 일하고 있어요.” 장애여성극단의 배우로 수입은 몇만원 안되지만 1년 내내 정기공연을 위해 매일 같이 연습해 왔다. 얼마 전 마친 정기공연 출연료 몇십만원도 혹여 문제가 될까봐 매월 10만원씩 나누어 받았다. 노동 시간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지만 비정기적인 약간의 수입에도 가슴 졸인다. 공연을 만들어 장애여성 인권을 알리고 사회를 변화시키는 값진 일을 하고 있다고 자부하지만, 통계상으론 비경제활동 장애인구일 뿐이다. 이들이 생산하는 사회적 가치와 기여는 왜 제대로 주목받지도, 평가받지도 못하는가?

현재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 장애인 단체들은 ‘중증장애인 공공일자리 1만개 보장, 중증장애인 최저임금 적용 제외 폐지, 한국장애인고용공단 개혁’을 요구하며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서울지사를 점거 중이다. 최저임금법 제7조 1항에 따르면 ‘정신장애나 신체장애로 근로 능력이 현저히 낮은 자’는 고용노동부 장관의 인가를 받아 최저임금 적용 제외 대상이 된다. 비장애인 기준으로 노동능력을 측정하고 평가하기 때문에 다수의 장애인들은 ‘근로 능력 낮은 자’로 분류된다. 최저임금 적용 제외 대상인 보호작업장에서 장애인이 접은 박스와 빨래한 수건, 나무젓가락은 어딘가에서 쓰이고 있다. 가족 안에서 수행하는 돌봄노동도 보이지 않는 노동으로 누군가의 일상을 뒷받침하고 있다. 장애를 가진 사람으로 그들이 말하고 쓴 경험은 인권의 지평을 넓혀주고 있다.     

노동의 개념과 가치를 재구성해야 한다. 이미 이들은 노동하고 있다.

<이진희 | 장애여성공감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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