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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엔 돌 반지가 없다. 건강과 행복을 기원하며 돌 반지를 건네주던 마음들을 차곡차곡 담아 아이가 성년이 되어 스스로 삶을 꾸릴 때 주리라 다짐했다. 전셋집이 경매에 넘어가 거리에 나앉을 위기에도, 무보험차 교통사고로 병원비 압박을 받을 때도 유혹을 견뎠다. 그런데 우습게도 외환위기 ‘금 모으기’ 운동 때 우리 집을 떠났다. 순진하게도 나는 국가가 살아야 아이의 미래가 있다고 믿었고 기꺼이 돌 반지를 내놓았다. 국가를 믿고 아이의 미래를 의탁했다. 당시 금 모으기 운동에 참여한 대부분의 국민들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으리라. 

올해 최저임금 인상률은 2.87%로 역대 세 번째로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경제가 너무 안 좋고, 2년간 최저임금이 많이 올랐으며, 소상공인·영세자영업자들이 힘들어 하니 고통을 분담하자고 최저임금 노동자들에게 양해를 구한다. 그런데 왜 어려울 때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것은 늘 그 많은 국민들 중에서 가장 어려운 사람들인가? 왜 국가는 늘 ‘부자는 망해도 3대는 간다’는 그들의 곳간은 지켜주며 오늘 벌어 오늘 먹고사는 사람들에게만 허리띠를 졸라매라고 하는가?

말이 ‘최저임금’이지 그것이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임금이 되는 사람들의 삶을 국가는 아는가? 국가는 임금이 유일한 생계수단이고 자산일 수밖에 없는 국민들의 일상을 아는가? 그들은 매월 들어오는 돈으로 월세를 내고, 학자금 등 대출금 이자를 내고 원금도 갚아야 하며, 병원도 가고 하루하루 먹고살아야 한다. 6000원으로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던 식당은 거의 사라지고 이젠 8000~9000원은 줘야 한다. 일상에서 느끼는 장바구니 물가도 많이 올랐다. 편의점 진열대 앞에서 ‘컵라면’을 바라보며 통장의 잔액을 떠올리고 한참을 고민한다. 정말 눈물겹다. 이들의 모습이 내가 국가에 의탁한 아이의 미래라는 사실이 참담하다. 

2년 연속 최저임금이 올랐다고 핑계를 댄다. 하지만 실질임금이 하락한 사람들도 많다. 2018년 임금구조를 합리화한다며 최저임금 산입범위를 조정했다. 그동안 임금이 낮은 직종들에는 교통비, 식대라는 명목으로 적은 임금을 보존해주는 장치가 있었다. 그나마 숨통을 틔워주던 교통비, 식대 등 복리후생비가 최저임금에 포함되었다. 결과적으로 최저임금은 올랐지만 실질임금은 하락하는 불이익이 발생한 것이다. 급식조리사 등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경우, 최저임금은 10.9% 올랐으나 기존의 복리후생비가 최저임금 산입범위에 포함되어 실질적으로는 오히려 월 6만7840원(연 81만4000원)이 줄었다. 이들에게 연 80만원은 정말 큰 액수다. 그런데 2020년 최저임금이 꼴랑 240원 올랐다. 이는 이미 발생한 손해도 만회할 수 없는 수준이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이런 불이익, 손해를 대부분 여성들이 받는다는 사실이다. 

‘성별 임금격차 세계 1위’ 국가의 오명을 벗기 위한 정책 중 하나가 최저임금 인상이었다. 그만큼 최저임금의 영향을 받는 여성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합리화’나 ‘고통분담’을 이유로 또다시 여성들에게 희생을 강요하고 있다. 그것도 가장 열악한 조건에 있는 여성들에게.

이것은 정의도 상생도 아니다. ‘성별 임금격차 세계 1위’ 국가다운 성차별정책일 뿐이다. 아직 재심이 남아있다. 정부는 다른 보완책 마련을 공언하지만 성차별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8590원은 안된다. 반드시 다시 논의해야 한다.

<김민문정 | 한국여성민우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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