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경향신문에 ‘다문화가족 가정폭력, 인권위의 엉터리 통계’라는 제목으로 설동훈 교수의 기고문이 게재되었다. 여러 가지로 문제점이 있는 기고문이었다. 설 교수는 국가인권위원회 보고서는 비확률표집 방법인 ‘눈덩이 표집’ 방법을 활용해 표본을 수집했기 때문에, 이 보고서의 통계는 “어떤 형태의 일반화도 불가능”하다고 단정했다. 묻지 않을 수 없다. ‘눈덩이 표집’ 방법으로 작성된 설 교수의 학위논문에 나와 있는 통계도 “어떤 형태의 일반화도 불가능한 엉터리 통계”인가? 설 교수는, 결혼이주여성의 절반에 가까운(42.1%) 사람이 가정폭력을 경험하였고 ‘폭력위협’ 피해율이 38.0%에 달한다는 국가인권위원회 연구용역보고서(이하 ‘인권위보고서’) 통계가, 여성가족부의 ‘2016년 가정폭력 실태조사’(이..
베트남 출신 결혼이주여성이 남편에게 무차별 폭행을 당하는 영상이 공분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영상에는 30대 남편이 베트남 출신 부인을 주먹과 발, 소주병으로 마구 때리는 장면이 담겨 있다. 옆에는 두 살배기 아들이 있었다. 피해 여성은 한국말이 서툴다는 이유로 평소에도 폭행을 당했다고 한다. 해당 영상을 올린 누리꾼은 베트남어로 “한국 남편은 미쳤다”고 적었다. 참으로 부끄럽고 참담하다.우리나라에서 국제결혼은 매년 전체 혼인의 7~11%를 차지한다. 대부분 여성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외국 출신 부인의 국적은 베트남이 27.7%로 가장 많았고, 중국(25.0%), 태국(4.7%) 순이다. 이제는 어디를 가도 결혼이주여성을 마주치는 게 낯설지 않다. 농촌 남성 열 명 중 네 명꼴로 외국 여성과 결혼한다는 통..
전 김포시의회 의장의 가정폭력에 의한 부인 사망 사건으로 가정폭력에 대한 경각심이 다시 일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소속의 공인(公人)이 아내가 사망에 이를 정도로 폭력을 자행했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그런데 이 사건 이후 자유한국당 소속의 시의회 의원 및 국회의원들의 주장을 볼 때 이 사건이 정당 간의 논쟁거리로 뒤바뀌는 것 같아 더욱 안타깝다. 부실한 공천절차 속에서 자격미달의 시의원을 임명한 민주당이 이 사건에 대해 사과하고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가정폭력은 여성인권의 바로미터이자 ‘사적영역’에서 발생하는 여성에 대한 고문과 유사하다고 한다. 노인폭력, 아동폭력 그리고 남성 배우자에 대한 폭력도 있지만 대다수 가정폭력은 남성 배우자의 여성에 대한 폭력이라는 점에서 가정폭력은 젠더..
정부가 27일 가정폭력에 대한 처벌과 피해자 보호 조치 등을 강화한 ‘가정폭력 방지대책’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앞으로 경찰이 가정폭력 현장에 출동해 가해자를 현행범으로 즉시 체포할 수 있는 여지가 커진다. 또 가정폭력 가해자가 피해자에 대한 접근금지 명령을 어기면 징역형까지 받을 수 있다. 지난달 결혼생활 내내 폭력을 행사했던 남성이 이혼 후 전처를 살해한 사건이 발생하는 등 가정폭력의 심각성이 사회문제화되는 상황에서 정부 대책이 신속하게 나온 것은 환영할 만하다. 정부 대책은 피해자를 가해자로부터 즉시 분리시키고 피해자의 안전과 인권을 적극적으로 보호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가정폭력 현장에 출동한 경찰이 가정폭력처벌법상 취할 수 있는 응급조치 유형에 기존의 폭력행위 제지 등 외에 ‘현행범 체포’..
가정폭력 사건 신고는 급증하고 있지만 경찰이 가정폭력 사범을 검거해 적극적으로 수사하는 사례는 10건 중 1건 정도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29일 더불어민주당 강창일 의원이 경찰청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2013~2017년 5년간 가정폭력 신고는 약 116만건이었다. 이 중 지난해 접수된 신고는 28만건으로 2013년(16만건)에 비해 74%가량 증가했다. 하지만 지난 5년간 신고 건수 대비 가정폭력 사범 검거율은 13%에 불과했다. 또한 2015년부터 올해 6월까지 검거된 가정폭력 사범 16만4000여명 중 구속된 이들은 1632명으로 1%에도 못 미친다. 경찰이 이처럼 가정폭력을 미온적으로 수사하면서 피해자는 가해자의 보복에 노출되고 재범의 악순환 가능성이 높아진다. 실제로 가정폭력 재범률은 201..
오랫동안 감추어졌던 여성에 대한 폭력의 역사가 진실의 햇빛 아래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상처받은 피해자의 목소리가 또 다른 피해자의 목소리와 이어지며 부서지지 않을 것 같던 견고한 장벽을 조금씩 흔들고 있다. 모든 폭력은 가해자와 피해자의 권력 관계에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에 오랜 시간 동안 뿌리내렸던 가부장제와 남성 중심적인 권력구조가 가해자에게 압도적인 권력을 주었고, 피해자인 여성에게는 침묵을 강요해왔다. 지금 드러나는 수많은 폭력이 오랫동안 은폐된 가장 큰 이유다. 같은 이유에서 침묵을 강요당하는 피해자가 여기에도 있다. 한국에 머무는 많은 이주여성이다. 얼마 전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와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에서 실시한 ‘이주여성 농업노동자의 성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중 12.4%가..
전화기 너머 한국여성의전화 고미경 대표의 목소리는 울분에 차 있었다. 가정폭력보호시설에 가해자가 침입했는데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가해자 격리 등의 조치를 취하기는커녕 오히려 가정폭력 가해자를 옹호하고 비호했다는 것이었다. 참 어처구니없다 싶었는데 이어진 그녀의 말에 더 기가 막혔다.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가정폭력에 대한 인식과 대처는 어쩌면 이렇게 바뀌지 않을까요? 세상이 변하지 않으니 기자회견 구호가 30년 전과 똑같아요. 다르게 정해보려고 얼마나 골머리를 앓았는지 몰라요.” 이럴 땐 분노보다 절망감이 앞선다. 사건은 이랬다. 지난 2일 저녁 8시경, 한 가정폭력피해자 보호시설에 가해자가 ‘침입’했다. 그는 “자녀를 보기 전에는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겠다”며 버텼다. 흔히 ‘쉼터’라고 부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