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관여한 정황이 드러났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에 따르면 국정원 정보관들이 문화체육관광부 직원들과 e메일 및 휴대전화를 이용해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에 개입한 단서가 포착됐다. e메일에는 “진보성향 문화예술단체에 대한 경제적 지원을 배제해야 한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고 한다. 특검팀은 국정원 직원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문제와 관련해 국민연금의 내부 동향을 파악해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에게 보고한 단서도 확보했다. 정권에 문제가 생길 때마다 연루되지 않은 적이 없는 국정원이 여전히 불법 정치 개입 구태를 되풀이하고 있는 것이다. 국정원의 국내 정치 개입 사례는 일일이 헤아리기 힘들 정도다. 이명박 정권 이후만 해도 민간인 사찰 의혹과 대선 개입 여론조작, ..
이인규 전 대검 중수부장이 경향신문 취재진과 만나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 수사 당시 불거진 이른바 ‘논두렁 시계’ 진술은 국가정보원이 조작해 언론에 흘린 것이라고 밝혔다. 노 전 대통령이 부인 권양숙 여사가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선물받은 명품시계를 “바깥에 버렸다더라”고 진술했지만 “논두렁에 버렸다”고 말한 것으로 바꿔 언론에 제공했다는 것이다. ‘논두렁 시계’ 보도는 노 전 대통령의 도덕성에 큰 흠집을 냈고, 그를 막다른 길로 내몬 원인 중 하나로 지적됐다. 국정원은 일단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을 보였지만 다른 사람도 아니고 수사 최고책임자의 고백이란 점에서 곧이곧대로 들리지 않는다. 국정원이 검찰 수사 내용을 조작, 언론에 제공해 여론을 호도했다면 이는 용납할 수 없는 중대 ..
간첩 증거조작 사건에 가담한 국가정보원 직원과 협조자들이 유죄 판결을 받았다. 서울중앙지법은 서울시 공무원 유우성씨의 간첩 혐의를 입증하겠다며 증거를 조작한 국정원 김모 과장과 이모 전 대공수사처장에게 징역형을 선고했다. 법원은 다른 피고인 4명의 공소사실도 대부분 유죄로 판단했다. 국정원이 수집하고 검찰이 제출한 증거의 위조 사실을 법원에서 인정한 것으로, 그 의미가 작지 않다. 다만 사건의 성격과 파장에 비해 양형 수위가 낮은 점은 유감스럽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국가의 형사사법기능을 심각하게 방해하고, 국정원의 임무 수행에 지장을 초래했으며, 재외공관 공문서 내용의 진실성에 관한 신용에 악영향을 미쳤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형량은 예상보다 가벼웠다. 재판부는 증거조작을 주도한 김 과장에 대해 검찰..
지당한 언설을 늘어놓는 일은 언론의 역할이 아니다. 하지만 상식이 외면받는 시대엔 어쩔 수 없다. 진부한 당위라도 재론해야 한다. 기소권을 독점하는 검찰이 1심 재판에서 무죄를 받았다면 항소하는 게 상식이다. 사회적 파장이 큰 사건이라면 더 말할 나위 없다. 그런데 검찰이 상식과 다른 태도를 보이는 모양이다.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무죄에 대해 항소 여부를 망설이고 있다고 한다. 반면 환호작약해도 모자랄 원 전 원장은 “국정원법 위반 혐의도 무죄를 받겠다”며 일찌감치 항소장을 제출했다. 누가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고, 어디가 범죄를 처벌하는 곳인지 헷갈릴 지경이다. 지난 11일 ‘원세훈 대선개입 무죄’ 판결이 내려진 후 검찰은 별다른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판결문을 분석한 뒤 항소..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민주시민의 피와 땀으로 이루어낸 역사다.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헌법 제1조는 규정하고 있지만, 건국 이후 오랜 기간 이 규정은 독재자들의 칼날 앞에 무력했다. 독재자의 하수인으로 그 칼자루를 들고 설친 것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한 정보기관이었다. 중앙정보부를 필두로 이름만 바꾸어온 이 정보기관은 선거 때마다 정치공작을 감행함으로써 주권자인 국민을 모독했다. 민주화의 성과로 이런 범죄행위는 사라진 듯했으나 2012년 국정원은 인터넷 강국 대한민국의 기술 수준에 맞는 역사적 사건을 일으켰다. 지난주 목요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1부는 국정원 댓글사건의 판결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검찰이 기소한 여러 범죄사실을 증거불충분으로 인정하지 않았지만 204쪽이..
국가정보원 심리전단에 대선개입을 지시한 혐의 등으로 기소된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받았다. 국정원법 위반 혐의는 유죄로 인정됐으나 집행유예형을 받아 재수감을 면했다. ‘대선 기간 중 정치에는 관여했지만 선거에는 개입하지 않았다’는 게 법원의 판단이다. 술 마시고 핸들을 잡기는 했으나 음주운전은 안 했다는 논리인가. 상식적으로나 법리적으로나 납득이 가지 않는 판결이다. 원 전 원장은 처벌하되 박근혜 정권의 정통성 논란은 막으려다 나온 ‘정치적 판결’로 의심할 수밖에 없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는 국정원의 댓글·트위터 활동이 “정치인으로서의 대통령 및 여당을 지지하고, 야당 및 정치인들을 반대·비판했다”며 국정원법이 금지한 정치관여 행위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법원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