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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첩 증거조작 사건에 가담한 국가정보원 직원과 협조자들이 유죄 판결을 받았다. 서울중앙지법은 서울시 공무원 유우성씨의 간첩 혐의를 입증하겠다며 증거를 조작한 국정원 김모 과장과 이모 전 대공수사처장에게 징역형을 선고했다. 법원은 다른 피고인 4명의 공소사실도 대부분 유죄로 판단했다. 국정원이 수집하고 검찰이 제출한 증거의 위조 사실을 법원에서 인정한 것으로, 그 의미가 작지 않다. 다만 사건의 성격과 파장에 비해 양형 수위가 낮은 점은 유감스럽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국가의 형사사법기능을 심각하게 방해하고, 국정원의 임무 수행에 지장을 초래했으며, 재외공관 공문서 내용의 진실성에 관한 신용에 악영향을 미쳤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형량은 예상보다 가벼웠다. 재판부는 증거조작을 주도한 김 과장에 대해 검찰 구형량보다 적은 징역 2년6월을 선고했다. 불구속 기소된 이 전 처장에겐 징역 1년6월을 선고하고도 ‘방어권 보장’을 이유로 법정구속을 면해줬다. 이인철 전 주선양총영사관 영사에겐 공소사실 전부를 유죄로 인정하면서도 집행유예 판결을 내렸다.

'국정원과 검찰의 간첩 증거조작 사건 설명회'에서 당사자인 유우성씨와 장경욱 변호사가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_ 연합뉴스


증거조작은 재판부가 밝힌 대로 “국가의 형사사법기능을 심각하게 방해한” 국기문란 범죄다. 국정원장은 물론 대통령까지 대국민 사과를 할 만큼 파장도 컸다. 양형의 적절성에 대한 논란을 피하기 어려운 이유다. 물론 이것이 법원만의 책임은 아니다. 근본적으로 검찰의 부실수사에서 비롯한 측면이 크다. 검찰이 기소 당시 ‘특별법 우선 원칙’을 무시하고 국가보안법상 날조죄 대신 형량이 훨씬 가벼운 형법상 모해증거위조죄 등을 적용했기 때문이다.

국정원은 비교적 가벼운 양형에 안도할지 모르나, 그렇다면 오산이다. 국가 최고 정보기관이 형사사건의 증거를 조작했다는 것은 씻기 어려운 굴욕이다. 국정원은 더 이상 대공수사권을 유지할 명분이 없다. 이제는 대공수사권을 검경으로 이관해야 한다. 검찰의 공안수사도 획기적 전환이 필요하다. 최근 북한 보위사령부 직파간첩 사건에서도 무죄가 선고되며 위법적 공안수사 관행이 거듭 확인된 바 있다. 검찰은 그럼에도 자성하기는커녕 ‘공안사건 전담 재판부’ 신설을 법원에 요청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잇단 무죄 판결은 잘못된 수사 관행에 제동을 건 것인데, 오히려 법원의 전문성을 탓하는 형국이니 어처구니가 없다. 간첩 사건을 포함해 어떠한 사건에서도 시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수사는 용납될 수 없음을 새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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