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은 64개의 괘로 길흉을 따진다. 64괘 중에서 가장 좋은 괘가 겸(謙)이다. 겸손할 겸은 말씀 언(言)과 아우를 겸(兼)이 합쳐진 자다. 말할 때 상대를 배려해서 하면 자연 겸손해진다는 뜻이다. 상대의 말을 경청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새해는 겸과는 거리가 먼 해가 될지 모르겠다. 대통령 선거철만 되면 많은 사람들이 이성을 잃는다. 자기가 지지하는 후보는 항상 옳고 똑똑하고 구국의 영웅이다. 들보 같은 흠결도 ‘세상에 안 그런 놈 어디 있느냐’고 하고, 티끌만 한 장점은 “세상에 이런 사람 또 있느냐”고 한다. 무조건적이다. 정책은 관심의 대상이 아니다. 세금은, 보육은, 가계 빚은, 실업문제는 어찌 풀지 궁금하지도 않다. 그건 난 모르겠고, 뽑아 주면 어련히 알아서 잘하겠지 식이다. 새누리당 충청권..
본명 류철균, 필명 이인화. 그는 평론을 발표할 땐 본명을, 소설을 내놓을 땐 필명을 썼다. 문단에 먼저 나온 것은 평론가 류철균이었다. 서울대 국어국문학과에 재학 중이던 1988년 본명 류철균으로 계간 ‘문학과사회’에 양귀자 소설 평론을 발표하며 데뷔했다. 하지만 평론가 류철균은 문단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가 유명해진 것은 염상섭의 소설 의 주인공 이름에서 따온 이인화(二人化)라는 필명으로 1992년 소설 를 발표하면서부터다. 제1회 작가세계 문학상을 받은 이 소설의 평론을 본명 류철균 명의로 쓰는 이른바 ‘셀프 평론’으로 화제가 됐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등을 표절했다는 지적도 받았다. 당시 그는 “실재와 모방의 경계를 무너뜨린 ‘패스티시(혼성모방)’와 패러디 기법으로 쓴 작품”이라며 “문단의..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에 간여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미 그의 집무실과 자택이 압수수색당했다. 특검이 곧 그를 소환한다는 소식도 전해지고 있다. 그런데도 그는 요지부동이다. 2014년 청와대 정무수석 시절 김기춘 비서실장의 지시에 따라 리스트를 만든 혐의로 특검의 수사선상에 올라 있지만 혐의를 완강히 부인하면서 버티고 있는 것이다. 조 장관의 블랙리스트 작성 참여 사실은 복수의 전직 문체부 고위간부들에 의해 구체적으로 드러난 바 있다. 유진룡 전 문체부 장관은 조 장관이 정무수석으로 재직할 때 정무수석실에서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김소영 청와대 교육문화비서관을 거쳐 문체부로 내려보냈다고 증언했다. 리스트를 본 적조차 없다는 조 장관의 변명은 말이 안된다. 특별검사도 조 장관이..
12월24일 크리스마스이브에 경남 창원에서 열린 촛불집회 연단에 24세 청년이 올라왔다. 유튜브를 통해 본 영상에서, 그는 20세에 취직해 4년째 최저임금을 받고 있는 전기공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했다. 세금 떼고 나면 손에 쥐는 월급이 120만원인데, 방세와 교통비, 식비, 공과금을 내고 나면 저축을 할 돈이 남지 않는다고 했다. 좋아하는 사람이 있지만, 지금의 월급으로는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린다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다고 했다. 그는 궁금해서 촛불집회에 나왔다고 말했다. 그는 박근혜 퇴진 이후에 자기 삶이 나아질 수 있는지가 궁금하다고 했다. 1987년에도 시민들이 거리로 나왔고, 그다음에 노동자들이 대투쟁을 해서 임금도 오르고 삶이 나아졌다고 알고 있는데, 이번에도 그렇게 될 수 있는 건지 궁금하다고..
지난 27일 교육부는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고등학교 ‘한국사’ 국정교과서에 대한 대책을 발표하였다. 국정 역사교과서의 전면 사용을 1년 유예하고, 유예 기간이라도 국정교과서를 사용하려는 학교가 있으면 연구학교로 지정하겠다는 것이다. 또 새로운 검정교과서를 개발하여 2018년학도부터 국·검정을 혼용하겠다고 밝혔다. 교육부 관계자는 국정교과서 현장검토본의 ‘품질’을 자신한다고 말했다. 정말 그럴까. 먼저 역사인식의 기초인 사실의 오류가 너무 많다. 필자가 보기에는 근현대사 부분의 경우 교학사판 한국사 교과서에 비해 낫다고 말할 수 없다. 통합 임시정부 때 안창호 선생의 직책이 노동국 총판인데, 통합 이전의 직책인 내무총장을 언급하고 있을 정도이니. 더 큰 문제는 사실과 사실을 연결하는 부분에서 특정한 의도가..
한·일 위안부 문제 합의가 어제 1년을 맞았다. 한·일 양국은 지난 1년간 화해·치유재단 출범, 지원금 10억엔 출연 등 합의 이행 절차를 밟아왔다. 하지만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명예와 존엄 회복 및 마음의 상처 치유라는 목표는 달성되지 않았다. 어제도 변함없이 위안부 문제의 실질적 해결을 촉구하는 수요시위가 열린 것이 그 증표다. 한·일 양국이 합의했음에도 불구하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 합의의 동기가 잘못된 데서 기인한다. 중대한 인권침해나 전쟁범죄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한·일관계 개선 차원으로 접근했기 때문이다. 한·일관계 개선을 통해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의 입김이 작용한 결과였다. 이러니 합의의 의미나 내용보다 ‘2015년 내 타결’ 등 합의 시기를 더 중시하는 해괴한 일이 ..
세밑이다. 한 해를 마감하기 사흘 전에 찾은 광화문광장에 부는 바람은 찼다. 하지만 가을 끝자락에서 겨울로 진입하던 때 뜨겁게 달궈졌던 광장의 열기는 칼바람에도 식지 않았다. 작가 최인훈은 “광장은 대중의 밀실이고, 밀실은 개인의 광장이다. 두 공간의 어느 한쪽을 가두어버릴 때 인간은 살 수 없다”고 했다. 그가 옳았다. 광장의 촛불은 밀실의 어둠을 몰아냈다. 죽어가던 민주주의를 살려낸 광장은 위대했다. 1000만개의 촛불로, 질서 있는 분노로, 저항의 함성으로 가득 찼던 광장은 명예혁명의 산실이었다. 헌정파괴와 국기문란을 일삼은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 열차에 올려 태운 광장의 명령은 준엄하고도 단호했다. 세밑 광장은 앙시앵레짐(구체제)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시작을 간구하는 외침으로 가득 차 있다. 70년간..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이 그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국정조사특위 위원들과의 접견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말씀 발표 자료를 보내주면 최순실씨가 밑줄을 치면서 수정했다”고 말했다. 인사 발표 내용에 대해서도 “(최씨의) 수정을 받을 필요가 있었다”고 밝혔다. 이 밖에도 “2015년에도 (자료를) 조금 전달한 게 있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최씨가 대통령 연설문을 사전 열람했다는 내용이 JTBC에 보도된 다음날인 10월25일 1차 대국민담화에서 “(최씨는) 지난 대선 때 주로 연설이나 홍보 등의 분야에서 개인적인 의견이나 소감을 전달해주는 역할을 했다. 청와대 보좌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했다. 그러나 정 전 비서관에 의하면 연설문 외에 인사 자료까지 최씨에게 건네졌고, 취임 3년차인 지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