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씨 측에 433억원의 뇌물을 준 혐의를 받고 있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어제 법원에서 기각됐다. 조의연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뇌물 범죄의 요건이 되는 대가관계와 부정한 청탁 등에 대한 현재까지의 소명 정도 등에 비춰 볼 때 현 단계에서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기각 사유를 밝혔다. 지금까지의 특검 수사 결과로는 이 부회장에 대한 구속 요건이 충분하지 않다는 취지이다. 사법부 판단은 존중하지만 실망을 금할 수 없다. 인신 구속은 신체의 자유를 억압하는 등 개인에게 큰 피해를 주기 때문에 신중해야 한다. 법원은 수사에 미진한 점이 있고 의심이 들면 마땅히 구속영장을 기각해야 한다. 그러나 이 부회장의 구속영장 기각이 법과 원칙에..
청와대가 대통령의 독서목록을 공개한 것은 김대중 정부 때부터였다. 책 읽는 대통령을 부각시키려는 뜻도 있었겠지만 실제로 김대중 전 대통령은 폭넓은 독서편력으로 유명했다. 3만여권의 장서를 보유했던 그는 “책을 맘껏 읽을 수 있다면 감옥에라도 가고 싶다”고 말할 정도였다. 책을 읽을 때 밑줄을 긋고, 모퉁이에 글을 적었다는 김 전 대통령은 평생을 두고 읽어야 할 책으로 갤브레이스의 , 피터 드러커의 , 박경리의 , 변형윤의 등을 꼽았다. 다독가였던 노무현 전 대통령은 공직사회 분위기를 바꾸고 싶을 때 책을 활용해 보수언론에게 “‘독서정치’를 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는 감명 깊게 읽은 책의 저자를 발탁해 중용하기도 했다. 를 쓴 오영교 전 행정자치부 장관, 을 펴낸 이주흠 전 리더십비서관이 대표적인..
진보와 보수 중에 어느 것이 옳은가. 초등학생 수준의 어법으로 말한다. 진보가 필요한 시대에는 진보가 옳고 보수가 필요한 시대에는 보수가 옳다. 국운이 승하는 나라에서는 이런 선순환이 이뤄진다. 그런데 난조에 빠지는 사회가 있다. 진보시대에 보수정권이, 보수시대에 진보정권이 들어서는 경우이다. 1994년 프랑스의 프랑수아 미테랑이 7년 임기의 대통령을 두차례 지내고 퇴임할 무렵이었다. 그는 선거를 통해 집권한 최초의 사회주의자였지만, 국민들은 사회당의 장기집권과 높은 실업률에 염증을 냈다. 이 때문에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우파정권에 대한 선호가 높았다. 이때 좌파 정치인 자크 들로르가 나타나면서 대선판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미테랑 정권에서 경제·재무·예산부 장관을 거친 들로르는 1985년 ‘유럽의 대통령..
‘법 미꾸라지’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과 박근혜 대통령의 최측근인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어제 박영수 특별검사팀에 소환됐다. 국정농단의 공범이면서도 교묘하게 수사망을 피했던 이들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건으로 결국 꼬리가 밟혔다. 이들의 지시를 받아 정권에 비판적인 문화예술인 명단을 작성하고 정부 지원에서 배제한 공무원들은 이미 일부 구속됐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창작과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문화예술인을 통제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도 이들은 사과나 사퇴는 고사하고 국회 청문회에서 거짓 변명을 늘어놓으며 주권자인 시민을 우롱했다. 특검은 김 전 실장과 조 장관을 즉각 구속하고, 이들의 다른 의혹도 철저히 수사해 엄벌해야 한다. 김 전 실장의 비위는 고 김영한 전 민정수석이 남긴..
인도의 전통 문양이자 인류 최고의 길상 문양 ‘스와스티카’와 나치의 상징 문양 ‘하켄크로이츠’의 유사성을 떠올리면, 머릿속이 엉킨 실타래처럼 복잡해진다. 히틀러는 아리아인의 혈통과 인종적 우수성을 나타내기 위해 스와스티카를 회전시켜 나치의 상징물로 채택했다. 류철균 이화여대 교수가 지난해 12월31일 정유라의 성적을 조작해 학사 특혜를 준 혐의로 긴급 체포됐다. 류철균은 그해 11월20일 카카오톡에서 자신의 기분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하는 ‘상태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변경했다. ‘나는 불행의 사용법을 알고 있다.’ 류철균과 나는 카톡을 하는 사이는 아니지만, 지인을 통해 전해 들었다. 순간 류철균이 불행을 냉장고나 세탁기처럼 다루어야 할 것으로 취급한다는 사실을 알았고, 류철균을 내리덮은 불행에도 불구하고..
하마터면 박근혜-트럼프 조합의 이중 위기에 처할 뻔했다. 미국 우선주의, 예측불가의 도널드 트럼프는 20일 미국 대통령으로 취임한다. 그런데 한국 외교를 벼랑으로 몬 박근혜 대통령은 탄핵 직전이다. 덕분에 박근혜 리스크와 트럼프 리스크가 동시에 발호하는 최악의 상황은 피할 수 있을까. 한국 외교의 재앙적 상황이 해소된 건 아니다. 박근혜 리스크는 유령처럼 여전히 활개치고 있다. 김관진 국가안보실장은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 방침을 확인하면서 “중국이 반대해도 상관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불에 기름을 끼얹자는 것인가. ‘사드 보복’ 행태는 불만스럽지만 공연히 중국을 자극할 필요는 없다. 당장 “한국에 배신감을 느낀다”는 반응이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유일호 경제부총리가 트럼프의 ‘경제교사’로 알려진 ..
애당초 돈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었던 위안부 문제가 부산의 일본 총영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 설치로 한·일 간 외교갈등 사안으로 재부상했다. 최근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에서 국민의 60% 이상이 위안부 합의의 무효화나 재협상을 요구하고 있고, 주요 대권주자들도 합의에 부정적이다. ‘정권이 바뀌어도 합의를 실행하는 게 나라의 신용 문제’라며 일본의 아베 총리는 박근혜 정부뿐 아니라 차기 정부도 압박하고 있다. 12·28 위안부 합의를 쫓기듯 졸속으로 결정한 지도자의 시대적 의제에 대한 통찰력 부족, 그리고 인간의 존엄 특히 여성의 존엄을 지켜주지 못한 박근혜 정부에 대해 위안부 피해자는 물론 여론도 비판적이다. 그러나 아베 총리의 ‘성의있는 이행’ 압박에 위안부 문제가 국내 정치 이슈로 재부상한 것이 다른 ..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지난주 귀국한 후 폭넓은 대선 행보를 하고 있다. 귀국 이튿날부터 국립서울현충원 참배와 고향인 충북 음성 꽃동네 방문에 이어 그제는 평택 해군2함대사령부에서 천안함을 견학했다. 어제는 구조조정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거제 대우조선해양을 들렀고, 오늘은 노무현 전 대통령 묘소가 있는 봉하마을과 세월호 현장인 팽목항, 광주 5·18묘역을 방문한다. 자신이 제시한 대통합과 정치교체라는 과제 실천에 옹골차게 시동을 걸었다. 그런데 그의 행보가 ‘정치교체’ 슬로건에 부합하는지는 의문이다. 기성 정치인과 다를 바 없는 보여주기식 행보와 실패한 이명박 정권의 인물들을 주변에 포진시킨 것이 대표적이다. 이미 심판받은 정치세력과 함께 정치를 혁신하겠다는 것은 코미디다. 또 반 전 총장은 (박근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