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2년을 맞는 문재인 정부의 경제를 평가하는 토론회가 2일 열렸다. 진보·개혁 지식인들의 모임인 지식인선언네트워크가 ‘소득주도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제는 어떻게 되었나’를 주제로 연 이 행사에서는 지난 2년의 경제정책에 냉정한 평가가 쏟아졌다. 발제자들은 정부가 소득주도성장과 혁신성장을 이루기 위해 재벌중심의 경제구조를 공정경제로 개혁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또 재벌개혁에는 소홀히 하면서 대기업 중심의 정책으로 회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재벌개혁을 포기했다’ ‘사실상 이명박·박근혜 정부 정책으로 회귀했다’ ‘일관성을 상실했다’는 등의 강한 비난의 목소리도 나왔다. 문재인 정부에 기대했던 재벌개혁에 대한 실망의 표현이 아닐 수 없다. 재벌개혁 당위성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재벌중심 경제는 경쟁의 기회와..
2년 전으로 돌아가보자. 벚꽃 대선을 치르면서 시민들은 새로운 미래에 기대가 부풀었다. 문재인 정부의 출범을 보면서 ‘대통령이 복이 많다’고 했다. 성장률도 높아지는 데다 시민들의 높은 지지까지 있으니 꽃길만 걸을 것이라고 했다. 문재인 정부는 소득주도성장을 통해 수요를 일으키고, 혁신성장으로 공급을 확대하며 이를 뒷받침하도록 경제시스템도 공정하게 고치겠다고 했다. 소득 증가를 수요와 공급, 투자로 이어지도록 하고, 일자리를 늘리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일자리 늘리기’를 청와대 1호 사업으로 정하고 일자리 전광판까지 세웠다.그런 뒤 2년이 흘렀다. 기대는 빗나갔다. 소득주도성장은 최저임금 인상 과속에 따른 부작용으로 몸살을 앓고 있으며, 혁신성장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사실상 ‘공회전’..
경제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로 유명했던 고 정운영씨(1944~2005)를 나는 교수로 기억한다. 큰 키에 중후한 목소리, 조리 있는 말솜씨. “결혼은 하셨나요”라는 갑작스러운 질문에 “제가 결혼도 못했을 것처럼 보이나요”라고 유머로 답하던 여유까지. 30여년 전 강의실에서 본 그는 카리스마가 넘쳤다. 한국의 대표적 진보 경제학자 중 한 명으로 꼽히던 그가 살아 있었다면 지금 무슨 얘기를 했을까. 요즘의 상황이 답답해 인터넷을 찾아보는데 그가 1988년 8월 한겨레신문에 쓴 칼럼이 눈에 띄었다. ‘성장, 안정, 복지…그래서?’라는 제목이다. “우산 장수와 나막신 장수에게 각기 딸을 시집보낸 부모가 가지는 걱정, 그것은 경제정책의 입안자들이 지닌 고민의 내용을 아주 잘 설명해 준다. 우산과 나막신을 파는 데 고..
미국 중간선거 결과를 기다리는 심정이 참으로 착잡하다. 우리에겐 너무도 간절한 한반도 평화체제의 성공적 수립을 위해서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이 승리하는 게 낫겠다 싶다가도, 그 승리가 미국에서 민주주의가 더 가파르게 무너지는 계기가 되지는 않을까 싶어 마음이 편치 않다. 반대로 민주당이 이긴다면 미국 민주주의의 급격한 붕괴는 어느 정도 막아내겠지만, 트럼프에 대한 강한 반감 때문에 민주당이 한반도 평화체제의 수립 과정을 방해하고 나서지는 않을까 걱정이다. 세계 최초의 민주공화국 미국이 어쩌다 이렇게 민주주의 문제 때문에 세계의 우환 거리가 되었을까? 미국에서 극우 포퓰리즘이 득세한 데 대해 많은 학자들은 하나같이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와 더불어 진행된 사회경제적 불평등의 심화를 그 근본 배경으로 지목한다. ..
자유한국당에서 모처럼 울림이 있는 정책을 내놓았다. 여당에선 “전근대적이고 해괴망측”하다며 비아냥댔지만, 출산주도성장 정책은 우리 사회가 선택해야 할 길을 언어유희적인 방식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 제안의 핵심은 많은 사람이 비난하듯 여성들을 출산 ATM으로 만들어 출산율을 높이자는 게 아니다. 그보다도, 제안자는 몰랐겠지만 아이가 있는 가정에 스웨덴, 독일, 프랑스 같은 유럽 선진국 수준의 지원금을 지급해 선별복지를 넘어 보편복지로 가자는 것이다. 자유한국당의 제안대로 아기를 낳으면 2000만원, 20세 이하의 모든 국민에게 매년 400만원을 지급한다면 1년에 투입되어야 할 예산은 45조원 정도이다. 큰돈처럼 보이지만, 보편복지를 시행하는 유럽 선진국이 아이 양육지원금으로 사용하는 돈에 비하면 얼마 안된..
가까운 미래, 미국에서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이 획책한 쿠데타가 일어난다. 이들은 국명을 ‘길리어드’라 바꾸고, 신정주의·전체주의·가부장제에 기반해 나라를 운영한다. 이곳에선 책이 사라진다. 화장품, 대중영화, 개성 있는 의상같이 쾌락을 주는 물건들도 찾을 수 없다. 공개처형이 부활해 가톨릭, 퀘이커 등 ‘이교도’의 시신이 거리에 내걸린다. 인간은 오직 신의 뜻, 혹은 신의 뜻이라고 가장된 국가의 의지를 실현하기 위해 살아야 한다. 길리어드에서 특히 영향받은 건 여성들의 삶이다. 길리어드는 주변국들과의 오랜 전쟁, 환경 오염 등의 영향으로 출산율이 극도로 떨어져 있다. 길리어드에는 소수의 남성 ‘사령관’과 그들의 아내가 있다. 아내는 대부분 불임이기에, 조금이라도 임신 가능성이 있는 여성들은 사령관의 집에 ..
지난달 취업자가 1년 전에 비해 3000명 늘어나는 데 그치는 등 고용 부진이 심화되고 있다. 급기야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최저임금 속도조절론까지 제기하고 나섰다. 최근의 고용 악화는 조선·자동차 등 제조업의 구조조정과 불황이 서비스업으로까지 번지는 경기적 요인에 생산가능인구 감소라는 구조적 요인, 최저임금 인상 등의 정책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이 같은 원인에 맞춰 당장의 추락한 고용지표를 회복시킬 단기적 처방뿐 아니라 구조적으로 고용 여건을 개선할 중장기 대책도 고민해야 한다. 통계청이 12일 발표한 ‘8월 고용동향’을 보면 외환위기 이후 최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년 동월 대비 취업자 증가는 3000명으로 지난 7월 5000명에 이어 사실상 제자리걸음..
정부의 노동자 최저임금 인상과 소득주도성장 전략에 대한 일부 소상공인들의 우려에 보수정치권이 가세하면서, 지난달 29일 광화문광장에서 소상공인단체 총궐기대회가 열렸다. 이날 집회를 주최한 소상공인연합회는 최저임금 인상이 소상공인 생존권을 위협한다고 주장하며 정부의 최저임금 정책을 정면 비판했다. 최저시급 1만원을 주장하는 노동자는 소상공인의 적이 아니다. 소상공인연합회는 본질을 외면하고 해법을 잘못 짚었다. 소상공인 생존권이 위태해진 근본적인 원인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우리 사회의 양극화로 인한 소득격차를 부정할 사람은 없다. 중소기업의 임금은 대기업의 60% 수준이다. 외환위기 시절 77% 수준에서 갈수록 더 벌어지고 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격차가 심각하다. 그 원인의 단초는 외환위기 때로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