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낮이었다. 길을 걸으면서 한 낱말을 되뇌었다. 모르는 말이 아니었다. 그런데 처음 들은 말인 양 계속 중얼거렸다. 머금다, 머금고, 머금으며…. 그러다 그만 턱이 진 길에서 발을 헛디뎠다. 등에 배낭을 멘 채 앞으로 엎어지고 말았다. 두 무릎이 얼얼했다. 2014년 4월16일에 딸을 잃은 엄마로부터 “우리는 머금고 사는데…”라는 말을 듣고 헤어진 뒤였다. 그 말이 그렇게 힘들고 아픈 말일 줄 몰랐다. 그이는 ‘빈자리’도 말했다. 딸과 아들, 부부, 해서 늘 네 자리였다. 집에서 마주앉는 식탁에서도, 외식을 할 때도 네 자리. 그러나 그날 이후 다시는 채울 수 없는 빈자리가 생겼다. 빈자리는 물리적인 공간만이 아니다. 그 사람이 아니고는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그 사람의 자리, 딸 자리, 누나 자리,..
지금 한반도 남쪽에서는 일찍이 세계정치사에서 본 일이 없는, 그리고 앞으로도 있을 것 같지 않은 시민혁명이 벌어지고 있다. 벌써 한 달이 넘게 매 주말 100만명이 넘는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광장에 모여 새로운 정치질서를 외치고 있다. 입으로는 대통령의 하야를 외치고 있지만 대통령이 자리에서 물러난다고 해서 끝날 일이 아니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만약에 이 거대한 시위가 통치능력이 없는 대통령을 권좌에서 끌어내리는 것으로 끝나고 만다면 한국인은 그저 데모나 잘하는 국민으로 세계사에 기록될 것이다. 지난 총선에서 국민은 야당을 다수당으로 만들어주었지만 이들이 집권한다고 해서 새로운 정치질서가 들어설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며칠 전에도 대통령이 어떻게든 시간을 끌어보려고 법리에도 맞지 않..
냉소적으로 정의한다면, 정치란 사적 이익을 공적 이익으로 포장 또는 승화하는 일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역으로 공적 이익을 사적 이익으로 만들었다. 적과 동지를 가르는 이분법의 정치에만 몰두했던 박근혜 대통령은 최소한의 포장마저 걷어냈다. 공인 박 대통령이 추구했던 사적 이익이 날것으로 드러났다. 그럼에도 3차 대국민담화에서 박 대통령은 “이번 일”이란 애매한 말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얼버무렸다. “단 한순간도 저의 사익을 추구하지 않았고 작은 사심도 품지 않고 살아왔”다고 말하는 대통령이, 왜 자신의 “진퇴 문제를 국회의 결정에 맡기겠”다고 하는지 담화문에서는 그 이유를 알기 어렵다. 대통령직의 최대한 연장 또는 구속을 면하는 안전한 퇴진을 위해, 즉 무엇보다도 자신의 사적 이익을 위해 시간 벌기..
지난 주말 6차 촛불집회에 230만명이라는 역사상 최대 규모의 인원이 참석했다. 자발적으로 나온 시민들이 서울과 부산 등 전국 67곳의 거리를 가득 메웠지만 불상사는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다. 지난 10월29일 2만명으로 시작한 촛불집회가 1987년 6월항쟁을 뛰어넘는 규모로 커졌고, 갈수록 더 크게 타오르고 있다. 평화와 질서를 지키면서 대통령과 정치권을 질타하는 한국 시민들의 촛불집회를 전 세계가 경탄스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촛불의 지향은 분명하다. 사회에 만연한 부조리와 불평등, 그리고 정치의 비효율과 무능 등에 대한 근본적인 개혁이다. 당면 과제인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을 넘어 낡은 체제의 교체를 시민들은 요구하고 있다. 이런 집회가 사상 최대 규모로 커진 것은 사회의 부조리와 모순이 해결되지..
세월호 유가족들이 청와대 100m 앞까지 다가가 하염없이 눈물을 쏟아냈다. 세월호 사건 진실 규명과 박근혜 대통령 퇴진 구호도 외쳤다. 지난 3일 열린 6차 촛불집회에서 있었던 일이다. 유가족들의 청와대 앞 시위는 사건 발생 이후 처음이다. 이날 전국에서 촛불을 든 230만 시민이 유가족들의 든든한 원군이었다. 전명선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은 “그동안 한번도 못 온 곳인데 시민들과 함께할 수 있어 기쁘다. 박근혜 대통령은 (세월호) 가족들이 지속적으로 요구한 것에 답변 한번도 없다. 그에 대한 사과, 꼭 받아내겠다”고 말했다. 유가족들은 그동안 박 대통령 면담 등을 요구하며 광화문 일대에서 수백일간 농성을 하고 집회를 열었지만 경찰에 가로막혔다. 박 대통령은 그동안 세월호 유가족들에 대해 ..
처음엔 광화문 세종대왕상 앞까지였다. 청와대로부터 1.8㎞. 10월29일의 첫 번째 촛불집회와 11월5일의 2차 촛불집회까지는 그랬다. 매주 광장의 함성이 커질 때마다 시민들은 조금씩 청와대 근처로 갈 수 있었다. 3차 집회는 800m 거리인 내자교차로까지, 4차 집회는 400m, 그리고 지난 주말엔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까지 갈 수 있었다. 청와대 200m 앞까지 진출한 거다. 집회와 시위를 신고하면, 경찰은 금지하고 법원이 조금 더 허용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법원의 행진 허용은 경찰의 금지조치에 빗대면 전향적인 일이지만, 법원도 기본적인 입장은 경찰의 금지와 같은 맥락이다. 다만, 경찰보다는 조금씩 더 허용하겠다는 것뿐이다. 법원이 제시하는 허용의 단서도 웃긴다. 지난번 집회를 보니 질서를 잘 지키..
“대통령직 임기 단축을 포함한 진퇴 문제를 국회의 결정에 맡기겠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어제 담화는 개헌을 염두에 둔 것으로 해석된다. 박 대통령이 개헌이라는 말을 직접 언급하지 않았지만, 새누리당 지도부와 친박 세력이 개헌을 위한 임기 단축을 제기했던 점을 고려하면 개헌론에 불을 붙이려는 의도로 볼 수밖에 없다. 박 대통령이 개헌론을 부추기는 의도는 분명하다. 그제 서청원 의원 등 친박 핵심 의원들이 거론한 것이 바로 개헌을 고리로 한 박 대통령의 명예퇴진이었다. 이런 움직임에 개헌론을 제기하면 탄핵의 대오가 흐트러질 것이라고 내놓은 게 바로 담화이다. 야권 내 일부도 개헌을 주장하므로 야권을 분열시켜 탄핵을 희석시키는 효과도 노릴 수 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폭로되었던 지난달 박 대통령은 국회에서..
‘비아그라’는 지난 한 주간 트위터상에서 가장 뜨거운 단어가 됐다. 최순실 국정농단 관련 키워드가 6주째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트위터코리아가 빅데이터 분석업체 다음소프트와 함께 21일부터 27일까지 트위터상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키워드들 중 주목할 만한 단어를 분석해 29일 발표했다. 가장 많이 언급된 키워드는 ‘비아그라’였다. 청와대가 세금으로 비아그라와 미용 주사제 등을 대량 구입한 사실이 확인되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의 주치의였던 서창석 서울대병원장은 “수행원 고산병 때문에 비아그라를 구입했다”고 해명했지만, 청와대가 고산병 치료제를 별도로 구입한 사실도 드러나면서 논란이 지속됐다. 전국에서 190만명이 모인 26일 ‘촛불집회’에 대한 관심도 높았다. 트위터에서는 광화문광장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