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촛불집회는 대한민국 시위의 새 역사를 썼다. 전국을 밝힌 190만 촛불은 사상 최대 규모요, 촛불의 절정이었다. 춥고 눈·비가 내린 궂은 날씨에도 훼손된 민주주의를 시민 손으로 직접 되살리려는 촛불은 횃불로, 들불로 번져 활활 타올랐다. 시민들은 활력이 넘쳤고 외침은 엄중했다. 시민들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직접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청와대를 동·남·서쪽으로 에워싼 인간띠 잇기는 청와대를 포위하며 행진을 벌였다. 6살 아들과 함께 나온 젊은 엄마는 “이미 민심이 대통령을 이겼다”고 했다. 시민들은 아무도 보지 않는 골목길에서도 버려진 손팻말 등 쓰레기를 주웠다. 광화문광장을 일순간 암흑으로 바꾼 ‘1분 소등 행사’에서 시민들은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고 외치며 다시 불을 붙였다. 감동과 전율..
남경필 경기지사와 김용태 새누리당 의원이 어제 새누리당 탈당을 선언했다. 김 의원은 “대통령이 민주주의 공적 기구를 사유화하고 자유 시장경제를 파괴했는데 새누리당은 이런 대통령을 막기는커녕 비호했다”며 헌법 수호를 포기한 당을 떠난다고 말했다. 남 지사는 “생명이 다한 새누리당을 역사의 뒷자락으로 밀어내고 그 자리에 정당다운 정당, 새로운 대안을 만들어 갈 것”이라고 탈당의 변을 밝혔다. 남 지사와 김 의원의 이탈은 단순히 탈당의 마중물이라는 의미를 넘어선다. 한국 정당사에서 보수당이 갈라진 일은 없었다. 새누리당 내 비박근혜계 다수가 선뜻 탈당을 결심하지 못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두 사람의 탈당 감행은 새누리당이 처한 상황의 절박성을 시사한다. 새누리당은 2003년 전신인 한나라당이 재..
지난 19일 촛불집회에서 중고생들이 “중고생이 앞장서서 혁명정권 세워내자”는 플래카드를 들고나왔다. 중고생의 패기와 치기, 그리고 생경함을 동시에 느꼈다. ‘혁명’은 사회변화에 대한 열망을 집약하는 표현이었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가 혁명이라는 표현이 점차 담론에서 사라지기 시작했다. 20세기 혁명을 대표했던 사회주의 혁명이 대부분 비인간적 체제로 귀결된 것이 주요 원인이었을 것이다. 혁명이라고 하면 새로운 사회의 건설보다 폭력과 파괴가 지배적 이미지로 떠오르게 되었다. 그래서 혁명이라는 말이 우리 사회의 담론에 다시 진입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어려웠다. 중고생의 구호는 현재 상황을 혁명과 연결시키며 이러한 생각에 문제를 제기해 주었다. 혁명이 무엇인가는 매우 복잡한 문제이다. 한나 아렌트는 이라는 책에..
오늘 2017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진다. 대학 입시의 공정성과 엄밀성은 한국 사회를 지탱하는 최후의 보루다. 입시에서는 단 한 명이라도 불이익을 받거나, 특혜가 주어져서는 안된다. 수능 문제는 전 영역에서 한 점 흠결이 없어야 한다. 하지만 올해 수험생들은 그 어느 때보다 사회적 혼란이 크고 입시 공정성이 훼손된 상황에서 시험을 치르게 됐다. ‘비선 실세’ 최순실씨 딸의 이화여대 입시부정에 수험생들은 분노를 억누르기 힘들었을 것이다. 대학은 실세의 딸을 위해 입시요강을 바꾸고, 면접 점수를 조작했다. 특혜는 입학 이후에도 계속됐다. 교수들은 일개 학생에게 상상할 수 없는 편의를 제공했다. 중학생 수준도 안되는 비문 투성이 리포트에 높은 점수를 주고 수강신청을 대신 해줬다. 그런데도 당사자는 부끄러..
민심은 앞으로 나아가는데 야당은 갈지자걸음이다. 민주당 추미애 대표는 어제 “진실규명 및 책임자 처벌에 집중하고 나머지 정치적 상상과 제안은 국민주권의 원리에 따라 국민이 결정할 일”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너무 급하게 가도 안되고, 너무 서서히 가도 안된다. 민의와 함께 가야 한다”고 했다. 민심의 흐름을 좀 더 관망하겠다는 뜻이지만 뚜렷한 전략도 대책도 없는 무기력한 모습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미 시민들에게 버림받았다. 더 이상 대통령이 아니다. 그는 최근 한 달 새 두 차례 대국민사과를 했고, 한 차례 국회를 제 발로 찾아왔다. 그동안 안하무인격 1인 통치를 해왔던 것에 비하면 상상도 못했던 장면이다. 모두 언론의 끈질긴 보도와 분노한 민심이 만들어낸 성과다. 여기까지 오는 데 야당이 한 일은 뭐..
박근혜 대통령과 비선 실세 최순실씨의 국정농단에 분노한 시민 20만명이 지난 주말 촛불을 들고 서울 광화문 거리를 가득 메운 채 박 대통령의 퇴진을 외쳤다. 촛불은 전국은 물론 해외에서까지 타올랐다. 촛불 시민 사이에는 교복 차림의 중·고교 학생들도 있었다. 기회의 균등을 보장하기는커녕 불평등을 조장한 대통령에게 절망한 미래 세대까지 거리로 나선 것이다. 박 대통령을 지지했던 70대 노인들도 길 위에 섰다. 한 노인은 “박 대통령에게 줬던 한 표를 되돌려받으러 왔다”며 배신감을 토로했다. 그야말로 지역과 나이, 이념을 넘어 시민들이 한목소리로 박 대통령에게 물러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시민들이 박 대통령의 퇴진을 외치는 이유는 하나다. 민주공화국의 복원이다. 민주국가에서 대통령은 국가 시스템의 일부일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