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24일 크리스마스이브에 경남 창원에서 열린 촛불집회 연단에 24세 청년이 올라왔다. 유튜브를 통해 본 영상에서, 그는 20세에 취직해 4년째 최저임금을 받고 있는 전기공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했다. 세금 떼고 나면 손에 쥐는 월급이 120만원인데, 방세와 교통비, 식비, 공과금을 내고 나면 저축을 할 돈이 남지 않는다고 했다. 좋아하는 사람이 있지만, 지금의 월급으로는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린다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다고 했다. 그는 궁금해서 촛불집회에 나왔다고 말했다. 그는 박근혜 퇴진 이후에 자기 삶이 나아질 수 있는지가 궁금하다고 했다. 1987년에도 시민들이 거리로 나왔고, 그다음에 노동자들이 대투쟁을 해서 임금도 오르고 삶이 나아졌다고 알고 있는데, 이번에도 그렇게 될 수 있는 건지 궁금하다고..
정치권에서 개헌론이 분출하고 있다. 여당의 분당으로 신4당 체제로 정치권 구도가 재편되면서 개헌을 매개로 한 대선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개헌론자들의 주장은 박근혜 게이트처럼 대통령의 막강한 권한이 문제가 되니 개헌을 통해 이를 해소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통령의 권한을 분산시키자는 주장, 5년 단임제를 4년 중임제로 고치자는 의견도 있다. 1987년 체제 이후 강화된 시민의 정치·사회적 권리를 헌법에 반영해야 한다는 논리도 있다. 하지만 지금 제기되는 개헌론은 생각해봐야 할 점이 많다. 우선 정치권이 당장 개헌 논의를 시작하면 모든 이슈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인다. 그런데 이번 촛불집회에서도 드러난 것처럼 시민들의 요구는 단순한 개헌이 아니다. 특권과 반칙으로 점철된 구체제의 개혁과 일신이다. 개헌론..
20세기 초 미국 노동운동의 지도자이자 대통령 선거에도 출마했던 유진 뎁스는 미국인들을 향해 말했다. “나는 설령 그럴 능력이 있더라도 여러분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지 않겠다. 왜냐하면 내가 여러분을 그곳으로 이끌 수 있다면 다른 누군가는 여러분을 그곳에서 끌고 나올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뎁스가 살아서 촛불집회를 본다면 자신의 뜻이 이 땅에서 실현되고 있다고 느낄 법도 하다. 그만큼 시민들은 특정한 정치 지도자나 정당이 감히 덤벼들지 못할 강력한 정국 주도권을 행사함으로써 국회가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가결하게 했다. 아직 확고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고 상황도 극히 유동적이지만, 주권자가 직접 나서서 기성 정치권이 나라의 새 기틀을 세우도록 강제하고 있는 현실을 혁명으로 부르지 않는다면 오히려 이..
새누리당 김무성·유승민 등 비박근혜계 의원 30여명이 어제 회동한 뒤 다음주 탈당하겠다고 선언했다. 이 모임의 대변인인 황영철 의원은 “가짜 보수와 결별하고 진정한 보수 정치의 중심을 세우고자 새로운 길로 가기로 뜻을 모았다”면서 “패권주의를 청산하는 새로운 정치의 중심을 만들어 안정적·개혁적으로 운영할 진짜 보수세력의 대선 승리를 위해 역할을 하겠다”고 밝혔다. 원희룡 제주지사 등도 탈당 의사를 밝혔다. 사상 처음으로 보수정당의 분당이 현실화한 것이다. 그만큼 보수 진영의 위기가 심각하고 새로운 보수에 대한 기대가 크다는 징표이다. 비박계의 탈당은 늦었지만 당연한 귀결이다. 새누리당 친박근혜 세력은 지난 4월 총선에 이어 국회의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 의결로 여론의 매서운 심판을 받았음에도 반성은커녕 민..
8차에 걸친 주말 촛불집회는 대통령 탄핵안 가결을 비롯해 많은 것을 이루어냈다. 지난 2개월간 정치는 여의도가 아니라 광화문광장에서 이루어졌다. 청와대와 부역자들이 여전히 파렴치하게 버티고 있으니 주말 촛불의 거센 파도는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이다. 겨울의 한파를 뚫고 완전히 새로운 봄이 올 때까지 거침없이 나아가야 한다. 정치권은 여전히 그들만의 셈법으로 거센 파도의 끝자락에 슬며시 올라타 자신의 깃발을 꽂을 궁리를 하고 있으나, 광장의 시민이 4·19혁명, 1987년 6월항쟁의 한탄스러운 뒷마무리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 한 ‘죽 쑤어 뭣 주는’ 일은 더 이상 벌어지지 않으리라 믿는다. ‘끝낼 때까지 끝나지 않은 것’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촛불 이후에 대해 염려하고 있다. 이유는 다양하지만 그중 하나는..
수백만명이 연이어 나온 촛불집회에 참석했던 지인을 만났다. 지인은 필자에게 96%의 여론이 잘못을 지적하고 있음에도 박근혜 대통령의 잘못을 결코 인정하지 않는 대한민국 4%를 우연히 만난 경험을 이야기했다. 마치 아주 신기한 무엇을 만난 것처럼 소수의 고집스러움을 조롱하듯 이야기했다. 비슷한 이야기들은 지난 두 달여간 소셜미디어 등에서도 쉽게 볼 수 있었다. 여론조사에서 대통령을 비판하는 여론이 96%에 달한다는 사실을 이야기하며, 나머지 4%의 고집스러운 단단함을 조롱하고 우리가 압도적 다수라는 자신감을 스스로에게 부여하는 일화들이다. 그런 이야기들을 접할 때마다 필자는 본능적으로 불편함을 느끼곤 했다. 압도적인 여론과 수백만명의 뜨거운 촛불로 나타난 시민들의 위대한 참여와 저항의 경이로움을 이해하지 ..
지난 리우올림픽은 박태환에게 기회의 땅이 되지 못했다. 그는 주종목인 400m는 물론이고 200m와 100m에서도 예선 탈락하고 만다. 마지막 남은 1500m는 연습 부족을 이유로 기권했으니, 8명이 오르는 결선에는 단 한 번도 오르지 못한 채 귀국하는 신세가 된다. 다들 알다시피 그는 2014년 아시안게임을 두 달 앞두고 금지약물인 ‘네비도’를 투여받았고, 이 사실이 적발됨으로써 아시안게임 메달 박탈과 더불어 1년6개월간 국제대회 출전이 금지되는 징계를 당한다. 박태환은 줄곧 “비타민제인 줄 알았다”고 주장하고, 주사를 놔준 의사를 고소까지 하는데, 어려서부터 국제대회를 숱하게 치른, 그리고 올림픽 금메달까지 딴 선수가 네비도가 금지약물임을 몰랐다는 것을 난 믿지 않는다. 그럼에도 박태환은 시종일관 억..
한 달을 훌쩍 넘어 계속되는 촛불집회에서 관심을 모으는 것 중 하나는 청소년의 참여가 크게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교복을 입고 집회에 참여하여 당당하게 자기 주장을 펼친다. 이런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미안하다’고 되풀이하거나, ‘기특하다’거나 ‘어른들보다 오히려 낫다’고 격려한다. 그런데 촛불집회에 참여하는 청소년들 중에는 이런 이야기가 별로 기분 좋지 않다는 반응을 보이는 경우도 있다. 왜 그런 것일까? 말한 사람이 의도하지는 않았을지라도 청소년들에게는 이런 말들에 ‘너희는 아직 어리다’라는 의미가 깔려 있는 것으로 비쳤을 것이다. 실제로 우리 사회는 청소년이 미성숙한 존재라고 강조해 왔다. 그래서 어른의 ‘지도’를 받아서 생각하고 행동해야 하는 것이 청소년이라고 여겨왔다. 촛불집회 참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