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시대 유물을 왜 기어코 부활시키려는 겁니까?” “정말 그 이유를 모르세요?”황교안 국무총리는 답답해했다. 2015년 10월7일 서울 삼청동 총리공관. 그날 아침 보수신문 두 곳에 ‘정부가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최종 결정했다’는 기사가 실렸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다수 여론이 반대하는 국정화를 유보하고 ‘검정 강화’로 갈 것이란 관측이 많았다. 마침 중견 언론인들의 총리 간담회가 예정돼 있었다. 국정화 강행으로 선회한 배경에 질문이 집중됐다. 경향신문은 특히 국정화를 강력히 비판해온 터다. 그래서 비슷한 질문을 거듭했던 것 같다. 즉답을 피하던 총리가 결국 한마디 했다. 몰라서 묻느냐는 표정이었다. ‘박근혜 대통령 뜻이 확고한데 누가 무슨 수로 막겠어요?’가 생략됐음을 알았다. 내각을 통할하는 정권의..
박근혜 전 대통령의 ‘비선 실세’로 국정농단 사태의 핵심 인물인 최순실씨가 1심에서 징역 20년형을 선고받았다. 대통령과의 친분을 이용해 사익을 챙기고 국가기강을 뒤흔든 행태에 대한 엄정한 심판으로 받아들인다. 법원은 최씨 혐의 대부분을 유죄로 인정하고, 이 중 상당 부분에서 박 전 대통령과의 공모관계를 인정했다. 최씨에게 중형이 선고된 만큼 박 전 대통령에 대해서도 중형 선고가 불가피해졌다. 특히 박 전 대통령은 국가 최고지도자에게 요구되는 청렴성과 도덕성을 심각히 훼손한 만큼 민간인인 최씨보다 더 무거운 처벌을 받게 될 가능성이 커졌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2부는 13일 “최씨의 광범위한 국정개입으로 헌정사상 초유의 대통령 파면 사태까지 초래됐다”며 “그 주된 책임은 헌법상 책무를 방기하고 헌법상 지위..
박근혜 전 대통령의 ‘비선 실세’이자 국정농단 사태의 ‘몸통’ 최순실씨에 대한 1심 재판 심리가 14일 마무리됐다. 최씨가 재판에 넘겨진 지 13개월 만이다. 박영수 특별검사팀과 검찰은 최씨를 징역 25년에 처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현행법상 유기징역 최대 형량은 30년이며, 최씨는 앞서 이화여대 입시·학사비리와 관련해 징역 3년을 선고받은 바 있다. 따라서 특검·검찰의 구형량은 사실상 유기징역의 최대치를 구형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헌정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을 몰고온 최씨에 대한 심판은 역사적·사법적 정의를 바로 세우는 작업에 다름 아니다. 법원의 준엄한 판단이 요구된다. 특검은 “최씨는 박 전 대통령과의 오랜 사적 인연을 바탕으로 국정운영에 깊숙이 관여하고 그 과정에서 뇌물을 수수했다”면서 “..
2013년 1월 국내 최대 재벌 부회장 아들의 중학교 부정입학 사건이 한국 사회를 뒤흔들었다. ‘귀족학교’로 통하는 모 국제중에 ‘사회적 배려 대상자(사배자)’ 전형으로 입학한 것이 문제였다. 한국 최고 부자의 아들이 사배자라니. 시민들의 분노는 당연했다. 학교 측은 부모가 이혼해 사배자 전형의 ‘한부모가족’ 대상이라고 해명했다. 국제중 일반전형은 모집정원의 3배수를 뽑아 공개추첨으로 합격자를 선발한다. 돈이 많고 권력이 있어도 운에 맡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반면 사배자 전형은 서류 심사만 통과하면 합격할 수 있다. 소위 ‘빽’이 통하는 것이다. 특권층 자녀의 입시부정만큼 학부모를 허탈하고 분노하게 만드는 것은 없다. 그럼에도 예나 지금이나 입시비리가 끊이지 않는다. 지난해에는 최순실의 딸 정유라씨의 ..
문재인 정부 출범이 최순실씨 딸 정유라씨의 ‘철없는 행동’에서 비롯됐다고 하면 지나친 비약일까. 최씨가 삼성의 뇌물을 받은 것은 당시 스무 살도 안된 정씨의 갑작스러운 임신·출산과 관련이 있다. 어린 딸의 장래가 걱정된 최씨는 사람들 눈을 피해 딸을 독일로 보내기로 마음먹었다. 승마 강국 독일은 승마 선수인 정씨가 그렇잖아도 전지훈련을 가고 싶었던 곳이다. 비선 실세의 존재를 일찍부터 간파한 삼성이 정씨를 위해 그랑프리대회 우승마와 생활비 등을 댔다. 최씨가 재벌·대기업의 팔을 비틀어 K스포츠재단을 설립한 것도 2020년 도쿄 올림픽에서 딸이 금메달을 따는 데 도움이 되게 하겠다는 계산이 작용했다. 결국 정씨 임신이 ‘독일 승마 유학 → 삼성 뇌물 수수와 K스포츠재단 설립 → 언론 추적 보도와 검찰·특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호위무사를 자처하고 나선 친박계 인사들의 행태가 점입가경이다. 자유한국당 소속 서청원·최경환(총괄), 윤상현·조원진·이우현(정무), 김진태(법률), 민경욱(언론), 박대출(수행) 의원 등 8명은 박 전 대통령을 보좌하기 위한 역할 분담까지 마쳤다. 친박계 의원들은 비선 실세 최순실씨 일당의 국정농단으로 나라가 밑동부터 썩어가고 있는 동안 대통령을 앞세워 호가호위하며 온갖 권세를 누려왔던 세력이다. 국정의 주축이었던 이들만 정신차렸더라도 작금의 국정 붕괴는 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뼈저린 반성과 참회는커녕 법치를 부정하며 대결과 갈등을 키우는 데 앞장서고 있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다. 이들 중 김진태 의원은 “대통령을 끝까지 지키겠다”며 14일 대선 출마까지 선언했다. 아예 대놓고 ..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검찰을 비판하고, 검찰개혁을 말한다. 하지만 어떤 수사든 유무죄는 법원에서 가려진다. 법원의 최종적인 승인 없이 검찰만의 전횡은 불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검찰권력은 반드시 법원권력과 함께 논의되어야 한다. 법원권력의 한가운데에는 대법원이 있다. 과거와 달리 지금의 대법원은 정권의 외압을 받지 않는다. 지금의 대법원은 권력에 자발적으로 복종하고 있다. 특히 박근혜 정권 들어서 대법원이 보여준 권력지향성은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수준이었다. 2015년 1월 박상옥 한국형사정책연구원장이 대법관에 임명제청된 것부터 이상했다. 박 원장은 박종철 고문치사 은폐 사건의 담당검사 출신이다. 아무리 검찰 출신이 대법관에 임명될 차례라고는 하지만, 박종철 고문치사 은폐 ..
박영수 특검은 어제 90일간의 수사를 마무리하면서 “한정된 수사기간과 주요 수사대상의 비협조 등으로 특검 수사는 절반에 그쳤다”고 자평했다. 청와대 압수수색과 대면조사를 거부한 박근혜 대통령의 성역을 끝내 넘지 못한 데 대한 회한의 표현이다. 이제 공은 다시 검찰로 넘어갔다. 특검이 다 드러내지 못한 국정농단과 정경유착의 나머지 부분을 검찰이 밝혀내야 할 차례다. 관건은 박 대통령에 대한 수사를 마무리하고,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 비위의 마지막 연결고리를 찾는 것이다. 최순실씨 일가의 의심스러운 재산 형성, 최씨 딸 정유라씨의 학사 부정 등은 드러난 것보다 밝혀내야 할 부분이 더 많다고 특검도 인정했다. 검찰이 맡은 역할이 특검의 뒤치다꺼리나 하는 정도가 아니라는 말이다. 특검이 수사에서 성과를 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