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눈이 많은 올해다. 밤새 소복이 쌓인 눈처럼 12월의 밤들도 소리 없이 내려앉으며 한 해의 끝에 닿고 있다. 지난 한 해 숨 가쁘게 달려온 우리들 마음속 시간들을 포근히 감싸는 하얀 위로들이다. 지난 26일자 경향신문의 1면 첫 화두는 ‘77만원세대’였다. 통계청의 ‘2017년 가계금융·복지조사’ 결과 지난해 30세 미만 저소득 청년 가구 한 달 소득이 78만원이었다는 것이다. 2007년 여름 우석훈·박권일이 저서 를 통해 비정규직으로 상징되는 청년의 불안한 삶을 공론화한 지 꼭 10년 만이다. ‘88만원세대’가 ‘삼포세대(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한 세대)’라면, ‘77만원세대’는 스스로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어)’이라고 한다. ‘생’ 자체를 부정하는 허깨비 같은 삶들의 절망이 가슴에 박힌다. 2..
2000년대 초 대학입시에 논술이 화두였다. 논술은 객관식인 대학수학능력시험의 한계를 극복하고 수험생의 사고력과 논리력을 측정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지만 일선 교육 현장에 접목이 쉽지 않았다. 당시 서울대 입학관리본부장으로 논술 출제와 채점을 맡았던 김영정 교수(철학과·2009년 작고)가 두 개의 논술 전범(典範)을 제시했다. 하나는 대통령 취임사, 다른 하나는 헌법재판소 판결문이었다. 취임사는 필자(대통령)가 우리 사회의 문제점이나 당면 과제로 의제를 설정한 뒤 그것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형식의 글이다. 독자(시민)의 생각이나 행동을 변화시키기 위해 논리적이면서도 감성적인 전략을 사용한다. 헌재 판결문은 찬반·시비 논란이 있는 사안에 자신의 의견이나 주장을 피력하는 형식이다. 제3자를 자기편으로 끌..
대한민국의 대통령은 국민에 의해, 국회를 거쳐, 그리고 지난주 금요일 헌법재판소에 의해 최종적으로 파면당했다. 이것은 언론방송이 묘사하는 것처럼 ‘승복’의 대상도 아니며, 누군가가 희망하는 것처럼 재고(‘재심’)의 여지가 있는 것도 아닌,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최종적이고 단순명료한 현실의 서술일 따름이다. ‘대통령’ 앞에 붙여진 ‘전(前)’이라는 글자는 시간의 비가역성(非可逆性)만큼이나 무겁고 절대적이다. 그것이 굳이 폭죽을 터트릴 만큼 감격스럽거나 자랑스러운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똑같은 이유로, 땅을 치며 통곡을 할 필요도, 애꿎은 분노를 표출할 이유도 없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한 일은 그저 헌법이 미리 규정한 대로 탄핵과 파면의 절차를 밟았을 따름이기 때문이다. 탄핵의 대상이 자연인 박..
박영수 특별검사팀 수사 결과 박근혜 대통령에게 뇌물 등 5개 혐의가 추가됐다. 검찰이 밝힌 기존 8개 혐의를 더하면 총 13개에 이른다. 최순실씨 등 비선 실세에 의한 국정농단, 그에 따른 국민주권주의와 법치주의 훼손 등 박 대통령 탄핵 사유는 이로써 더욱 분명해졌다. 특검 수사의 최대 성과는 박 대통령이 최씨와 공모해 삼성그룹으로부터 433억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가 확인됐다는 점이다. 특검은 433억원의 성격과 관련해 박 대통령이 공권력과 국가 기구를 동원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원활한 합병 등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도운 대가라고 못 박았다. 헌법재판관 출신으로 박 대통령 대리인단의 핵심인 이동흡 변호사는 “삼성 관련 소추 사유가 뇌물수수에 해당한다고 입증되지 않는 이상 파면 사유가 ..
간통죄는 뿌리가 깊다. 고조선의 팔조법금에도 명시돼 있다. 조선시대에는 간통을 저지른 자는 장형(杖刑) 80대, 유부녀는 90대를 쳤다. 그런 간통죄가 1990년 헌법재판소 테이블에 처음 올랐다. 6 대 3 합헌. 시기상조라는 취지였다. 그리고 2015년 2 대 7 위헌. 성적 자기결정권 침해라는 이유였다. 고조선부터 2100년간 건재했던 간통죄는 헌재 심판 5차례 만에 사라졌다. 법은 진리가 아니다. 절대 불변도 아니다. 진리는 달라지지 않는다. 태양을 중심으로 지구가 돈다는 지동설은 진리다. 법은 세월에 따라, 사회 변화에 따라 개정되고 폐지되고 새로 만들어진다. 헌재는 법의 흥망성쇠를 다루는 곳이다. 1988년 창립 이래 29년간 헌법적 가치를 판가름하며 역사적 결정을 내렸다. 호주제, 동성동본 금..
2004년 3월12일.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안의 국회 처리를 앞둔 그날 윤영철 당시 헌법재판소장과 출입기자단의 오찬간담회가 예정돼 있었다. 날을 잘못 잡아도 한참 잘못 잡았다. 1년에 한 번 있는 정례 기자간담회인데 몇 달 전에 잡힌 일정이라 어쩔 수 없었다. 오전에 서초동 검찰 기자실에서 TV로 중계되는 국회 상황을 보면서 설마 탄핵안이 통과될까 했다. 앞서 많은 여론조사에서 탄핵 반대가 찬성보다 두 배 이상 많다는 결과가 나온 터다. 야당이 국민들의 뜻을 거스르면서까지 무리를 하겠는가라는 단순한 생각이었다. 그러곤 헌재가 있는 재동으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버스가 한강 다리를 건너는 순간 라디오에서 탄핵안이 통과됐다는 긴급 뉴스가 흘러나왔다. 기자들의 휴대전화가 일제히 울어댔다. 대통령 탄핵이라는 ..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사진을 보면 심심찮게 태극기를 발견한다. 광주 금남로 옛 전남도청 옆 상무대에 모셔 놓은 희생자의 관 위에 태극기가 덮여 있는 사진은 충격적이다. 광주시민은 왜 태극기를 들었을까. 먼저 동료 시민과 공동체를 지키기 위한 항쟁이었다. 또 걸핏하면 정적과 시민들을 빨갱이로 몰아붙였던 군사정권에 이용당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시민들의 예상대로 신군부는 고정간첩이 선동하고, 불순분자들이 일으킨 폭동이라고 했다. 하지만 북한의 개입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태극기는 광주시민들이 정체성, 순수성을 드러내기 위한 도구이자 상징이었다. 1987년 6월 항쟁 당시에 인상 깊은 사진도 있다. 대형 태극기를 뒤로 하고 한 사내가 웃통을 벗은 채 양손을 들고 다탄두 최루탄이 쏟아지는 도로를 뛰는 사..
1일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탄핵 찬반 집회가 동시에 열렸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찬성하는 촛불과 탄핵에 반대하는 세력이 태극기를 들고 청와대로 행진했다. 3·1운동은 민족 전체가 계급·지역·이념·종교를 초월해 일으킨 독립운동이었다. 선열들은 한마음으로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며 대동단결했다. 꼭 98년이 지난 지금 서울 도심에선 3·1정신과는 정반대되는 장면이 펼쳐졌다. 안타까운 일이다. 일견 3·1절은 둘로 쪼개진 것처럼 비친다. 하지만 현 시국을 촛불과 태극기 대결 구도로 몰아가는 건 올바른 평가가 아니다. 촛불은 박 대통령과 최순실 일당이 헌법질서를 무너뜨린 데 대한 시민의 분노에서 시작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우리 사회 불평등·불공정·불의에 대한 좌절과 분노를 폭발시킨 기폭제였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