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8년 한 해 동안 정말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미투 운동, #불법촬영·편파수사·편파판결 반대 운동, #스쿨미투 운동, #낙태죄 폐지 운동, #탈코르셋 운동 등 새롭고 창의적인 페미니즘 운동이 한국 사회를 흔들었습니다. ‘미투운동과함께하는시민행동’과 ‘불편한용기’는 각각 여섯 차례 대규모 집회를 개최한 바 있으며, 낙태죄 폐지를 위한 1인 시위가 지속되었습니다. 소셜네트워크를 통해 확장된 탈코르셋 운동은 외신의 주목을 크게 받았고, ‘청소년페미니즘모임’은 유엔 아동권리위원회의 초청을 받았습니다. 한편으로 아프고 슬프고 고통스러운 한 해였지만, 우리는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들에게 ‘수치스러움’을 돌려주고, 감추었던 경험을 말하고 지지하고 연대하고 싸우는 법을 배웠습니다. 몰카, 야동, 리벤지포르..
김지영. 우리 곁 어디에나 있는 흔한 이름이 2018년 지금 한국 여성을 대표하는 위상을 얻었다. 2016년 출간된 조남주 작가의 덕분이다. 은 2년 만에 100만부 판매를 돌파했다. 2007년 김훈의 (2001), 2009년 신경숙의 (2008) 이후 9년 만이다. 가슴을 뜨겁게 하는 이순신 장군, 눈시울을 붉히게 하는 엄마가 아닌 평범한 여성의 이야기, 그것도 페미니즘에 대한 백래시가 상당한 한국에서 그야말로 기적 같은 일이다. 이런 기적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페미니즘 책이 눈에 띄게 팔리기 시작한 것은 2016년이다. 출판계도 깜짝 놀랄 정도의 판매량은 20대를 위시한 여성들이 주도했다. 한국 사회의 여성혐오를 온라인에 국한된 것으로 애써 부정하던 여성들은 강남역 여성 살인 사건을 통해 ‘말이 칼이..
지난 11월3일. 학생의날을 맞이하여 교사들의 교내 권력형 성폭력에 대한 해결 및 예방책 마련을 촉구하는 ‘스쿨미투’ 집회가 열렸다. 이 집회에서 청소년 페미니스트들은 “여학생을 위한 학교는 없다”고 외쳤다. 2015년 이후 대중 페미니즘 운동은 대체로 익명의 청년 여성을 중심으로 하는 소비자 운동의 형태였다. 얼굴과 이름을 내놓고 자신의 정치적 의견을 표현했을 때 여성들에게 돌아온 것은 해고와 2차 가해, 무고죄 고발, 그리고 조리돌림이었으므로 이는 어쩌면 필연적인 일이었다. 그러나 #미투에 이르러 여성들은 자신의 얼굴과 이름을 내걸고 싸우기 시작했다. #스쿨미투도 마찬가지다. 교사의 권력형 성폭력을 고발한 이후에 학생들은 진학과 취업 등을 빌미로 2차 가해를 당해왔다. 그들의 싸움은 이런 현실적 위협..
그날은 8월14일, 일본군 ‘위안부’ 기림일이었습니다. 27년 전, 고 김학순 할머니께서 강철보다 단단한 벽을 넘어 너무나도 어렵게 그러나 너무나도 당당하게 수많은 기자들이 모인 곳에서 자신의 경험을 밝힌 날이었습니다. 자연스러운 남성의 성욕이자 여성의 숙명으로 여겨져 피해자가 감추어야 할 정조에 관한 죄일 때, 가문의 수치이자 민족의 수치로 손가락질당할 때, 바로 그 일이 가부장제와 식민주의, 군사주의가 공모한 어마어마한 성폭력 범죄행위임을 낱낱이 전 세계에 알린 그날이었습니다. 가족과 공동체, 국가가 모두 외면하던 시절, 피해자가 생존자로 다시 활동가로 거듭나면서 수많은 다른 피해자들의 손을 잡기 시작한 그날, 전 세계를 돌며 ‘거리에서, 강연장에서, 법정에서’ 피해 사실을 알리고 진실을 규명하고자 ..
세상 모든 일에 호기심 넘치던 이십대 초반에 페미니즘을 접했을 당시 내가 어떤 고민을 가졌는지 한동안 까맣게 잊고 살았다. 그러다 십년이 훌쩍 지나 다시 마주한 페미니즘은 그야말로 ‘다시 만난 세계’였다. 두 번째 만난 글들은 이전의 나보다 지금의 나에게 훨씬 더 구구절절하게 와닿았고, 때론 가슴 깊이 찔러서 깊은 반성을 하게 만들기도 했다. 다양한 삶의 경험이 쌓이면서 공감할 여지가 훨씬 늘어났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페미니즘을 공부하며 해방감을 느꼈다고 한다. 자신이 받아왔던 불편부당한 대우를 명확히 인식하게 되고 이를 말로 설명할 수 있게 되는 과정에서 힘을 얻어 스스로 아픔을 치유해가는 과정을 경험하는 것이다. 그런데 함께 페미니즘을 공부하는 사람들끼리 ‘페미니즘을 만난 이후 삶이 더 편안해졌..
검찰 내 성폭력을 고발한 서지현 검사가 소설처럼 쓴 글을 보면서 가슴에 와 박혔던 구절은 ‘아버지가 나빴다’ ‘어머니가 나빴다’라는 것이었다. 그는 검찰 통신망에 올린 글에서 “모든 게 아빠 때문이었다. 이 땅에서 살아남게 하기 위해서는 여자를 착하고 예쁜 딸로 키워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그 어떠한 불의도 참아내지 말라고, 그 어떠한 부당함에도 입 다물지 말라고, 욕설을 하고 소리를 질러대며 절대로 세상과 타협하지 말고 네 멋대로 살아가라고 가르쳐줬어야 했다. 이 모든 게 엄마 때문이다. 이 땅에서 여자를 살아남게 하기 위해서는 참고 또 참는 모습을 보여주어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그 어떤 불합리도 참아내지 말라고, 여성이라고 무시하거나 업수이 여기는 것은 더더욱 참아내서는 안된다고, 멱살을 휘어잡고 주먹..
지난해 11월 국립생태원장으로 재직 중이었던 진화생물학자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를 인터뷰했을 때 슬그머니 물었다. “페미니스트들은 진화론을 여성비하적이라고 비판하는데….” 최 교수는 몇몇 학자들이 잘못 소개했다고 했다. 최 교수는 2004년 여성단체연합으로부터 ‘올해의 여성운동상’을 받았다. 과학적 근거로 호주제 폐지에 대한 정당성을 제시했다는 공로였다. 최근 법무부 장관 후보자에서 사퇴한 안경환 서울대 교수의 책 가 여성비하적이라고 비판을 받았다. ‘몰래 혼인신고’ ‘여자와 술’ 같은 내용은 비판을 받을 만하다. 이 부분은 빼고 진화론과 관련된 부분만 보자. ‘진화심리학적으로 보면 남자는 여자의 유혹에 약하게 진화되어 있다. 여자는 생존을 보장해주는 한 남자와 안정된 관계 속에서 자녀를 양육하는 데 ..
얼마 전 페미니즘과 관련된 프로젝트 제의를 받으면서 갈등한 적이 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갈등은 다소 복잡한 것이었다. ‘나같이 평범한 사람이 무슨 대단한 페미니스트라고’라는 겸양도 들어있지만, 한편에는 페미니스트라고 분류되는 순간 감당해야 할 많은 불이익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다. 페미니스트라고 하면, 늘 올바르고 도덕적이며 자기주장이 강한 여전사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남녀가 함께 모여 사는 세상에서 분리되어 여자로만 가득 찬 울타리 안에서 옳은 소리만 하는 운동가의 이미지도 떠오른다. 나는 아직 그곳에 가고 싶은 생각이 없다. 인권 운동가나 투사가 되기에는 너무 자기중심적이며 멋대로인 데다 그렇게 도덕적이지도 않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나는 남자를 적으로 돌리고 싶지 않다. 많은 의미에서 나는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