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는 세월호 참사 이후 8년 만에 또다시 수많은 때 이른 죽음들을 목격하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망자의 숫자는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59명, 146명, 151명. 이태원 참사 소식이 전해지면서 피해자와 그 가족들이 먼저 떠올랐고, 그 뒤를 이어 유가족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세월호 참사, 대구지하철 참사, 산재 유가족들의 얼굴들. 대구지하철 참사 유가족들은 세월호 참사 소식을 들으며 오래전 자신이 겪은 참사의 고통이 생생하게 되살아나 숨을 쉴 수가 없었다고 했다. 기이하게도 끔찍한 재난일수록 피해자들에 대한 악의적인 말들이 튀어나온다. 놀러갔다가 죽었다는 말이 무심코 던져지는 사회에서는 일하다 죽었다는 말도 무겁게 다뤄지지 않는다. 생존자는 살아 돌아왔다는 이유로 죄인이 되기도 하고, 구조 ..
수도권에서 지하철로 출퇴근하는 시민들은 이제 ‘장차연’(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라는 단체를 모를 수 없다. 지하철 승강장과 차량 안에서 귀에 못이 박이도록 ‘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시위 때문에’ 운행이 지연된다는 안내방송을 듣기 때문이다. 폭설, 화재, 폭우와 관련한 안내는 빼먹어도 이것만은 결방이 없다. 나에게는 이 방송을 들을 때마다 자동 재생되는 기억이 있다. 2000년대 중반, 사회와 건강 문제를 토론하는 의대 수업시간이었다. ‘장애인이동권연대’가 제작한 다큐멘터리 를 시청한 후 한 학생이 질문했다. “근데 이 분들은 왜 꼭 버스를 타려고 할까요?” 매일 본인 승용차로 등교하는 이 학생은 저들의 선택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자가용이나 택시를 타면 되지, 왜 꼭 사람 많은 버스를 고집해서 저렇..
SNS라는 용어는 우리 사회에서 누구든 어디에서나 가장 흔하게 사용하는 말 중 하나가 되었다. 요즘 들어서는 이 말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라고 부연 설명하는 방식으로도 많이 사용하고 있다. 모든 사람들이 아무런 의심 없이 이 SNS라는 말을 쓰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SNS라는 영어는 정작 영미권에서 통하지 않는다. SNS라고 말하면 알아듣지 못하는 것이다. 영미권에서는 우리가 말하고 있는 SNS 대신 ‘소셜미디어(social media)’라는 용어가 사용되고 있다. 물론 영미권에서 ‘소셜네트워킹서비스(social networking service)’라고 풀어서 사용하면 그 의미가 어느 정도 통할 수는 있다. 그렇지만 사실 영미권에서 이 표현은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특히 우리가 사용하는 SNS라..
사물화는 타인을 물건 취급하다가 결국엔 자신조차 상품으로 만든다 팔리지 않는 상품 되지 않으려면 대통령은 지금 돌아서야 한다 통치에서 상호공감의 정치로 “헌정사 관행이 무너졌다.” 대통령 말이다. 대통령의 시정연설을 외면한 야당에 책임 묻기다. 하지만 더 큰 책임은 정치를 실종시킨 그 자신이다. 정치 불신으로 정치에 수갑을 채웠기 때문이다. ‘정치 없는 통치’, 곧 대통령의 시행령 통치와 검찰 통치가 나라를 어지럽힌다. 헌정사 관행 따위의 문제가 아니다. 헌정질서 자체가 흔들린다. 정치는 상호 공감과 인정이다. 통치는 일방적 관찰과 감독이다. 무엇이 먼저일까? 사태를 합리적으로 파악하는 인지적 능력은 대통령에게 매우 중요하다. 대통령은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감정에 흔들리지 않는 공정한 관찰자의 위치를 벗어..
민생보단 정쟁으로 치달았던 국정감사가 끝나고 본격적인 예산심사 기간에 돌입했다. 국회는 지난 28일 내년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예산소위를 국민의힘 6명과 더불어민주당 9명 등 총 15명으로 구성했다. 그런데 비교섭단체는 제외하고 교섭단체인 거대 양당 의원들로만 소위를 채워 다양한 각도에서 꼼꼼하게 심사해야 할 예산을 두고서도 정쟁으로 치닫지 않을지 걱정스럽다. 윤석열 정부가 9월2일 국회에 제출한 내년 예산안은 639조원으로 올해(607조7000억원) 대비 5.2%가량 증가했다. 정부는 건전재정이라며 자랑스럽게 내놓았을지 몰라도 최근 6년간 최저 증가율이며, 민생과 관련한 예산들이 상당수 삭감되어 시민들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건전재정은 지출 구조조정으로만 접근할 게 아니라 증세와 신세원 발굴을 통해..
한 150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의 화폐는 대부분 ‘엽전’이었다. 그런 까닭에 사극에서 자주 엽전이 등장하고, 현대를 살아가는 이들도 엽전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안다. 하지만 엽전의 의미를 아는 이들은 드물고, 엽전과 관련해 잘못 쓰는 말은 많다. 엽전은 ‘잎 엽(葉)’과 ‘돈 전(錢)’으로 이뤄진 말로, 한자의 의미만 놓고 보면 ‘잎사귀 돈’이다. 유용하게 쓰이는 잎사귀도 있지만, 대개의 잎사귀는 쓸모없이 버려진다는 점에서 ‘잎사귀 돈’은 좀 생뚱맞다. 그다지 가치가 있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엽전은 어떤 의미를 담은 말이 아니라 그것을 제작하는 과정 때문에 생겨난 말이다. 엽전은 금속활자를 만드는 방식과 마찬가지로 여러 개의 동전 모양이 있는 틀에 쇳물을 부은 후 이것이 식으면 하나씩 떼어내고 연마해서..

‘이태원 핼러윈 참사’ 현장 인근의 한 상점에 30일 희생자들을 애도하며 휴업한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연합뉴스 119신고 후 2분 만에 구조대원들이 사고 현장에 도착했다. 하지만 초동 구조 작업에 어려움을 겪었다. 비좁은 골목길에 옴짝달싹할 틈도 없이 들어찬 인파를 헤쳐나갈 수 없었다. 사방에서 구해달라, 살려달라는 비명과 울음이 터져나왔다. 목격자들은 사람들이 계속 밀리고 버티고 깔리는 상황이 1시간 넘게 이어졌다고 했다. 결국, 지난 29일 밤 이태원은 축제를 즐기러 나온 수많은 시민이 목숨을 잃고 다친 참사의 현장이 됐다. 시민 다수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서로를 도왔다. 자발적으로 손을 뻗고 팔을 걷어붙여 인명 구조에 나섰다. 구조대가 오기 전부터 길에 떠밀려가던 사람들의 손을 잡아 난간 위로 끌..

월드시리즈 개막을 하루 앞둔 27일(현지시간)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 경기장의 전광판에 필라델피아 필리스와 휴스턴 애스트로스의 팀 로고가 띄워져 있다. EPA 연합뉴스 미국 필라델피아는 정치·경제적으로 역사가 깊은 도시다. 영국의 식민지 지배를 받던 미국이 1776년 독립선언문을 발표한 곳이다. 미 제헌의회가 열렸고, 워싱턴으로 옮기기 전 10년간 임시 수도였다. 미국인이 자국 화폐를 사용할 수 있게 한 주조국이 처음 설립됐고, 증권거래소도 여기서 생겨났다. 필라델피아 연방준비은행이 발표하는 제조업지수는 미국 산업 동향을 보여주는 지표로 널리 쓰인다. 극성 스포츠팬이 많기로 유명한 필라델피아에는 야구(필리스)·농구(세븐티식서스)·아이스하키(플라이어스)·풋볼(이글스) 등 4대 프로 스포츠팀이 있다. 한 도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