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 경제 시국이다. 미 달러당 원화 가격이 지난 9월22일을 기점으로 1400원대를 찍은 후 ‘강달러’는 계속되고 있다. 11월 현재 한국은행 기준금리는 3.00%다. 이 또한, 미 연방준비제도의 금리 인상 속도에 따라 환율과 금리는 요동칠 것이다. 9월 소비자물가 상승률(5.6%)을 감안할 때, 전문가들은 이 정도의 상승폭이 상당 기간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더해 레고랜드 사태로 경색된 채권시장은 기업의 자금줄을 조이고 있다. 그야말로 기업은 ‘돈맥경화’ 위기다. 한국은행 발표에 따르면 올해 8월 우리나라 경상수지는 30억5000만달러 적자를 나타냈다. 또한 원·달러 환율 방어를 위해 보유 달러를 매도한 결과 9월 말 외화보유액은 한 달 전보다 196억6000만달러 감소했다고 밝혔다. 글로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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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든 다른 주제를 잡아 보려 했다. 수천 년 쌓인 고전에는 지혜로운 말, 마음 비추는 글이 무한정 있으니, 마감 시간이 닥치면 뭐라도 잡아서 쓸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뉴스며 사회관계망서비스(SNS)며 며칠째 눈과 귀를 온통 메우고 있는 저 참혹한 시공간의 이야기들에 나까지 무언가 더 얹을 만한 이유도, 자신도 없었다. 이 짤막한 글만이라도 그 일과는 전혀 무관한 내용으로 채우고 싶었다. 그게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걸, 너무 늦게 깨달았다. 이 칼럼을 백지로 남겨 둘 수만 있으면 좋으련만. 결국 그렇게 회피하고 싶었던 그 슬픔으로 메울 수밖에 없음을 다시 깨닫는다. 어린 자식 넷을 연달아 잃은 서른 살의 아버지 장유의 애도시를 가져다가, 도무지 쓸 수 없는 글을 힘겹게 채운다. “하늘 아래 이런 일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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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인종 배려입학 제도(어퍼머티브 액션) 위헌소송 심리가 시작된 31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의 연방대법원 밖에서 제도 유지를 요구하는 학생들이 시위를 벌이고 있다. AP연합뉴스 1960년대 미국 민권운동의 성과 중 하나가 사회경제적으로 불이익을 받아온 소수계를 우대하는 정책인 ‘어퍼머티브 액션’의 도입이다. 대표적인 것이 대학 교육의 다양성을 위해 인종을 입학을 결정할 요소 중 하나로 인정하는 소수인종 배려 입학제다. 덕분에 흑인과 원주민, 라틴계와 아시아계 학생들은 명문 대학 입학 때 혜택을 받아왔다. 미국을 지탱하는 유산이라는 평가도 있지만, 백인들에 대한 역차별 논란을 부르면서 미 사법계의 대표적인 논쟁거리가 된 것도 사실이다. 그동안 이 정책에 대한 미 연방대법원의 판결은 세 차례 있었다. 첫 ..
사안 자체에 압도당할 때가 있다. 이번이 그런 경우이다. 이렇게 시작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이들이여, 부디 좋은 곳에 가시길. 모든 고통을 잊고 자유롭고 평온하시기를.” 2022년 가을, 서울이란 대도시 한복판에서는 믿어지지 않는 참사가 이어졌다. 굵은 빗줄기 속에서는 지하에 있는 집이, 선선한 가을밤에는 인파가 몰린 이태원 거리가 그런 일이 벌어지는 장소가 되었다. 그다지 위험하다고 여겨 본 적이 없는 곳이었다. 파도가 거친 새벽 바다도 아니었으니까. 어느 누구든 그 자리에 있을 수 있었다. 특히 그 거리에는 많은 이들이 가고 싶어 했고, 수시로 찾아가기도 했다. 어떤 이들에게 그곳은 삶의 터전이었다. 한 사람이라도 더 살리기 위해 사람들이 혼신의 힘을 다한 그 밤이 지났고,..
마음이 무겁다. 꽃다운 이들이 스러졌다. 교단의 일원으로서 유구무언일 따름이다. 자식을 키우고 있는 부모로서는 피눈물이 날 지경이다. 억울한 젊은 영혼들 앞에 마뜩한 진혼도 떠오르지 않는다. 한때 젊은이들 사이에 ‘헬조선’이라는 얘기가 유행한 적이 있었다. 경제는 효율성만 좇아 양극화되었고 정치는 깃털같이 가벼웠으며 안보는 충돌 전야를 방불케 했다. 다행스럽게 당시의 젊은이들은 ‘헬조선’이라는 난파선을 탈출하기보다는 부서진 함선을 직접 개조하는 위대한 여정에 나섰다. 촛불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한 광장정치는 갈피를 잡지 못하는 권부의 무책임성에 대한 조건 반사로 시작해, 정치·경제·안보 상황이 직면한 총체적 난국을 타개하기 위한 직접정치로 진화했다. ‘촛불혁명의 위임권력’임을 자처한 문재인 정부 5년의 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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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그루의 나무에 넓은 땅을 내어주는 게 불가능하리라 여겨지는 서울 도심에서 이례적으로 넓은 공간을 차지하고 살아가는 600년 된 큰 은행나무가 있다. 서울 방학동 은행나무다. 하늘 향해 25m까지 솟아오른 나무는 지름 20m가 넘는 원형 공간의 땅을 홀로 차지했다. 이 나무는 명성황후가 임오군란을 피해 여주로 떠날 때 치성을 올린 나무라고도 하고, 조선 후기 경복궁 증축 때 징목(徵木) 대상에 선정되어 베어내야 했지만, 마을 사람들이 대원군에게 간청하여 살아남았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대감 나무’라는 별명은 그래서 붙여졌다. 장대한 위용의 ‘서울 방학동 은행나무’는 크고 아름다운 나무라는 점에서도 보존 가치가 높지만, 정작 더 특별한 건 사람들의 극진한 배려를 받으며 살아남았다는 점이다. 사람 중심의 ..
벌써 세 번째이다. 보수 정부에서 위험이 핵심적인 사회현상으로 등장하는 것 말이다. 박정희, 노태우, 김영삼 정부 때에도 위험은 도처에 도사리고 있었지만 지금과는 양상이 달랐다. 노동현장에서 일어나던 수많은 사고는 회유 혹은 탄압의 대상이 되었고, 취약한 사회 인프라로 인한 일상의 위험은 숙명처럼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그 이후에는 상황이 달라졌다. 이명박 정부 때의 광우병 사태와 4대강 사업, 박근혜 정부 때의 세월호 참사, 그리고 윤석열 정부 들어 일어난 이태원 참사는 이제 고질화해가는 보수 정부의 패턴처럼 느껴져서 국민을 불안하게 한다. 이명박 정부는 위험의 사회화와 그 반작용으로서의 위험의 정치화를 최초로 경험했다. 이익을 보는 집단은 분명한데 그에 따르는 위험은 불특정 다수에게로 분산시켜버릴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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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에 펜(27.5×35㎝) 빽빽하게 가득 차 있는 언덕 위의 집들과 아파트를 봅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 너와 나 사이의 거리는 어느 정도면 적당할까요? 서로 웃음 지으며 인사하고 때론 부딪치고 짜증 내며 살아가던 이웃들이 갑자기 가깝게 다가오면 왠지 모르게 부담스럽습니다. 서로 적당히 알고 적당히 모른 척하며 그렇게 적당한 거리를 두고 사는 것이 서로 편한 관계로 오래갈 거 같습니다. 답답한 골목길에서, 답답한 만원 지하철에서, 답답한 엘리베이터에서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지며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적당한 거리를 생각해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