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들 사상은 잘못됐어. 반대하는 의견들을 무시하잖아!” 며칠 전 지역 행사에서 들었던 분노에 찬 발언이다. 토론회가 한창 진행 중이었는데 동성애를 반대한다는 참석자가 느닷없이 소리를 질렀다. 그는 이 분노를 표출하기 전까지 자신을 보라는 듯 손을 높이 들고 있었다. 당시 토론회는 혐오와 차별 없는 사회를 위한 연대와 인권교육을 주제로 여러 논의를 이어가고 있었다. 발제자와 토론자의 발언이 끝난 뒤 이어지는 질문 시간에 그는 당신들이 반대 의견을 무시한다고 울분을 터트리며 격앙을 이어갔다. 끝을 예상할 수 없는 뜨겁고 거친 발언이 이어질수록, 청중과 참석자는 얼어붙고 초조해졌다. 그는 줄곧 동성애 반대를 주창하며 말을 이어갔다. 토론회 주제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자신의 이야기들이었다. 얼마 전 열린 ..
올해는 1972년 국토종합개발계획이 처음 시행된 지 50주년이 되는 해이다. 우리나라가 경제개발을 계획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1962년 제1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을 시작한 지 10년 후인 1972년, 우리 국토의 체계적이고 계획적인 개발을 위하여 제1차 국토종합개발계획(1972~1981)이 시행되었다. 국토종합개발계획은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대통령이 승인하는 법정 계획으로 국토와 지역, 도시 분야 최상위 계획의 위상을 갖는다. 이 계획에 의거하여 경제개발과 국민의 생활환경 개선을 뒷받침하는 도로, 철도, 공항, 항만, 댐, 산업단지, 관광단지 등 각종 사회간접자본이 건설되었다. 경제개발이 정부 주도에서 민간 주도로 바뀌면서 경제개발 5개년계획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하지만 국민의 삶의 터전인 국토에 대한..
현대인들에게 판단력과 분별력은 개개인의 행복 지수, 건강(수명), 경제 상황 등에 큰 영향을 미치고, 사회 전체의 안녕과 발전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우리는 흔히 “한국 사람들은 뛰어나다”라고 한다. 나도 이 말에 동의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체로 남들이 생각하지 못한 창의적인 방법으로 일을 되게 하는 능력, 가시적인 목표를 달성하는 (또는 승부에서 이기는) 능력, 뛰어난 예술적 창의성 등을 갖고 있다. 하지만 한 가지 약점이 있다. 그것은 아주 기초적인 것에 대해서조차도 합리적인 판단이나 분별을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점이다. 판단과 분별은 의미가 살짝 다르다. 분별은 어떤 것들의 차이를 인지하거나, 옳고 그름을 구별하는 것을 뜻한다. 좋은 판단력을 갖기 위해서는 당연히 논리적인 사고력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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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잉이라고 비판받을지 몰라도, 반복적 붕괴를 경험하는 사회에서 탈출하려면 ‘안전의 여유분’부터 만들어 놓아야 한다 따라서 이태원의 좁은 공간에 수백 명이 운집할 수 있다는 신호를 받았다면, 그곳에 ‘안전의 여유분’을 만들었어야 했다 안전의 여유분 없는 사회에서 고통스럽게 희생된 청년들과 그 가족들에게 깊은 애도의 마음을 전한다 외국 생활에서 당혹스러웠던 경험을 말해보라고 하면 단골로 등장하는 것이 있다. 그중 하나가 화재경보기다. 부엌에서 생선이나 고기를 굽기만 하면 그렇게 요란하게 울릴 수가 없다. 처음에는 경보기가 붙어 있는 천장까지 다가가 연신 부채질을 해서 경고음을 멈추게 하는 식으로 처리한다. 물론 재빠르게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동네 사람들을 짜증나게 할 수 있다. 혹시라도 아파트의 어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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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 김상민 기자 1989년 4월15일, 영국 프로축구팀 리버풀 FC와 노팅엄 포레스트의 경기가 열린 힐즈버러 경기장에서 94명이 압사하고 700명 넘게 다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리버풀 팬들의 전세버스가 도로정체로 연착해 한꺼번에 몰린 게 시작이었다. 검표소에서 극심한 병목현상이 벌어진 상황에서 ‘누군가’가 출입문을 열었다. 몰려드는 관중은 통제되지 않았다. 양측면에는 다소 여유 공간이 있었지만, 인파는 이미 초만원이던 중앙구역으로 몰렸다. 경기 시작 5분 만에 보호철망이 무너지며 아비규환이 빚어졌다. 경찰은 술에 취한 훌리건들이 표도 없이 경기장에 난입해 벌어진 단순사고라고 발표했다. 황색언론들은 리버풀 팬이 출입문을 열었다는 등 경찰이 흘린 정보를 그대로 받아썼다. 유족들은 경찰로부터 사망자가 ..
미리 써놓은 글인데 어떡하나. ‘미디어비평’ 마감 날 아침에 일어나니 이태원 압사사고 사태로 세상 참담하다. 써둔 글의 취지가 비판적이라 표현이 뾰족해서 도저히 그대로 내고 싶지 않다. 그렇다면 새로 써야 하는데, 아침에 정신없이 읽고 본 바를 언급할 수도, 안 할 수도 없어 곤혹스럽다. 독자께서는 다음 이어지는 문장들이 이런저런 고민 끝에 서둘러 마감한 꼴이라 그렇다고 양지해주시길 바란다. 그렇다면 도대체 뭐가 뉴스란 말이냐. 내가 사실만으로 뉴스가 되는 건 아니라고 말할 때 돌아오는 질문이다. 이 질문에 답해야 할 사람은 정작 뉴스를 만들어 먹고사는 분들이라 해야겠는데, 표준 정의를 따르더라도 기자가 쓴 것이 곧 뉴스이기 때문이다. 불행하게도 이렇게 답해야 소용없다. 현대 언론의 문제는 대체로 누가 ..
영국 정치가 수상하다. 지난 20일 리즈 트러스 총리가 취임 44일 만에 사임하고 25일 리시 수낵 신임 총리가 취임했다. 수낵 총리는 인도계 이주민 3세로 영국 역사상 최초의 비백인 출신 총리라는 점에서 주목받는 대상이 됐다. 트러스 전 총리도 영국 역사상 최초의 40대 여성 총리로서 30대 중반부터 12년에 걸쳐 환경장관, 재무차관, 교육장관, 국제통상장관, 법무장관, 외무장관 등의 요직을 두루 거치며 커다란 관심을 받았다. 그러나 트러스 전 총리는 영국 역사상 최단기 총리에다 정책 실패로 인한 사임이라는 불명예를 안았다. 2016년 브렉시트 문제로 물러난 캐머런 총리 이후 6년 동안 다섯 번째 총리 교체가 이어져 ‘총리 재임 기간이 양상추 유통기한보다 짧다’는 농담을 현실화한 인물로 거론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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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너를 데리고 갈 데가 결혼 말고는 없었을까 타오르는 불을 지붕 아래 가두어야 했을까 반복과 상투가 이끼처럼 자라는 사각의 상자 야생의 싱싱한 포효 날마다 자라는 빛나는 털을 다듬어 애완동물처럼 리본을 매달아야 했을까 침대 말고 아이 말고 내 사랑, 장미의 혀 관습이나 서류 말고 아찔한 절벽 흘러내리는 모래 모래 모래시계 미치게 짧아 어지러운 피와 살 무성한 야자수 하늘 향해 두 손 들고 서 있는 모래 모래 모래사막 독수리의 이글거리는 눈망울을 사랑하는 너를 문정희(1947~) 진학, 취업, 결혼 등 인생의 분기점이 있다. 진학이나 취업이 혼자 이뤄야 한다면, 결혼은 상대가 있어야 가능하다. 결혼은 단순히 사랑하는 사람과 사람의 결합이 아닌 집안과 집안, 문화와 문화의 만남이다. 확장된 관계와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