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국가는 직업계고 현장학습제도를 포기 못할까. 문제가 많다면 개선의지는 있는지 모르겠다. 청소년들이 위험한 환경에서 목숨을 잃고 있는데도 말이다. 일터에서의 존엄성은 고사하고 차별 및 부당대우에도 적절한 권리구제 수단도 없다. 현장실습생의 신분은 학생이다. 그런데 때에 따라서는 노동자와 유사한 일을 수행한다. 그렇다 보니 학생이 일을 하는지 일하는 학생인지 구분도 힘들 정도다. 직업계고 현장실습은 특성화고와 마이스터고 그리고 일반고 직업반 학생이 참여한다. 직업교육이 청소년의 학습권보다 강조되면서 피해가 적지 않다. 인문교육 미흡, 진학 결정의 정보 부족, 노동권·건강권 침해 등이 언급된다. 2011년 A자동차 공장의 실습생 뇌출혈부터 2021년 여수 요트업체 실습생 사망사건까지. 지난 10년 동안 실..
월드컵은 국가대항전이다. 국가나 집단에 대한 유대감은 누구나 있는 성향이다. 소속감은 의도적으로 동원되었을 때 문제가 된다. 월드컵을 중계하는 영상은 국기, 전통의상, 민족 정체성 상징물을 자주 비춘다. 축제의 분위기를 고조시키기 위한 의도된 연출이자, ‘승부와 경쟁’을 자극하기 위해 기획된 배치이다. 월드컵에서 국가 간 대결 때보다는 인간애의 공통성을 발견할 때 더 깊이 감동한다. 월드컵에 처음 출전한 약소국가를 응원하는 진정 어린 마음에서 1954년의 한국 축구대표팀을 만난다. 축구를 통해 강렬한 존재감을 증명해내는 이변의 주역들에게서는 1966년 런던 월드컵의 북한 대표팀 모습이 그려진다. 국내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나라의 대표선수들이 자국민에게 희망과 위로를 전하려는 투혼에서 2002년 한국..
영국의 윌리엄 왕세자 부부가 지난달 30일 미국 보스턴을 방문했다. 왕세자 부부는 기후 변화와 환경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고자 본인이 설립한 조직인 어스샷 상(Earthshot Prize)을 주기 위해서 미국을 찾은 것이다. 왕실이 최근 몇 년 동안 채택한 대의명분인 이 상은 그들의 존재를 정당화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나, 어찌 되었든 기후 문제에 국제적인 여론을 환기시키는 데 기여하고 있다. 그런데 구태여 영국에서 미국까지 와서 시상식을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올해는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문샷(Moonshot) 60주년이 되는 해이며, 보스턴은 미국 혁명의 요람이자 케네디 가문의 고향이기 때문이다. 어스샷이라는 상의 이름은 케네디 대통령의 “문샷” 이니셔티브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다. ‘문샷’은 ‘달 ..
아침 출근길의 클래식방송. 어쩌다 사소한 일로 남편과 불편한 관계에 놓였다는 어느 사연을 진행자가 상냥하게 소개한다. 이에 한 청취자가 득달같이 한 말씀을 보탠다. “어떤 집이든 뚜껑 열면 다 끓고 있어요. 비등점만 조금 다를 뿐이죠.” 이 정도의 멘트라면 세계문학전집을 두루 꿰뚫는 경지가 아닐까. 자주 막히는 짜증의 길에서 혈로 뚫듯 오늘은 뚜껑에 관해 생각해 본다. 굳게 닫힌 세상의 뚜껑을 열겠다는 듯 도로는 팽팽 돌아가는 바퀴들로 가득 찼다. 예전 술을 즐길 때 아침에 뜻밖의 뚜껑을 호주머니에서 발견하기도 하였다. 심심한 손이 지압용으로 챙겼던가 보다. 그때 소주병 뚜껑은 왕관처럼 생겼으나 이젠 손으로 돌려 딸 수 있다. 어느 날엔 자루 달린 두레박 같은 뚜껑을 작정하고 하나 챙겼다. 더러 붓글씨라..
이중섭의 ‘길 떠나는 가족’이란 작품이 있다. 그림을 보면, 가족을 소달구지에 태운 채 한 사내(이중섭)가 신명나게 황소를 끌고 있다. 목적지는 따스한 남녘. 달구지에 올라탄 부인과 두 아들도 한껏 즐거운 표정이다. 이중섭은 1954년 이 그림을 그렸다. 이중섭은 이 작품의 밑그림과 편지를 일본에 있는 부인에게 부쳤다. 가족들이 일본에 있었기 때문이다.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이중섭은 가족과 함께 서귀포에서 피란 생활을 했다. 이듬해 이중섭은 가난 등으로 인해 부인과 아들을 일본으로 보내야 했다. 이 그림은 그래서 밝고 경쾌한 듯하지만 슬프고 아련하다. 이중섭 미술은 이렇게 그리움으로 가득하다. 이중섭 부부에게는 실례되는 얘기지만, 그들의 이별이 있었기에 이중섭의 절절한 미술이 태어날 수 있..
(48) 정동 옛 법조 단지 1971년 대법원, 2021년 대법원 터. 셀수스협동조합 제공 1988년 발표된 이문세의 히트곡 ‘광화문 연가’는 제목에 ‘광화문’이 들어 있으나, 그 가사에서 연인들이 걷는 곳은 광화문이 아니라 ‘덕수궁 돌담길’과 언덕 밑 ‘정동길’이다. 두 사진은 지금도 연인들이 데이트코스로 많이 찾는 덕수궁 돌담길과 정동길이 만나는 조그만 사거리에서 남쪽을 바라보고 촬영한 것이다. 사거리를 둘러싸고 동북쪽에는 덕수궁, 서북쪽에는 미국대사관저, 서쪽에는 정동교회가 자리 잡고 있다. 1971년 사진에서 벽돌로 만든 육중한 문 뒤로, 나무에 가려 반쯤 보이는 오른쪽의 갈색 건물이 대법원 청사이며, 옥상에 높은 철탑이 있는 건물은 법원과 검찰이 나누어 쓰고 있었다. 즉 이 일대가 각급 법원과 ..
미국과 중국에서 변곡점이 될 수도 있었던 정치 일정이 일단 일단락되었다. 중국에서는 제20차 공산당 대회가 개최되었고, 미국에서는 중간선거가 있었다. 모두 일반 전문가들의 예측을 벗어난 결과들이 나왔다. 시진핑의 3연임은 일반적으로 예측하였으나, 이토록 권력을 집중할지는 아무도 예상치 못했다. 미국에서는 공화당의 압승이 예상되었으나, 하원에서 겨우 승리하였고, 상원에서는 여전히 민주당이 주도하게 되었다. 국제정치로 가면 그 예측은 더더욱 어려운 영역이 된다. 국내정치 변수는 물론이고, 통제할 수 없는 국제적 변수는 더 많아져 전문가의 분석이나 예측은 종종 빗나간다. 미국 바이든 행정부의 국가안보 보좌관인 제이크 설리번이 2019년 포린 어페어스(Foreign Affairs)에 기고한 글에서 주장했듯이 국..
한국 축구국가대표 선수들이 2022 카타르 월드컵 조별리그 H조 포르투갈과의 경기를 하루 앞둔 1일(현지시간) 카타르 도하 알 에글라 훈련장에서 훈련을 하고 있다. 도하 | 권도현 기자 ‘적토마’ 고정운, ‘황새’ 황선홍, ‘왼발의 달인’ 하석주의 후반전 연속 골로 한국 축구가 북한에 3-0 대승을 거뒀다. 그런데 선수들은 비통한 얼굴을 감추지 못했다. 이겼어도 ‘탈락’이 확실했기 때문이다. 모두 고개를 떨구고 힘없이 그라운드 밖으로 걸어나오는 순간, 대반전이 일어났다. 선수들이 갑자기 얼싸안고 환호하며 기쁨의 눈물을 쏟았다. 관중석의 한국 응원단은 “대한민국 만세”를 외쳤다. 1994년 미국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마지막날 3경기가 동시에 열린 1993년 10월28일, 카타르 도하에서 벌어진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