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공영방송의 보도에 불만을 표시했다. KBS나 MBC를 보지 않는다는 말도 했다. 대통령이 되고 난 후 여당의 주요 인사들은 공영방송을 정파적이라며 비난했다. 임기가 남은 MBC 사장의 퇴진을 공개적으로 주장했다. KBS에는 감사가 시작됐다. 수개월이 지났지만 감사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이례적이다. 공영방송 사장이나 이사 선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방송통신위원회도 정기 감사라 하지만 장기 감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것도 이례적이다. 게다가 방송통신위원회 감사 중 점수를 수정한 심사위원들을 검찰에 넘겨 압수수색까지 하는 등 수사가 진행 중이다. 심사위원의 판단이 달라지면 새 심사지에 수정하던 것을 해당 심사부터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기존 점수지에 수정하도록 했다. 그런데 이 ..
직장 일이 힘든 것에 비해 급여가 적어 보람을 느끼지 못한다면 한두 번 무단결근의 유혹을 느꼈을 것이다. 월급을 받으면서 이에 상응하는 일을 하지 않으면 직장에서 그에 따른 징계를 받으면 된다. 그런데 무단결근을 했다고 형사처벌을 받는다면? 더욱이 고용관계도 아니라서 어차피 출근할 의무도, 출근으로 변제할 대가(월급)도 없는 관계였다면? 국가에 의한 강제노역 아닐까. 이런 일이 지난주에 벌어졌다. 화물연대의 파업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은 업무개시명령을 내렸고 형사고발이 시작되면서 화물차주들은 정부의 강경한 대응에 밀려 다시 운송을 시작하게 되었다. 보수·진보 언론들은 차량유지비, 기름값을 빼고 월 500만원을 벌고 있는가, 200만원을 벌고 있는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그건 핵심이 아니다. 월 500만원..
녹은 쓸쓸함의 색깔 염분 섞인 바람처럼 모든 것을 갉아먹는다 세상을 또박또박 걷던 내 발자국 소리가 어느 날 삐거덕 기우뚱해진 것도 녹 때문이다 내 몸과 마음에 슨 쓸쓸함이 자꾸만 커지는 그 쓸쓸함이 나를 조금씩 갉아먹었기 때문이다 아주 오래된 건물에 스며드는 비처럼 아무리 굳센 내면으로도 감출 수 없는 나이처럼 녹은 쓸쓸함의 색깔 흐르는 시간의 사랑 제때 받지 못해 창백하게 굳어버린 공기 김상미(1957~) 녹은 공기 중의 산소에 의해 산화, 즉 부식되면서 생긴다. 상온에 40% 정도의 습도가 필요하다. 철은 붉은색, 구리는 녹청색의 녹이 스는데 시인은 이를 “쓸쓸함의 색깔”이라 한다. 쓸쓸함은 혼자라는 외로움에서 찾아온다. 사랑의 부재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나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이 곁에 없어 느끼..
윤석열 정부 들어 부쩍 자주 언급되는 단어가 있다. 국격이다. “이번 국격 훼손은 국제적 망신을 넘어 국익 훼손까지 이어질 수 있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가 국제노동기구(ILO)의 화물연대 파업 개입을 두고 한 말이다. “국격이 무너진 일주일. 윤석열 대통령은 국민께 사과하기 바랍니다.” 지난 9월 윤 대통령이 해외 순방을 마치고 귀국하기 직전에 나온 더불어민주당의 논평이다. 대통령실이 언급한 사례도 있다. 윤 대통령이 월드컵 대표팀 환영 만찬을 여는 등 묵혀뒀던 청와대를 잇달아 사용한 후 대통령실은 국격에 맞는 행사에는 청와대를 활용하겠다고 밝혔다. 국가의 품격을 평가함에 있어 내부의 왈가왈부보다는 외부의 시선이 더 중요하다. 정략적 편들기나 비판보다는 한 발 떨어진 국제사회의 평가가 더 객관적이다. ..
2022년 한 해가 저물어 간다. 이제 산골 마을 논과 밭은 모두 겨울방학에 들어갔다. “아이고, 농사일이 오데 끝이 있는가. 고마 죽어삐야 끝나지.” 마을 어르신들이 죽어야 끝난다던 농사일도 잠시 방학이다. 이젠 틈틈이 뒷산에 가서 내년 가을까지 아궁이에 넣을 장작을 하거나 밭두둑에 비닐 대신 쓸 부엽토를 긁어 놓으면 된다. 그리고 장날에 가서 겨울 간식으로 먹을 옥수수와 현미 뻥튀기를 하고, 무를 썰어 겨울 햇볕에 말릴 때이다. 밤이 오면 아내랑 돋보기를 쓰고 벌레 먹거나 쪼그라진 녹두와 팥을 가려내고, 빛깔 좋고 잘생긴 녀석들은 미리 주문한 분들한테 택배로 보내야 한다. 가끔 두더지가 파헤쳐 놓은 마늘밭과 양파밭에 가서 두둑을 꾹꾹 밟아 준다. 그래야만 긴 겨울 내내 뿌리가 얼어 죽지 않는다. 농약..
교원의 학생생활지도 조항을 신설하는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이 지난 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 법 통과를 위해 교원단체는 “교단에 드러눕는 학생에게 교사가 손가락도 대지 못할 정도로 교권이 추락했다”며 백방으로 국회에 로비를 했다. 언론도 ‘날개 잃은 교권’ ‘교실 붕괴’라는 자극적인 단어를 반복하며 비슷한 기사를 열심히 찍어냈다. 그리고 이 법은 전광석화처럼 빠른 속도로 처리되었다. 학생 인권을 보호하면 교권이 침해되는가? 이 물음은 교권과 학생 인권이 서로 대립관계에 있음을 전제로 하며, 이 둘의 균형을 잘 맞춰야 하는 것이 합리적인 해결책인 양 호도한다. 그러나 교권과 학생 인권은 대립관계가 아니다. 교권은 시민이자 미래인 학생을 잘 교육하기 위해 국가가 교원에게 위임한 권한이기에 당연히 학..
20여년 전, 대한민국에 공무원노조를 만들어 보자고 7명의 공무원이 처음 노동상담소로 찾아왔다. 첫만남이어서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 저녁밥을 샀다. 헤어지려고 하는데 서울의 한 구청 공무원이 물었다. “앞으로 공무원들은 몇천명이나 해직을 당할까요?” 내가 답했다. “전교조가 2000명이나 해직당하면서 길을 잘 닦았으니까… 훨씬 적게 해직당하겠죠.” 웃으며 나눈 대화였지만 사실 매우 가슴 아픈 일이다. 공무원노조를 설립하고 합법화되기까지 징계받은 공무원은 3000명가량이나 된다. 파면·해임된 공무원은 내 기억으로 약 550명이다. 화물연대의 파업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은 “불법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했다지만 지금까지 노동자들은 불법을 통하지 않고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었다고 해도 지나친..
거짓 논리 뒤서 부정의 빚어내는 그들을 두고 볼 수만은 없다 법왜곡법이 실효성은 떨어져도 적어도 위하·상징적 기제로서 효과는 있으리란 주장에 끌린다 더불어민주당이 지난 11월15일 중점적으로 추진할 것으로 발표한 주요 법안 중엔 법왜곡죄 도입법이라는 게 있다. 판사나 검사가 부당한 목적으로 법을 왜곡하여 해석 적용할 때 또는 증거나 사실을 조작할 때 형사처벌한다는 내용으로 알려졌다. 법왜곡법의 입법 논의는 2018년 시작되어 이제 네 번째다. 어느 일간신문의 사설은 이 법안의 “발상 자체가 놀랍다”고 했지만, 그렇지 않다. 독일, 스페인, 노르웨이 등 여러 유럽 국가에도 이와 비슷한 내용의 법률이 제정되어 있고 실제 처벌례도 제법 있다. 왜곡이란 ‘사실과 다르게 해석하거나 그릇되게 함’을 뜻하는데, 독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