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동에서 산 일기책 이야기를 하다 보니, 생각이 옛날의 일기로 번진다. 다만 현재 남아 전하는 것은 조선시대의 일기뿐이다. 그것도 조선전기의 것은 불과 3종이고 나머지는 모두 조선후기의 것이다. 그중 몇 가지 실례를 들어보자. 먼저 조선전기의 일기다. 이문건(李文楗·1495~1567)이 1535년부터 1567년까지 쓴 는 달아난 노비를 잡아다 매를 친 이야기, 전답 문제로 소송한 이야기, 맹인을 불러 점을 친 이야기 등 16세기 사족의 일상을 세세하게 들여다볼 수 있다. 에는 노비에 관한 이야기가 퍽 많은데 이것을 모두 뽑아 정리하면 조선전기 노비에 대해 구체적이고 풍부한 지식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유희춘(柳希春·1513~1577)이 1568년에서 1577년까지 쓴 는 개인사는 물론이고, 그가 선조..
한 달에 한두 번 보수동 헌책방 골목을 드나든다 하니, 무어 대단한 책이라도 잔뜩 사들이는 것 같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그냥 산보 삼아 들르는 것이다. 쉬는 날 이따금 아내와 버스를 타고 남포동에서 내려 광복동 거리를 걷다가 영화관에서 영화도 보고, 국제시장 깡통골목 부평시장으로 돌아다니며 구경을 한다. 깡통시장에는 최근 야시장도 생겨서 밤에 볼 것이 더 많다. 어떤 날은 둘이 깡통골목을 거쳐 대청동까지 올라간다. 나는 길을 건너 보수동 책방골목으로 가고 아내는 깡통골목을 더 뒤지고 다닌다. 한 두어 시간 지난 뒤 다시 만난다. 나는 배낭을 지고 서점을 훑고 지나가는데 무슨 좋은 책이 있으리라고는 기대하지 않는다. 책방골목은 그냥 헌책을 파는 곳일 뿐이지 일본 도쿄의 ‘간다(神田)거리’처럼 고서점이 밀..
대학 다닐 때 별로 없던 책이 본격적으로 늘어난 것은 대학원 시절부터다. 현금을 주고 살 수 없는 영인본을 외상으로 사고 달마다 갚아나갔다. 그렇게 해서 늘어나는 책을 보면서 내 지식이 늘어나는 것처럼 착각하며 뿌듯해한 적도 있다. 한데, 대학에 자리를 잡고 나니, 책이 불어나는 속도가 빨라지기 시작했다. 책을 사는 핑계도 여럿이다. 지금 진행 중인 연구에 꼭 필요한 책이기 때문에 사들이는 경우는 나무랄 필요가 없다. 하지만 연구와 관계없는 책도 사들이는 데 문제가 있다. 전공과는 상관없지만 워낙 고전으로 소문이 난 책이라서, 그 책을 읽지 않으면 무언가 시대에 뒤떨어질 것 같아서 산다. 또 내가 이런 책을 사주지 않으면 누가 사주랴 하는 어쭙잖은 동정심(?)에서 산 책도 있고, 심지어 장정이 너무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