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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전화 한 통을 받았습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의 ‘민주가족 송년의 밤’에 참석할 수 있냐기에 ‘병원 일이 바빠서 못 간다’고 했습니다. ‘따뜻한 손길 마주잡고 새 하늘 새 땅을 열어가는 뜻깊은 자리’…. 못 가는 게 아니라 안 간다고 하는 게 정확한 표현일 것입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지금은 고문 같은 국가폭력을 치유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지만 2008년만 해도 생소한 이야기였습니다. 오직 ‘진실의 힘’만 믿고 재심으로 간첩 누명을 벗고자 한 피해자들은 여전히 고문 후유증으로 고통 받고 있었습니다. 고문조작 피해자들이 공신력 있고 권위 있는 국가기구에서 고문 치유 상담을 받을 때, 훨씬 치유효과가 좋고 안정적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 고문 치유를 제안하고 2대 이사장인 함세웅 신부님을 만났습니다.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상처 입은 사람들의 고통을 어루만지는 일이 기념관 짓고 기념비 세우는 것보다 중요하다고 설득했습니다. 함 신부님도 동의하셨지요. 실무팀과 수차례 회의를 하고 상담을 진행할 정신과 전문의와 함께 햇빛 따스하고 나무 잘 보이는 치유 공간을 구해서 커튼도 달고 소파와 테이블도 들여놓았습니다. 모든 준비를 마쳤는데, 치유 대상자를 정하는 데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기념사업회는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정신적 피해를 입은 자와 그 가족’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조작간첩’이나 국가보안법 위반자를 치유 대상에 넣을 수 없다는 거였습니다. ‘민주화운동’은 3·15의거, 4·19혁명, 6·3한일회담반대운동, 3선개헌반대운동, 유신헌법반대운동, 부마항쟁, 광주민주화운동 및 6·10항쟁에 국한된다는 법 규정을 내밀더군요. 저는 “정 안되면 1차는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하고, 2차나 3차에 ‘조작간첩’들도 포함시키자”고 호소했지만 기념사업회는 “안된다”는 말만 되풀이했습니다.

유엔 등 국제사회는 ‘고문 없는 세상’을 위해서는 고문 생존자의 치유를 최우선의 인권 과제로 추진해야 한다고 권고합니다. ‘진실화해위원회’란 이름은 빌려왔지만 칠레·남아공 역사의 상처를 안고 있는 모든 나라에 있는 ‘고문피해자 재활센터’ 하나 없는 대한민국…. 민주정부 10년의 과거사 청산은 법적, 제도적 차원에 그쳤고, 국가폭력 피해자 개인의 상처는 뒷전이었습니다. 독재정권의 감옥에서 ‘조작간첩’들이 겪었던 차별과 배제가 민주정부의 기념사업회에서 똑같이 반복되는 것은 엄청난 충격이었고, ‘민주화운동’이 아니기 때문에 치유대상에서 제외한다는 말은 또 다른 트라우마를 안겨주었습니다. 국가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방치했기 때문에 결국 인권 운동가와 변호사, 정신과 전문의를 도와서 의사이자 고문생존자인 저도 힘 보태 봉은사에서 고문피해자 치유프로그램을 시작했고, 뜻있는 분들의 힘으로 마침내 광주트라우마센터가 만들어졌습니다. 고립무원 상태에서 고문당하고 불공정한 재판의 피해자가 되고 하소연 한 번 변변히 못한 이들이 겪어 온 겹겹의 트라우마는 치유 역시 복합적이고 중층적입니다. 고문 때문에 파괴된 자아와 일상을 회복해야 하고, 트라우마를 야기한 원인을 밝혀서 책임을 물어야 하고, 진실과 정의를 세우기 위해 다 함께 노력해야 합니다. 이런 일이 되풀이되지 않는다는 법적, 제도적, 사회적 보장이 있어야 제대로 된 치유가 이뤄질 수 있습니다.

박정희·전두환 군부정권 시절,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국가권력에 의해 고문당하고 간첩으로 조작됐습니다. 이 ‘조작간첩’들은 수십년 감옥에서 고난의 청춘을 보냈고, 출소 뒤엔 본인은 물론 가족들까지 사회에서 배척당하며 울분과 눈물의 세월을 견뎌야 했습니다. ‘민주화운동’이 독재권력에 반대하는 투쟁만이 아니라, 독재권력의 그늘에서 눈에 띄지 않게 희생된 분들의 아픔을 먼저 보듬어야 하지 않을까요? 정의를 실현하는 데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면, 우선 이 국가폭력 희생자들의 상처를 치유하는 일부터 시작하는 게 ‘기념사업’의 순서 아닐까요? 독재와 야만의 세월을 견뎌온 다른 나라처럼 고문피해자 치유센터를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 만들고자 한 저는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이었습니다. ‘민주인사’가 이사장을 맡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내세운 ‘민주’와 ‘인권’은 ‘조작간첩’ 앞에서는 또 다른 폭력일 뿐이었습니다.

고등학생으로 1980년 5월 광주에서 총을 들고 지키려 했던 민주주의, 14년 비전향으로 온몸에 새긴 양심의 자유, 인류 공동체가 간절하게 염원하는 고문 없는 세상. 제가 꿈꾸는 민주, 인권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의 ‘민주’ ‘인권’과 다르다는 걸 저는 압니다. 아쉽고 슬프지만 그때 이후 저는 ‘당신들의 천국’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 가지 않습니다.

<강용주 | (재)진실의힘 이사·아나파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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