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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쏟아지는 비와 따가운 햇살 아래 446.44㎞를 묵묵히 걷는 사람들이 있다. ‘부랑인’으로 낙인찍혔던 형제복지원 피해 생존자들이 부산 주례동 형제복지원 터 앞부터 청와대까지 22일 동안 국토대장정을 벌이고 있다. 이들은 외친다. “우리를 왜 가두었는가? 특별법 제정으로 형제복지원 진상을 규명하라!”

행진을 시작하기 전, 피해 생존자 한종선씨가 나를 찾아와 감기약, 진통제, 해열제를 챙겨 갔다. 여덟 살 어린 나이에 열한 살 누나와 함께 끌려간 한종선씨는 84-10-3618이다. 1984년 10월에 3618번째 입소한 ‘부랑인’이란 뜻이다. 그는 2012년 여름, 국회의사당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여 형제복지원의 민낯을 다시 세상에 알리고 망각의 벽을 깨뜨렸다. ‘84-10-3618’이란 숫자가 아니라 ‘한종선’이란 인간으로 살고 싶다고 절규했다.

“형제복지원 사건은 사회정화사업이라는 이름 아래 86년 아시안게임, 88년 서울올림픽을 목표로 해서 국가가 밀어붙인 것입니다. 전국의 공권력이 움직였기에 가능했던, 대한민국의 어두운 역사입니다. 형제복지원의 기억이 저로 인해 다시 파헤쳐지는 게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잘 알지만, 제가 할 수 있는 다른 일은 없었습니다. 이제 저희들이 트라우마 없이 살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프레모 레비가 증언했듯, 유태인들도 수용소에 끌려가면 이름 대신 왼쪽 팔뚝에 문신으로 헤프틀링(포로) 번호를 새겼다. 레비의 왼쪽 팔뚝에 새겨진 ‘174517’은 그의 묘비명이 됐다. 아우슈비츠도, 형제복지원도 끌려가면 머리를 빡빡 깎인다. 레비의 표현처럼 ‘머리카락도, 명예도 이름도 없이, 날마다 구타당하고 추접하게 사는’ 인간 이하의 존재가 되는 것이다. 숫자가 된 사람은 짓밟고 학대해도 죄책감을 느낄 필요가 없는 ‘물화된 존재’일 뿐이다. ‘한국판 아우슈비츠’로 불리는 형제복지원의 수용자들도 이름 대신 78-374, 82-2222 등 숫자로 불렸다.

형제복지원은 사회복지시설이라는 간판을 달고 1975년부터 1987년까지 12년간 운영됐다. 1975년 ‘부랑인’을 선도한다는 명목으로 고아·장애인뿐 아니라 밤늦게 역에서 TV를 보는 사람, 술 취해 거리에서 자는 회사원도 주민등록증이 없으면 연행해서 수용했다. 형제복지원은 12년 동안 1만8000여명, 많을 때는 한꺼번에 3146명이나 수용했다.

이들은 사람이 아니라, 정부 보조금을 따내기 위해 상품처럼 분류되는 숫자에 불과했다. 이렇게 해서 박인근 원장이 챙긴 정부 보조금은 1987년 한 해에만 무려 20억원이었다. 불법 감금된 수용자들은 하루 10시간의 강제노역에 시달렸다. 저항하면 굶기고, 구타하고, 심지어 살해하여 암매장했다. 형제복지원 서류로 밝혀진 공식 사망자만 최소 513명인데, 대부분은 굶어 죽거나 맞아 죽었다니 생지옥이 따로 없었던 것이다. 시신 중 일부는 300만~500만원에 의과대학 해부 실습용으로 팔려나갔다.

6월항쟁 30년, 원생 35명의 집단 탈출로 형제복지원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지 30년이지만 ‘숫자로 남은 사람들’은 잊히고 있다. 가해자인 박인근 원장은 특수감금죄에 대해 무죄를 선고받았고, 수감 중에도 사우나를 하는 호사를 누리며 횡령죄로 2년6월의 징역을 사는 데 그쳤다. 박 원장과 그의 가족들은 수백억원대 재산을 소유하고 형제복지원의 이름만 바꿔 사회복지법인을 최근까지 운영했다. 반면 피해 생존자들은 여전히 정신적·육체적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국가폭력의 진상은 여전히 규명되지 않았다.

독재정권에 맞서 싸운 사람들은 민주인사로 대접받았지만, 그 독재하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온 형제복지원 생존자들은 문전박대를 당했다. 독재정권은 민심을 얻기 위해 부랑인 청소나 범죄 척결을 단골로 써먹었다. 이 국가폭력의 희생자들은 세월호 유가족,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5·18민주화운동 유가족과 마찬가지로 고통과 아픔을 위로받을 권리가 있다. “가축처럼 새겨진 기억 속의 숫자를 떨쳐내고 사람답게 살고 싶다!” 이들의 외침에 언제까지 귀를 막을 것인가? 우리는 형제복지원 사건을 모르는 게 아니라, 알기를 거부하고 있는 게 아닐까? 그리하여, 독재정권이 저지른 비인간적인 인권 유린에 ‘묵시적 공범자’가 되고 있는 게 아닐까? 그래서 6월항쟁 30주년, 다시 민주정부가 들어선 지금, 구조되었으나 여전히 ‘가라앉은 자’인 형제복지원 생존자들이 그 먼 길을 걸어야 하는 게 아닐까?

국토대장정 8일차인 오늘, 이들은 성주군청에서 농소면 사무소까지 25.95㎞를 걷는다. 이들은 ‘육체적·정신적으로 괴롭고 힘들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국토대장정을 이어간다. “형제복지원 사건의 진상이 조속히 규명되도록 돕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약속을 떠올리며 환하게 서울로 걷고 또 걷는다.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 국토대장정 후원계좌> 우리은행 이은애 1002-557-424264

<강용주 | (재)진실의힘 이사·아나파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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