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끝별 | 시인·문학평론가 ▲ 싸락눈 내리어 눈썹 때리니 싸락눈 내리어 눈썹 때리니그 암무당 손때 묻은 징채 보는 것 같군.그 징과 징채 들고 가던 아홉 살 아이 -암무당의 개와 함께 누룽지에 취직했던눈썹만이 역력하던 그 하인 아이보는 것 같군. 보는 것 같군.내가 삼백 원짜리 시간강사에도 목이 쉬어인제는 작파할까 망설이고 있는 날에싸락눈 내리어 눈썹 때리니…. - 서정주(1915∼2000) △ 시간강사 시절이었다니 1960년 전후의 겨울방학 직전이나 개학 직후였나 보다. 목이 쉬도록 말품을 팔고 나오는 날 싸락눈이 내린다. 싸락싸락 숱 많은 눈썹에 싸락눈이 내려앉자, 선득하니, 암무당의 손때 묻은 징과 징채를 들고 다녔던 ‘눈썹만은 역력했’던 아홉 살 아이를 떠올린다. “암무당의 개와 함께 누룽지에 취..
박성준 | 시인·문학평론가 사과한알이떨어졌다. 지구는부서질정도로아팠다. 최후.이미여하한정신도발아하지아니한다. - 이상(1910~1937) △ 뉴턴은 사과가 떨어진 것을 보고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했다. 단순히 사과가 땅으로 떨어졌을 뿐인데, 이 사건 때문에 근대 과학이 출발했고 중세 봉건 질서와 사상이 무너졌다. 시인의 말대로 지구는 정말 부서질 정도로 아팠을 것이다. 저 사과 한 알 때문에 문명은 더욱 더 난폭하게 발전했고 서로가 서로를 침략했으며, 20세기 초 우리는 식민지였다. 어떠한 정신도 새롭게 싹 틔우지 못할 것 같은 현실. 말 그대로 당대 사람들에게는 매순간이 “최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李箱)은 억압 속을 건너며 상상해야만 했다. 미래로, 먼 미래로 자신을 견인해 나가면서 새로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