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어이 저세상으로 그이는 갔다. 뇌가 심하게 손상되어 317일이나 의식불명 상태로 누워 있다가 국가로부터 아무런 사과를 받아내지 못한 채 영영 불귀의 객이 되었다. 사과는커녕 소위 공권력은 이제 와서 부검을 하겠단다. 천하가 다 아는데도 오직 대한민국 경찰만은 그가 왜 죽었는지 모르는 모양이다. 겹겹이 차벽을 쌓아놓고 거기로 접근한다고 무지막지하게 물대포를 쏘아댄 당사자 자신이 말이다.어쩌다가 대한민국이 이렇게 형편없는 저질국가로 전락해버렸을까? 이런 나라에 정말 희망이라는 게 있을까? 문득 120년 전 나라를 구하려고 궐기했다가 반동적인 지배층과 외국군대에 의해서 무참한 학살을 당했던 동학농민군을 생각해본다. 그들이 처참하게 죽어가면서 염원했던 ‘좋은 세상’이 지금과 같은 대한민국이었을까?그리고 망국의..
언제라고 딱 점칠 수는 없지만, 이대로 가면 머잖아 이 나라가 망할 것 같다. 설령 완전히 망하지는 않더라도 지금보다 훨씬 더 절망적인 상황이 닥치는 게 아닐까, 그런 불길한 예감이 날이 갈수록 짙어진다. 지금 이 나라 지배층과 그들을 에워싼 이른바 ‘엘리트’들의 정신상태는 120년 전 조선왕조 말기의 지배층의 그것과 조금도 달라 보이지 않는다. 나라를 살리겠다고 일어선 백성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그 진정한 요구가 무엇인지 귀 기울여 들을 생각은 하지 않고, 오히려 외국 군대를 불러들여 제 나라 백성들을 무참하게 학살하는 방식을 선택했던 그 조선의 지배층 말이다. 지금은 120년 전과는 다른 세상이라고 말할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든든한 ‘동맹국’ 미국이 있으니까 괜찮다고, 그리하여 그저 미국에 순..
절집에서는 밥을 공양이라고 말한다. 오래전 일이지만, 왜 그렇게 부르는지 꽤 궁금했다. 어떤 사람은 “자연과 뭇 중생들의 노고를 생각하며 보살로서 살겠다는 의지와 깨달음을 얻겠다는 의식”이 공양이라는 말 속에 들어 있는 게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즉 ‘발우공양’을 줄인 말이 공양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밥을 공양이라고 부르는 이유를 내가 확실히 납득한 것은 그게 공희(供犧)와 같은 말이라는 것, 그리고 공희란 산스크리트어 야즈나(yajna)의 번역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였다. ‘야즈나’는 힌두교 경전 전체를 통해서 가장 핵심적인 개념이다. 고대 이래 인도의 성자들은 생명·삶의 원리는 무엇인가의 끊임없는 희생으로 구성돼 있다는 사실을 명확히 알고 있었고, 그것을 ‘야즈나’라는 말로 설명해왔다. 잘 생각해보면,..
6월24일, 영국의 국민투표 결과가 유럽연합 탈퇴(브렉시트) 쪽으로 결론이 나자 온 세계가 화들짝 놀라고, 온갖 미디어가 폭포처럼 분석·논평 기사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흥분상태가 가라앉는 듯하지만, 여전히 세계의 언론들은 ‘브렉시트’ 사태의 추이와 전망에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문제의 중요성을 생각하면 극히 당연하다. 브렉시트란 유럽의 중핵 국가가 현대사의 가장 중요한 성과물이라고 할 수 있는 ‘국제주의적’ 연대체로부터의 이탈을 결정한 엄청난 사건이니 말이다. 실제로 브렉시트는 다양한 각도에서 해석이 가능한, 복합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가령 세계 현실을 ‘아래에서 위로’ 보는 데 익숙한 사람의 눈으로 볼 때, 그것은 무엇보다 ‘세계화’라는 이름으로 지난 수십년간 세계 전역..
“국회의원이 안되면 보좌관이라도 만나기 위해 의원실을 누볐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환대받지 못했습니다. ‘정치의 부재’로 고통받고 있는 주권자들이 주권을 위임받은 자들에게 아주 작은 책임이라도 질 것을 부탁하는 자리에서 보험외판원처럼, 옹송그리며, 고개를 조아리며, 굽신거려야 했습니다. 어르신들과 일정을 마치고 국회를 떠나올 때마다 저는 진한 비애를, 외로움을 느껴야 했습니다. 수십 번 국회를 다녔지만, 단 한번도 이런 감정 속에 빠지지 않은 적이 없었습니다.” 이것은 밀양 초고압송전탑 반대 대책위 사무국장 이계삼씨가 최근에 녹색당의 비례대표 후보로 나서며 쓴 ‘출마의 변’ 가운데 한 대목이다. 이계삼은 몇 해 전까지는 고등학교 교사였으나 뜻한 바 있어서 학교를 그만두고 새 삶을 준비하던 중, 송전탑 건설..
부음을 들었을 때 아, 아까운 사람을 또 잃었구나 하는 몹시 허전한 느낌이었다. 특별히 내가 그의 죽음을 애도할 만한 개인적 인연이나 기억은 없다. 오래전 돌아가신 정치학자 (잠깐 국회의원으로 활동도 했던) 이수인 교수댁에서 딱 한 번 우연히 마주친 적이 있지만, 그와 우정을 나눈 적이 없다. 게다가 그가 심혈을 기울여 완역한 이나 그의 저서를 꼼꼼히 읽어본 적도 없다. 단지 그때그때의 필요 때문에 그 저술의 일부를 뒤적이거나 그가 쓴 신문의 칼럼을 흥미롭게 읽어봤을 뿐이다. 우리 세대는 을 통독하거나 충실히 읽은 경험자가 별로 없을 것이다. 우리보다 10년 정도 위 세대는 예전 일본 학자들이 번역한 을 읽는 게 가능했겠지만, 해방 후 오로지 한글로 글을 읽기 시작한 세대들에게는 (예외는 있겠지만) 일본..
세상을 뒤덮고 있는 먹구름이 걷힐 것인가? 국가 파산 위기에 빠진 그리스의 민중이 국민투표를 통해 그동안 세계를 지옥으로 만들어온 핵심적 요인, 즉 글로벌 자본주의의 약탈적 금융시스템에 대해 명확한 거부의사를 밝혔다. 반년 전, 그리스에 ‘시리자’라는 좌파연합 정부가 들어설 때만 하더라도, 이들이 어떻게 막대한 국가부채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지 앞이 보이지 않았다. 필시 모처럼 들어선 민주정부이지만 결국은 사태 수습에 실패하고, 붕괴할 가능성이 높다고 예견한 사람도 많았다. 새로운 금융지원을 받아봤자 그것이 도로 채권자들의 주머니로 들어가는 악순환의 구조 속에서 독자적인 통화 발행권도, 통화 관리수단도 없는 국가가 어떻게 국민들의 생존·생활을 보장하고, 나아가 경제를 다시 일으켜 빚을 갚을 수 있을지 막..
늘 붐비던 시내가 한산하다. 좀 과장하면 유령도시 같다. 하기는 도시의 이 조용한 풍경은 그 자체로 나쁘지는 않다. 그렇지만 지금은 이런 속 편한 소리를 할 상황이 아니라는 게 문제이다. 거리 풍경이 이렇게 된 것은, 감염력이 강하고, 치료약이 없고, 치사율이 높다는 메르스라는 유행병의 갑작스러운 확산과 더불어 시민들이 공포에 사로잡혔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많은 사람들은 타인들과의 교류·접촉을 극도로 꺼리며, 스스로 ‘자가격리’의 생활로 들어가고 말았다. 소문에 의하면, 어떤 사람들은 출입을 일절 그만두고, 필요한 생활물자도 배달에 의존해서 지낸다고 한다. 혹시 타인의 손이 닿았을지도 모르는 현관문 손잡이는 하루에도 몇 번씩 알코올로 닦으면서. 인간인 이상 우리는 타인과 더불어 살지 않으면 생존·생활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