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욱 | 한림국제대학원대 교수 며칠 전 결선투표제 도입을 제안하는 공동성명서에 지지 서명을 했다. 그랬더니 내 지론이 비례대표제의 획기적 강화를 통해 다당제와 연립정부가 정상상태인 합의제 민주주의로 가자는 것임을 잘 알고 있는 학생들이 대체 내 입장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많이 해왔다. 말하자면 이제 비례대표제보다 결선투표제에 희망을 거느냐는 질문이었다. 이 지면을 빌려 간략하게나마 그들의 질문에 답하고자 한다. 어쩌면 그들과 비슷한 의문을 가진 분들이 많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중심제이든 분권형 대통령제이든 대통령을 직접선출하는 제도를 가진 나라들은 거의 모두 결선투표제를 택하고 있다. 정통성의 확보 때문에 그렇다. 한국과 같이 1등이면 무조건 당선되는 ‘단순일위제’에서는 대개 과반에 미달하는 ..
문광훈 | 충북대 교수·독문학 울릉도 나리분지에 다녀왔다. 오래전부터 가보고 싶었던 곳이었는데, 이번에 맘먹고 간 것이다. 그곳으로 정한 것은 험한 산들로 둘러싸인 오목한 평지여서 뭔가 자족적인 별세계(別世界)가 아닐까 여겨졌기 때문이다. 또 영육의 배터리를 재충전할 필요도 절실했다. 하지만 울릉도 가는 길은 간단치 않았다. 대부분 ‘패키지여행’을 선호했고, 그 때문에 숙소나 구경할 곳을 확정치 않은 채 혼자 가는 경우는 거의 없어 보였다. 비바람으로 출발을 한 차례 미룬 다음 나는 결국 묵호에서 하루 묵고 다음날 배를 타기로 했다. 터미널에서 표를 예매하고 삼척 방향으로 내려가다가 하평해안가라는, 길이 200m 정도 되는 모래사장에 들어섰다. 심상대의 소설 가 생각나서였다. 날씨는 후텁지근했지만 불어오..
박구용 | 전남대 교수·철학 착잡한 심정으로 20여년 만에 다시 (최인훈)을 잡았다. 처음 과 만났을 때 난 소설의 주인공 명준처럼 보람을 위함도 아니었는데 철학에 몰두했다. 그때도 지금처럼 푸른 하늘을 떠도는 솜구름은 예뻤으나 독재자에게 자유를 빼앗긴 치욕 때문에 예쁜 것을 보고도 분하고 서러웠다. 그러니 헛바람과 헛믿음의 끝없는 오뚝이 놀음일망정 철학은 추접한 현실에서 돋아나는 아름다움을 체험할 수 있는 유일한 출구인 광장이었다. 1960년 4월혁명의 장소였고 사건이었던 광장은 1980년 5월 이후 명박산성을 에워싼 촛불에까지 끝없이 회귀했다. 광장 밖에는 언제나 풍문들로 넘쳐났다. 폭도가 국가를 전복한다는 풍문도 있었지만 군인이 시민을 죽이고 나라를 강탈한다는 풍문도 있었다. 미국의 힘으로만 나라를..
윤지관 | 덕성여대 교수·영문학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이런 제목을 내세우는 것은 필자가 유난히 ‘용감’해서가 아니다. 민심이 곧 천심이라는 말은 덕치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동양의 정치철학부터 현대의 민주주의까지 관통하는 동서고금의 진리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민심의 척도라고 할 선거가 오히려 현실을 왜곡하는 결과를 빚는 것을 목도하게 된 난처함이 이런 의문을 던지게 한다. 가까이는 정권 심판의 국민적 바람을 뒤엎어버린 지난 총선이 어느 정도 그런 예라면, 시대흐름에 역행해온 현 정권의 기반이 다름 아닌 국민의 압도적 지지라는 그 민심이었다는 점이 새삼 환기되는 것이다. 대선출마를 공식화하는 후보들의 선언이 잇따르는 요즘 과연 민심을 얻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묻게 되는 까닭이다. 지난 대선에서 국민들의 마음은 ..
문광훈 | 충북대 교수·독문학 지난 주말에는 월악산에 있는 학술림에 다녀왔고, 이번 주초에는 통영으로 인문대 연수를 갔다 왔다. 월악산의 울창한 계곡은 서늘했고, 통영 앞바다의 한려수도는 장대하고도 평화로웠다. 말로만 듣다가 처음 가 보았는데, 오래 추억할 정도로 그 풍경은 인상적이었다. 내가 태어나고 살아가는 이 땅을 제대로 아는 곳이 별로 없다는 자괴감이 일었다. 월악산 숙소에서는 작은 세미나가 열렸다. 독문학 은사님과 선후배 20여명이 모인 자리였다. 발표주제는 ‘촉각의 미디어’에 관한 것이었다. 인간의 오감 가운데 촉각은 시각중심주의적 관점을 극복하고, 무엇보다 공학과 인문학의 교차점을 마련해준다는 점에서 문화융합의 모범적 예로 제시됐다. 요즘 많은 이들이 사용하는 스마트폰에서 촉각의 기능은, 센..
박구용 | 전남대 교수·철학 시간에는 본래 시작과 끝이 없다. 다른 사람이나 사물에 관한 대상의식만이 아니라 스스로에 대한 반성적 자기의식을 가진 인간이 임의적으로 시간을 쪼개 처음과 끝을 만들었다. 물론 인간에게 시간의 분할은 임의적인 만큼 필연적이다. 생사 구별이 있는 한 모든 형태의 관계와 역할, 기획과 임무, 욕구와 대결에 시작과 끝이 없을 수 없다. 만남의 기쁨이 있으면 이별의 고통을 감수해야 하듯 주어진 역할도 적당한 때에 내려놓아야 한다. 천직(天職)도 필요할 때 그만두지 않으면 구직(求職) 능력이 떨어진다. 더 나은 세상을 향한 기획도 시간이 지나면 더 나쁜 세상을 조장할 수 있듯 큰 뜻을 이루기 위해 맡았던 임무도 후배에게 물려주지 않으면 처음의 뜻을 망친다. 아직 후배가 미덥지 않을 때..
윤지관 | 덕성여대 교수·영문학 한 평범한 직장인이 어느날 아침 문득 징그러운 갑충으로 변해버렸다는 카프카의 악몽 같은 이야기가 있다. 그렇다면 가령 이런 광경은 어떨까? 한 대학의 아침, 학교에 나온 학생과 교수들은 교실마다 책걸상이 굵직한 쇠사슬로 서로 단단히 묶여 있는 것을 보고 눈을 의심하게 된다. 자유와 지성의 공간이어야 할 대학 교실에 쇠사슬이라니, 기괴하고 생소한 풍경이어서 현실이라고 믿기 힘들 법하다. 그러나 불과 10여년 전 필자가 재직하는 대학에서 실제로 발생한 일이다. 당시 교정에는 구(舊)재단의 횡포에 맞선 교수들이 농성 중이었고 학생들은 총투표로 전면 수업거부를 결정한 터였다. 결의의 표시로 학생들이 그 전날 책걸상을 복도로 들어낸 것인데, 놀랍게도 그것들은 밤새 쇠사슬을 휘감은 ..
최태욱|한림국제대학원대 교수 대선을 앞두고 개헌론이 다시 부상하고 있다. 새누리당에선 이재오·정몽준 의원, 선진통일당에선 이인제 대표, 그리고 민주당에선 김두관 경남도지사가 개헌론을 주도하고 있다. 구체적인 내용과 방안은 물론 서로 다르지만, 이들은 모두 권력분산을 핵심으로 하는 개헌론을 제기하고 있고, 개헌공약이 이번 대선의 주요 이슈로 떠오르길 기대하고 있다. 혹자는 이 같은 개헌론을 정략적 발상에 불과하다고 폄하하지만, 나는 이제 우리 시민들이 이 개헌론에 귀 기울일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참에 진지하게 고민해보자. ‘승자독식-패자전몰’을 특징으로 하는 한국의 현행 민주주의 제도의 부작용과 폐해, 그리고 그 고비용과 저효율성에 대해서는 보수-진보 구분 없이 누구나 인정하는 바가 아니던가. 언제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