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귀향이 시작되었다. 필자도 토요일에는 경부고속도로 하행선 위에서 가다서다를 반복하며 내려가고 있을 것이다. 지칠 만하면 요즘 세계적 선풍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흥얼거리면서. 명절이면 되풀이되는 귀성전쟁을 겪다보면 이 난리법석이 언제 끝나나 하다가도 여기저기 흩어진 혈육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이 회동이 명절이라는 동원력이 없으면 언제 가능할까 싶기도 하다. 가족친지가 만난다는 의미도 있지만, 서울과 지방, 도시와 농촌사람들이 섞이고, 세대 사이의 만남이 대규모로 일어나는 사건이기 때문에, 추석은 정치적으로도 큰 의미를 띠게 되었다. 특히 대선을 앞둔 올해 ‘추석민심’이 정치권의 주된 관심사로 떠올랐다. 그런데 추석명절의 사회학이든 정치학이든 이 회동의 의미를 말할 때 빼놓기 쉬운 것..
최태욱 | 한림국제대학원대 교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10년 통계를 보면 한국은 단연 ‘사장님들의 나라’다. 전체 경제활동 인구 중 자영업자의 비중이 OECD 회원국들의 평균은 17%이나 한국은 무려 29%나 된다. 우리에게 친근한 나라인 미국, 독일, 일본, 영국은 각각 7%, 12%, 12%, 14%에 불과하다. 자영업자가 많다는 게 문제될 건 없다. 남 일이 아닌 자기 일을 하며 살 수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건 오히려 축복일 수도 있다. 문제는 그들 대다수의 생활이 점점 더 궁핍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하루 평균 1600여명의 자영업자들이 시장에서 퇴출당하고 또 그만큼의 사람들이 새로 들어온다고 한다. 남아있는 사람들의 상당수도 비정규직 임금 정도의 월수입으로 버티고 있을 뿐이다. 자영업..
문광훈 | 충북대 교수·독문학 나는 가끔 우리 사회가 지나치게 집단주의적이지 않은가, 이 땅에 참된 개인주의의 역사는 있는가라고 묻곤 한다. 주기적으로 불어대는 사회적 열풍이나 유행을 보면 특히 그렇다. 조기유학과 성형 바람이 한창 불더니 요즘에는 ‘힐링’으로 곳곳이 들썩인다. 루소 탄생 300주년과 관련한 외신의 이런저런 논평을 읽으면서, 또 그의 책을 다시 뒤적거리면서 갖게 되는 생각도 그렇다. 루소는 흔히 이나 같은 문학적인 작품의 저자로 알려져 있지만, 프랑스에서는 이나 같은 사회정치적 저술로 더 유명하다. 그는 당대의 편견과 불합리한 정치현실에 맞서 싸운 부르주아 사회의 투사였다. 편지소설인 가 1761년에 출간되었을 때 유럽 전역이 들끓었다. 여기에는 농촌공동체와 수공업적 덕성 그리고 계몽의 ..
박구용 | 전남대 교수·철학 과거의 예술은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기술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름다운 예술작품을 찾아보기 어렵다. 아름다운 예술과 만나기 위해 공연이나 전시 혹은 관람에 나선 사람은 크게 실망하거나 좌절하기 십상이다. 새로운 예술은 대부분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충격을 주기 때문이다. 예술은 이제 기괴하고 기형적이며 더럽고 험한 세계를 적나라하게 들추고 고발하면서 스스로 추해지고 있다. 예전엔 참하고 착한 사람을 예쁘다고 했다. 진·선·미가 하나였던 것이다. 그러나 철학자 니체의 말처럼 현대는 어떤 이가 참하고 착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예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가 참하거나 착하지 않기 때문에 예쁘다고 말하는 사회다. 그만큼 진·선·미를 함께 갖추기가 힘들어진 것이다. 그..
윤지관 | 덕성여대 교수·영문학 잇단 태풍이 지나가는 사이 폭염에 시달리던 날들을 기억의 저편으로 몰아내고 문득 계절이 바뀌었다. 서쪽바다에 휘몰아친 대자연의 위용도 위용이지만, 대통령의 느닷없는 독도 방문으로 촉발된 한·일갈등으로 동해의 파고 또한 높아졌다. 한반도 양안의 이 강풍 탓인지 한창 진행 중인 야당후보 경선은 묻힐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제1야당 후보가 어떻게 결정되느냐는 대선의 풍향을 가름할 변수다. 민주당의 경선과정이 흥미로운 것은 권력과 인간의 문제를 되짚어보는 일종의 인문적 성찰이 발견된다는 점이다. 문재인 후보에 대한 비판으로 본격 제기된 권력의지의 유무 논쟁이 바로 그 계기다. 권력의지를 공적인 ‘소명의식’과 연관시킨 문 후보의 주장과 이에 맞서 민중에 대한 연민과 강한 실천정신이..
최태욱 | 한림국제대학원대 교수 진보와 중도 성향 시민들의 안철수 교수에 대한 선호는 압도적이다. 현 추세대로라면 새누리당 후보에 대적할 만한 야권 후보는 오직 그뿐이다. 안 교수가 자신의 책에 쓴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그러나 ‘안철수의 생각’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해서 그를 대통령 후보로서 마음 놓고 지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생각의 옳음과 그것을 실천할 수 있는 능력은 별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안 교수는 적어도 다음 세 가지는 분명히 해주어야 한다. 그래야 시민들의 안정적 지지를 확보할 수 있다. 첫째, 이젠 분명히 출마를 선언하고 대통령감으로서의 능력을 검증 받아야 한다. 무릇 대통령 개인이 갖고 있는 (추상도 높은) 생각을 구체적 정책으로 작성하고 그것을 현실에서..
문광훈 | 충북대 교수·독문학 내가 하는 일에서 그나마 위로 삼는 게 하나 있다면, 그건 글로 나를 표현하고 내 생각을 말하면서 사람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어디 글뿐이겠는가? 사무적인 일이나 이런저런 인연을 통해 만남이 이뤄지기도 한다. 하지만 일거리를 만들기보다는 가능한 한 만들지 않는 쪽에 선 내게는 글이 사회적 소통의 가장 큰 통로임엔 틀림없어 보인다. 강연도 글이 계기가 되어 일어나는 만남의 형식이다. 요즘에는 한 학기에 서너 차례씩 하게 되는데, 대부분 시민강좌나 문화단체 혹은 미술관에서다. 이런 모임에서 만나는 청중은 다양하다. 문학이 무엇인지 알려는 고교생이나 인문학에 관심을 갖는 대학생·대학원생들도 있고, 예술과 미학을 알고 싶어 하는 30~40대 여성들과 직장인도 있다. 또..
윤지관 | 덕성여대 교수·영문학 누구에게나 젊은 시절이 기쁘고 아름답지만은 않을 것이다. 오히려 현대사회의 메커니즘 속에 던져져 방황이나 좌절, 고통을 겪는 것이 청춘의 운명인지도 모른다. 이문열의 연작소설 에서 대학시절의 고뇌와 사랑을 그린 에도 이 같은 청춘의 아이러니가 담겨 있을 법하다.1980년대 초에 출간된 이 오래된 소설을 새삼 떠올리게 된 것은 최근에 열린 새누리당 대선후보 경선 TV토론을 보면서다. 5·16과 유신체제에 대한 여권 유력후보의 해괴한 발언을 듣다보니 불현듯 유신시대 대학시절의 기억들이 되살아난 것이다. 자유의 이념과 극도의 억압이라는 현실 사이의 간극이 작품의 주인공이 느낀 것처럼 환멸과 절망을 불러일으키던 시기였다. 군대나 감옥으로 끌려가는 친구들이 속출하던 그 시절 필자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