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구용|전남대 교수·철학 민주화 이후 정치인들이 대통령 선거 때마다 홀대받고 있다. 정치(인)에 대한 불신이 끝없이 비정치인을 현혹한다. 정주영, 조순, 이회창, 정몽준, 문국현, 고건 등은 비정치인의 이미지로 대통령에 도전했지만 실패했다. 오직 이명박만 ‘반정치, 친경제’ 구호로 성공했다. 하지만 시장논리로 무장한 그의 실용정치는 소수 강자에겐 성장의 결실을, 다수 약자에겐 고통과 절망을 안겨주는 부패 정치로 끝났다. 그래선지 시장에서 성공하고도 깨끗한 경제인 안철수가 정치개혁의 적임자로 호명된다. 국민의 부름에 응답하며 희망의 상징적 기호로 급부상한 안철수가 맥없이 주저앉다 다시 일어서고 있다. 사퇴 후 자신이 내세운 새 정치를 포기한 듯했지만 단일화 마무리로 새 길을 찾은 것이다. 안철수가 생각하는..
윤지관 | 덕성여대 교수·영문학 대선이 한달도 채 남지 않은 중요한 시기인지라 공약이 쏟아지고 최근에는 두 야권후보의 단일화 협의가 진행되면서 세간의 이목이 거기에 쏠려 있었다. 필자도 교육공약평가 토론회에 참석하는 등 약간은 이 대사(大事)에 끼기도 한 셈이지만, 그동안에 개인적으로는 더 중요할 수도 있는 일이 일어났다. 결혼 이후 늘 끼고 있던 반지를 잃어버린 것이다. 아니 더 정확하게는 잃어버린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반지를 잃어버린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처음 분실했을 때는 반지가 떨어진 곳으로 추정되는 홍천강 모래사장을 무작정 파보기도 했지만, 이번에는 언제 어디서인지부터가 알 수 없는 터라 막막했다. 얼마동안 요즘의 최대 관심사인 단일화 협상을 전하는 뉴스를 들으면서도 생각은 잃어버린 반지에..
김찬호 | 성공회대 초빙교수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에이즈와 오랫동안 씨름해 왔다. 그 가운데 10대들의 에이즈 예방 프로그램인 ‘러브라이프’가 주목을 받고 있다. 이 프로그램의 특징은 질병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대신, 젊은이들이 멋있다고 여기는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를 창출하는 데 있다. 예를 들어 소녀들은 무절제한 성관계에 대해 도덕적으로 나쁘다기보다는, 뭔가 덜떨어지고 후진 행동이라는 느낌을 갖도록 만드는 것이다. 무엇이 자신을 변화시켰느냐는 질문에 그들은 이렇게 대답한다. “삶을 살아가는 새로운 방법에 동질감을 느꼈어요. 나도 삶을 바꾼 내 친구처럼 될 수 있어요.” 티나 로젠버그의 라는 책에서는 이러한 접근을 가리켜 ‘사회적 치유(social care)’라고 부른다. 1970년에 인도에서 시작된 ‘포괄..
문광훈 | 충북대 교수·독문학 mulmuni@chungbuk.ac.kr 이 칼럼을 학교 연구실에서 쓰고 있다. 지금은 화요일 오후 2시. 아직 비가 내리고 있고, 이 비에 은행잎은 더욱 노랗고 소나무는 더 푸른 듯하다. 하지만 곳곳은 지고 있거나 이미 떨어진 잎으로 가득하다. 가을이 절정에 이른 듯 어디서나 잎이 떨어지고 날리고 굴러다닌다. 하나의 나뭇잎도 이 세상의 사물이라면 -틀림없는 사실이다- 우리는 이 가을에 수천 수만의 세계와 작별하고 있는 것이다. 시들어가는 이 땅과 하늘 사이에서 나는 계절의 가을처럼 생애의 가을을 떠올린다. 내 삶의 가을은 어떠한가? 나이 쉰이면 지천명(知天命)이라는데, 하늘의 운명을 알기는커녕 자괴감만 점점 더 커져간다. 잠시 돌아보는 시간. 이때 잘 어울리는 것의 하나는..
박구용 | 전남대 교수·철학 신분이나 계급을 분리하는 기준은 명확하지만 계층을 구별하는 틀과 방법은 애매하고 모호하다. 그 이름도 가지각색인데 그중에서 특히 계층을 탈정치화하는 데 가장 애용되는 말이 서민과 중산층이다. 한국인은 대부분 자신이 여기에 속한다고 여긴다. 더구나 자산이 0에 가까운 학생들조차 스스로가 중산층이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하지만 부채 없이 최소 30평 아파트, 2000㏄ 자동차, 연봉 5000만원이 넘으면서 상류층에 대한 동경을 가져야 중산층으로 불린다. 물론 이 기준은 부유층과 그에 부역하는 이들이 만든 것이다. 그러니 중산층도 아니면서 중산층 의식을 갖는 것보다 중산층의 기준을 바꾸어야 정치판을 새로 짤 수 있다. 내가 생각하는 중산층은 크고 작은 뜻을 가지고 정치적 담..
윤지관 | 덕성여대 교수·영문학 이 칼럼 제목은 과거 미국 대선에서 민주당 클린턴 후보 진영의 선거 구호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를 살짝 바꾼 것이다. 이미 수많은 변형들이 나온 터라 식상할 위험이 있음에도 이 문구를 다시 사용한 것은 근래 상식이 무너지고 정쟁이 부각되는 현상이 심하기 때문이다. 가령 안보문제를 정치쟁점으로 부각시키는 새누리당의 행태가 그렇다. 현 정권이 국가안보에 얼마나 소홀했나는 조금만 살펴보면 훤히 드러날 텐데 말이다. 남북 긴장국면을 초래한 대북정책의 실패는 제쳐두더라도, 이 정권이 집권하자마자 추진한 것은 그간 지리적으로 국방상의 우려 때문에 보류되어 오던 대기업의 초고층 건물 신축 허가였다. 또 북한의 소행이라는 정부 발표대로라면 대참패라고 할 천안함 침몰로 수십명의 장병이..
문광훈 | 충북대 교수·독문학 프란츠 카프카의 단편 중에 이란 글이 있다. 내용은 좀 다르지만 이 제목을 볼 때마다 나는 자식 키우는 부모의 심정이나 가장으로서의 아버지의 근심을 떠올리곤 한다. 나 역시 두 아이를 키우면서 갖는 변함없는 감정이 근심과 두려움인 까닭이다.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이나 행동을 보면 근심과 두려움이 먼저 솟구친다. 흐뭇하거나 대견할 때도 없지 않지만 그것은 드물고, 대개는 애들이 일을 그르치지 않을까, 친구들한테 거짓말을 하거나 믿음을 못 주게 되지 않을까 걱정되는 것이다. 아이는 다름 아닌 부모 하는 대로 행하고 말하고 생각하지 않는가. 아이의 모습에는 부모의 얼굴뿐만 아니라 성격과 언행, 심지어 분위기도 배어 있다. ‘공부하라’는 말을 하지 않았더니 내 집 큰아이는 정말 공부..
박구용 | 전남대 교수·철학 머리나 가슴만이 아니라 배와 손발까지 중력의 힘을 견디지 못하고 지표면을 향해 끝없이 내려앉는 기분, 슬픔과 고통이 조화와 균형을 깨뜨리며 극단을 향해 달려가고 있음을 느끼고 있는 사람은 자신의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말을 찾을 수 없다는 무기력 때문에 더 깊은 심연으로 떨어진다. 이들에게 절망은 슬픔과 고통 때문이 아니라 그것을 증언할 말이 없는 데서 찾아온다. 말할 수 있고 증언할 수 있는 고통은 나눌 수 있고 소통할 수 있다. 상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고통 앞에서 말은 한없이 미끄러진다. 네가 나와 다른 언어체계를 가지고 있어서가 아니다. 너와 내가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우리’라고 해서 풍경은 바뀌지 않는다. 고통의 증언 불가능성, 소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