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광훈 | 충북대 교수·독문학 귀가 멍하여 지난 주말에는 멍하니 보냈다. 병원에 갔더니 ‘중이염 초기’라고 했다. 흔히 ‘감각의 기만’을 얘기하지만, 오감(五感)은 피상적인 채로 가장 직접적이고 확실한 경험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귀가 안 좋으니 많은 게 실감나지 않았다. 들을 수 있다는 게 새삼 고마웠다. 사실 지난 10여년간 음악이 없었더라면, 내 삶을 견뎌내지 못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가끔 든다. 특히 고전음악은 가장 평화롭고 깊이 있는 위로를 준 듯하다. 그 가운데 지난 2~3년 즐겨 들었던 것은 피아노곡이었던 것 같다. 여러 작곡가와 장르가 있지만, 거듭 들은 것에는 베토벤의 ‘후기 피아노 소나타’, 슈베르트의 ‘즉흥곡’ 그리고 슈만의 피아노곡들이 있다. 니콜라예바가 연주하는 이들 곡은 어느 것이나..
박구용 | 전남대 교수·철학 보수의 반대편에서 통진당의 비극을 즐기는 무리도 있다. 통진당과 선명성 경쟁을 벌이며 나 혹은 우리만이 진보라고 말해온 사람들이다. 이들은 다른 진보의 파멸을 보며 자신들의 진품성과 유일무이성이 입증된 양 희열을 느끼는 새디스트적 증상을 보인다. 그들만의 진보는 언제나 근본, 혹은 원본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들은 순수성과 선명성이 주는 아우라를 붙잡으려다 결국 파괴적 근본주의자들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진보는 처음부터 근본과 원본을 부정하는 과정이다. 남의 비극에서 파멸의 향연에 도취한 두 부류의 구경꾼과 달리 이해 불가능한 당권파의 파괴적 폭력을 이해해 보려고 시도하는 사람들이 제시하는 해석은 크게 세 가지, ① 생계형 진보의 패권적 정파 갈등 ② 대항 전체주의 ..
윤지관 | 덕성여대 교수·영문학 우선 이 제목을 차용한 데 대한 양해부터 구해야겠다. 80년대 말 주목받았던 한 소설가의 데뷔작 제목인 까닭이다. 이즈음의 정치현실을 짚어보고자 하는 글로서는 느닷없어 보이지만, 복잡하게 얽힌 정치판을 보노라면 마치 주문(呪文)처럼 이 문구가 떠오른다. 오랫동안 쌓아오고 어렵게 다져왔던 시민사회의 터전이 마치 세찬 역류를 맞은 것처럼 흔들리는 것을 보면서 정치권력보다 더 깊은 곳에서 작용하는 사회변화의 힘을 되새기고 싶었을까? 이 역류를 멈추게 하고 변화의 열망을 실현할 계기로 기대했던 총선이 뜻밖의 결과를 빚은 후 대다수 국민은 국민대로 정치권은 정치권대로 충격에 가까운 혼란을 겪고 있는 듯보인다. 마땅히 심판받아야 할 쪽이 오히려 선거에서 승리하는 현실이 시민들의 감정..
최태욱 한림국제대학원대 교수 총선 패배 후의 민주당 태도가 한심하다. 진 게 아니라고 외치는 목소리는 그나마 애처롭다는 느낌으로 들어줄 수 있지만, 좌경화로 인해 패했으니 중도로 돌아가야 한다는 주장에 이르러서는 분노까지 치민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 건설이 시대정신이라더니 이젠 그게 아니라는 건가? 소위 ‘좌클릭 실패론’이 논리상이나마 타당하기 위해선 민주당이 선거 과정에서 제대로 진보화된 모습을 보였어야 한다. 3월10일 진보당과 야권연대 공약을 합의할 때만 해도 민주당은 그리 보였다. 그러나 그 후 민주당이 보인 것은 오만과 탐욕이었다.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를 추진해갈 최적의 인물들을 계파 이익에 맞지 않는다고 공천과정에서 거의 다 무시하거나 곤경에 빠트린 것이 대표적 예였..
최태욱 | 한림국제대학원대 교수 eacommunity@hallym.ac.kr 서울의 강남, 서초, 송파구를 통칭하는 소위 ‘강남’이 민주화 이후 처음으로 총선의 격전지로 떠올랐다. 지난 25년간의 선거정치에서 강남은 (송파병을 제외하곤) 보수의 철옹성이었고, 따라서 진보개혁파에 속하는 정당들은 이 지역의 선거엔 아예 무관심하거나 형식적으로만 대해 왔다. 그러나 이번엔 달라 보인다. 예컨대, 민주통합당은 정동영과 천정배 같은 대권주자급의 거물 정치인들을 강남을과 송파을에 전략 공천했다. 그리고 온 힘을 다해 싸우고 있다. 승리의 가능성을 보고 있다는 의미다. 과연 강남 시민들이 진보개혁파 정치인들을 자신들의 대표로 뽑아줄까? 알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기대하고 싶고, 기대해볼 만한 일이다. 기대하고 싶은..
최근 사회적으로 의미있는 일을 해보자는 취지를 내건 한 모임에서 변호사 한 분을 만난 적이 있다. 젊지만 이미 사회적으로도 잘 알려져 있는, 법조계의 대표적인 정의파이자 진보파였다. 시원시원한 성격인지라 첫 대면에서 으레 갖게 되는 어색함을 금방 벗어날 수 있어서 좋았다. 그런데 한참 거듭된 그의 말과 행태를 듣고 보면서, 좀 지나치다고 느껴지는 면이 있었다. 자기주장이 너무 강하다고 할까? 뭔가 주장은 주장인데 세상의 못마땅하게 여기는 것들에 관해 거침없이 표현한다고 할까? 정부의 잘못된 정책이나 행태에 대한 비난이야 이미 이 동네에서는 자연스러운 일이니 그렇다 쳐도,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과 여러 사회운동단체 나아가 그곳에서 활동하는 여러 사람들에 대해서도 그의 비판은 강하고 격렬했다. 말의 내용이나 ..
여건종 | 숙명여대 교수·영문학 민주당의 무상복지 시리즈는 중도 진보를 표방하는 정당으로서 상당히 전격적인 것이었다. 복지를 수식하는 ‘무상’이라는 말은 자극적이었고, 무모해 보이기도 했다. 같은 당의 일부 의원들은 당혹스러워하는 것 같다. 어쨌든 이 무모함이 보수 여당이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이 논쟁에 개입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복지가 우리 사회 담론의 중심으로 부상하게 된 것이다. 집권 여당과 보수세력은 ‘친서민’이나 ‘중도실용론’을 내세울 때와는 완전히 달라져 활기를 띠고 있다. 무상복지가 얼마나 허황되고 비현실적이며, 비효율적인 정치공학적 발상인가를 부각시키는 데 주력하고 있다. 이것이 이들의 정체성에 훨씬 잘 어울리고 자연스러워 보인다. 민주당은 ‘무상’이라는 명칭의 적절성에서부터 시작해 당의 ..
형제 관계가 어떻게 되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5형제의 막내”라는 대답을 자연스럽게 해왔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래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는 6형제였다. 맨 위 큰형은 필자가 어렸을 때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지금으로부터 40년 전의 일이니까 필자 나이 일곱 살쯤 되었을까. 마당에서 혼자 놀고 있던 어느 날 큰형은 대문을 박차고 뛰어 들어왔고 곧바로 수돗가 앞에 쓰러졌다. 입가에서는 거품이 끊이지 않고 흘러 나왔는데, 그렇게 농약 마시고 죽는 것으로 뭔가에 항의하고 싶었겠지만, 어린 나이 때문이었는지 필자는 눈앞에서 목격한 큰형의 죽음에 대해 그 어떤 비극성이나 두려움을 느꼈던 기억이 없다. 오래도록 나를 슬프게 한 기억이 있다면, 관을 묻는 것을 함께 지켜보던 셋째형의 긴 울먹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