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최고의 무장을 뽑으라면 십중팔구 이순신 장군을 선택할 것이다. 하지만 그의 업적이 가장 큰지 묻는다면 고개를 갸우뚱할 사람도 있으리라. 이순신이 임진왜란 때 일본을 물리치는 데 큰 공을 세우긴 했지만, 아무리 봐도 3국을 통일한 김유신의 업적이 더 커 보인다. 우리에게 대국이었던 수나라 군사를 수장시킨 살수대첩의 명장 을지문덕도 업적 면에선 이순신에 뒤지지 않는다. 그런데도 이순신이 최고의 무장이 된 이유는 뭘까? 모함으로 인한 투옥과 백의종군, 12척으로 133척에 달하는 적을 물리친 명량해전, 자기 죽음을 부하에게 알리지 말라 한 마지막 순간까지, 이순신에게는 다른 이들이 갖지 못한 드라마가 있었다. 김유신에 대해 우리가 아는 거라곤 자기 잘못을 말한테 뒤집어씌워 목을 벤 게 다이지 않은가?..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사 중 한 구절이다. 사람들은 이를 향후 대통령의 국정 운영 원칙으로 받아들였다. 조국 법무장관 임명 당시 이 말이 유독 사람들 입에 오르내린 건, 그 믿음이 배신당했다고 여겨서였다. 불과 2년여 만에 대통령이 확 달라지기라도 한 것일까? 그럴 수도 있지만, 다음과 같은 가능성도 있다. 자녀교육, 재산증식, 가족관계는 물론 민정수석 업무에서마저 무능하기 짝이 없는 조국이 사법개혁 면에서는 이 나라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능력자일 가능성 말이다. 그게 아니라면 지지율에 신경을 쓰는 대통령께서 인기 하락을 감수하면서까지 조국을 임명했을 리가 없지 않겠는가? 그래서 난 조 장관이 펼칠 사법개혁이 어떤 것인지 무..
2014년 4월27일, 정홍원 당시 총리는 세월호 사고의 책임을 지고 총리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대통령도 거기에 동의해 후임 총리가 정해질 때까지만 총리직을 수행하라고 한다. 하지만 일은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총리 후보로 지명된 안대희 전 대법관이 5개월의 변호사 생활 동안 16억원의 수임료를 받은 것이 문제가 돼 낙마해 버렸다. 정홍원은 계속 총리직에 있어야 했다. 그 후 지명된 문창극 전 기자는 온누리교회 강연에서 일본의 식민지배가 하나님의 뜻이라고 헛소리하는 바람에 낙마했다. 정홍원은 여전히 총리였다. 다행히 국회의원이던 이완구가 총리가 되면서 정홍원은 사의 표명 후 거의 10개월 만에 총리 자리에서 물러날 수 있었는데, 그 이완구가 경남기업 회장의 자살 사건에 연루됐다는 의혹으로 두 달 만..
영화 에서 기택(송강호)은 반지하에서 아무 계획 없이 살던 이였다. 하지만 4수생인 기택의 아들이 부잣집 박사장 딸의 과외선생이 되자 나머지 구성원들도 다 그 집에 취업하고픈 욕망을 갖는다. 희대의 사기를 동원한 끝에 기택과 아내, 그리고 딸도 결국 박사장 집에서 일자리를 마련하는 데 성공한다. 넷이서 돈을 번다면 얼마 안 있어 반지하를 벗어나 더 나은 곳으로 갈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그 꿈은 실현되지 않았으니, 그건 바로 기택의 자존심 때문이었다. 박사장네 가족들은 기택네 가족에게서 불쾌한 냄새를 맡는다. 박사장은 그걸 ‘가끔 지하철을 타면 나는, 행주 삶는 듯한 냄새’라고 말한다. 누군가가 자신에게 냄새가 난다고 말할 때, 사람은 위축된다. 기택은 냄새를 없애보려 노력하지만, 딸의 일갈은 그런 노..
“남자 한 분만 나와주세요. 빨리 빨리 남자분 나오시라고요. 빨리, 빨리!”철 지난 얘기를 해보자. 지난 5월13일 밤, 술에 취한 중년 남성 두 명이 난동을 부렸다. 경찰이 출동했지만, 취객을 제대로 제압하지 못해 애를 먹었다. 특히 같이 출동한 여자 경찰은 근처에 있던 일반 시민에게 도움을 요청한 끝에 결국 수갑을 채울 수 있었다. 이른바 ‘대림동 여경 사건’이다. 남녀를 떠나서 취객을 제압하는 것은 쉽지 않다. 영화 의 마동석은 상황이 발생하면 한방에 상대를 때려눕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영화일 뿐 모든 경찰이 다 그런 능력을 갖고 있진 않다. 게다가 인권에 대한 감수성이 점점 높아지다 보니, 행여 진압과정에서 범죄자가 다치면 경찰관이 징계를 받기도 한다. 경찰의 대응이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는 얘기..
지난 20일, 검찰 과거사위원회는 소위 ‘장자연 리스트’의 실체를 확인하지 못했다며 재수사를 권고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막대한 국민 세금을 써가면서, 장장 13개월이나 조사를 했다는 점에서, 과거사위의 결론은 허무하기 짝이 없다. 사실 고인의 죽음을 규명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고인이 숨질 당시의 수사가 부실했기 때문이다. 10년이 지나는 사이 몇몇 범죄는 공소시효가 지났고, 증거는 더 없어졌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과거사위에 기대를 한 결정적 이유는 두 달여 동안 매스컴을 화려하게 수놓았던 윤지오의 존재였다. 장씨 사건의 유일한 증인을 자처했고, 기자들 앞에서도 주눅 들지 않고 막말을 해대는 윤씨를 보면서 사람들은 드디어 진실이 밝혀지고 악인들이 처벌을 받으리라는 희망을 품을 수 있었다. 실제 조사를 ..
“왜 문을 제대로 잠그지 않았지요?” “왜 옷을 야하게 입었나요?”범죄가 일어났을 때 피해자를 탓하는 건 대체로 부도덕하다. 비난은 범죄를 저지른 이에게 향해야지, 안 그래도 범죄 때문에 고통받고 있는 피해자에게 그 책임을 덧씌우는 것은 옳지 않다. 그럼에도 ‘대체로 부도덕하다’는 표현을 쓴 이유는, 어떤 범죄는 피해자에게도 그 원인이 있기 때문이다. 중고차 사기를 예로 들어보자. 중고차 딜러가 2018년형 뉴 쏘렌토 2.2 디젤 차량을 1000만원에 판다는 광고를 인터넷에 띄운다. 주행거리도 4만㎞에 불과했고, 무사고란다. 이 정도면 최소한 3000만원은 줘야 할 텐데 1000만원이라니, 이건 정말 말도 안되는 가격이다. 마음이 급해져 전화를 건다. “지금 당장 갈 테니까 다른 사람한테 팔지 마세요.”..

“음주운전에 대한 사회적인 경각심을 일깨우는 판결이 나오기를 기대했는데 거기에는 미흡했다.” 음주운전으로 윤창호씨를 죽인 박모씨가 1심에서 징역 6년을 선고받았을 때, 윤씨의 아버지가 한 말이다. 윤씨의 친구도 비슷한 말을 한다. “한 사람의 꿈을 가져가고 6년을 선고받은 것은 너무 짧다.” 나 역시 이 말들에 동의한다. 정의로운 검사가 되겠다던 스물두 살 청년의 꿈을 짓밟은 행위는 100년의 징역형으로도 용서될 수 없다. 하지만 그 이전까지 음주운전 사망사고에 대한 대법원 양형 기준은 징역 1년에서 4년6월이었음을 고려하면, 이 판결의 형량은 이례적으로 높았다. 예컨대 2016년 23세의 오토바이 운전자를 치어 숨지게 한 음주운전자는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후자의 청년이라고 꿈이 없는 것은 아닐진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