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사면발니에 걸렸어요. 도와주세요.” 포털 사이트에 가보면 이런 식의 질문이 이따금씩 올라온다. 사면발니는 음모에 기생하는 ‘이’의 일종인데, 사는 곳의 특성상 성적 접촉으로 전파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사면발니에 감염된 남편들은 펄쩍 뛴다. 자신은 외부인과 성적 접촉을 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대신 그들은 ‘찜질방에서 걸렸다’거나 모텔, 사우나 탈의실 등에서 옮았다고 말한다. 물론 수건이나 팬티 등을 공유함으로써 사면발니에 감염되는 것도 가능하지만, 이런 일은 ‘지극히 드물다’고 문헌에 나와 있다. 게다가 찜질방에서는 새로 소독한 수건을 쓰지, 남이 음모를 닦던 수건을 사용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나라 사면발니 환자들의 거의 전부가 찜질방을 통해 전파된다는 건 의학적으로 말이 안되는 ..
얼마 전, 출판사 분과 새 책을 쓰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출판사가 내게 부탁하는 자리였으니 자신이 내겠다고 우겼지만, 그냥 내가 계산하고 말았다. 그곳은 중국집이었고 코스요리를 먹었으니, 누군가가 신고한다면 부정청탁금지법(이하 김영란법)에 걸릴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다. 돈을 내기 싫다면 해결책은 간단하다. 아예 안 만나거나 저렴한 곳에서 만나면 되지만, 아무리 싸다 해도 얻어먹는 건 오해의 소지가 있는지라 주로 전자를 택하고 있다. 이해관계가 없는 친구들과 만난다 해도 김영란법을 생각하면 머리가 복잡해진다. 더치페이 대신 한 명이 “오늘은 내가 쏜다”고 하면, 그것 역시 문제가 될 수 있지 않을까?(전문가에게 확인해보니 두 경우 모두 교수로서의 직무관련성이 없어 김영란법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한..
“제1심 판결은 법리판단과 사실인증 그 모두에 대해서 법률가로서 도저히 수긍할 수 없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5년형을 선고받은 뒤 삼성 측 변호인이 한 말이다. 이해할 수 없었다. 판사들도 나름의 법리에 근거해 판결을 내렸을 텐데, 의견 차이가 약간 있는 것도 아니고 도저히 수긍할 수 없다니 그게 말이 되는가. 심지어 ‘유죄판결 모두에 대해 인정 못 하냐’는 질문에 “전부 다 인정 못 한다. 유죄 선고된 부분에 대해서 전부 다 인정할 수 없다”고 덧붙이기까지 했다. 법은 사회의 질서유지를 위해 만들어진 최소한의 규범이다. 당연히 법은 사회구성원의 보편적인 상식에 부합해야 한다. 이 부회장의 5년형에 대해 시민사회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한 기사에 따르면 시민들 대부분이 구형량에 비해 형량이 너..
얼마 전, 골목길에서 서행하는 차량의 사이드미러에 일부러 손을 부딪친 뒤 운전자에게 치료비를 뜯어낸 일당이 검거됐다. 2013년 9월부터 올해 2월까지 26차례에 걸쳐 이 짓을 했고, 갈취한 액수가 무려 1290만원이란다. 이들이 했던 수법 중엔 다음과 같은 것도 있었다. 운전면허가 없는 초등학교 동창에게 운전연습을 시켜준다며 자기 차를 운전시킨 뒤, 인근에서 기다리고 있던 다른 일당으로 하여금 자기 차를 들이받게 한 것이다. 무면허로 사고를 낸 게 두려운 초등학교 동창은 350만원을 뜯기고 만다. 당시 유행하던 창조경제에 걸맞은 보험사기다. 전통적인 보험사기도 꾸준히 저질러지고 있다. 통증을 과장해 입원하거나 장해 진단을 받은 뒤 보험금을 청구하는 사례가 대표적인데, 지금도 잊을 수 없는 분이 교통사고..
역대 대통령 중 가장 말을 못한 분은 누구일까? 대부분 503호에 계시는 그분(이하 GH)을 떠올리겠지만, 김영삼 전 대통령(이하 YS)도 결코 만만한 분은 아니다. 말 못하는 걸 남들이 알아챌까봐 대선 전 토론회에 한사코 불참했을 정도인데, 특유의 사투리까지 결합돼 정체불명의 문장이 탄생하곤 했다. 정말인지 확실한 건 아니지만 “제주도를 국제적으로 유명한 강간도시로 만들겠습니다”라든지 ‘결식’이라 해야 할 것을 ‘걸식아동’이라 하는 등 숱한 일화를 남겼다. 그래도 내가 GH의 손을 들어주는 이유는 YS는 그래도 문장의 기본은 갖춘 반면, GH는 한 문장에 주어, 동사, 목적어가 여러 개씩 뒤섞여 누구도 이해하지 못하는 문장을 만들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GH는 수첩이나 프롬프터가 없으면 말을 하지 않으..
야구와 기생충 이외의 것들에는 도통 관심이 없던 내가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강준만 교수가 쓴 ‘인물과 사상’이란 계간지를 읽고 난 뒤부터였다. 훗날 수많은 ‘강준만 키드’를 양산해 낸 그 시리즈의 창간호는 대선이 있던 1997년 1월 출간됐는데, 부제가 ‘정권교체가 세상을 바꾼다’였다. 저자는 그 책에서 김대중(DJ)으로 정권이 교체되면 우리 사회에 긍정적인 일들이 많을 것이라면서 DJ에 대한 지지를 촉구했다. 그때만 해도 쿠데타로 집권한 세력과 그 후손들이 36년간 장기집권을 해왔기에, 그의 말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어 보였다. 그의 바람대로 그해 말 치러진 대선에서 DJ는 대통령에 당선된다. 남북정상회담이 열리는 등 충격적인 일들이 몇 있었지만, 세상이 바뀌었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새 대통..
한 남성이 헤어지자는 동거녀의 말에 격분해 그녀를 패 죽였다. 이것만 해도 충분히 엽기적인데, 그는 동생과 함께 인근 밭에 그녀를 묻고 시멘트를 섞어 암매장한다. 이 엽기적인 사건은 4년이 지난 2016년에야 진상이 밝혀졌고, 결국 남자는 구속된다. 이분은 징역 몇 년을 선고받았을까. 20년 이상이라고 답할 분들이 많겠지만, 판사님은 달랑 징역 5년을 선고한다. 반면 자신의 딸을 성폭행했다는 상담교사를 살해한 뒤 자수한 어머니는 10년형을 받았기에, 판결의 기준이 도대체 무엇인지 누리꾼들의 관심이 뜨겁다. 일부에선 “암매장보다 자수가 더 나쁘냐”며 의아해하지만, 그건 그렇게 볼 일이 아니다. 내가 보기에 이게 다 판사님이 그리는 큰 그림이니까. 사람들은 흔히 범죄 없는 세상을 원한다고 말한다. 실제 그런..
새해가 밝을 때마다 신년계획을 세우던 때가 있었다. 올해에는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여건이 되면 그것도 해야지 하며, 이대로 간다면 내 자신이 정말 멋진 사람이 될 거라는 희망에 부풀었다. 하지만 석 달쯤 지나고 나면 연초의 기대는 어느덧 사라지고, 예년과 다름없는 일상을 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했다. 이런 일이 매년 반복되다 보니 해가 바뀌어도 더 이상 들뜨지 않게 되고, 새해라고 해서 특별히 계획을 세우는 일도 없어졌다. 어디에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해가 바뀌었다고 해서 사람이 바뀐 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2016년이나 2017년이나 똑같은 존재인데, 뭔가가 크게 변할 거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오류다. 정말 다른 삶을 살고 싶다면, 그에 걸맞은 의지를 가지고 노력하면 된다. 사람은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