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구미에서 왔어요. 김제동씨 보려고요.” 한 여성의 말에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JTBC 촬영장인 경기도 평택의 예술회관에 모인 수백명의 사람들은 모두 김제동을 보기 위해 멀리서 온 사람들이었으니까. 경기도 포천, 전남 영광, 심지어 강원도 평창에서 온 이도 있었다. 한 여성은 자신이 방청권을 얻기까지 6번이나 실패했다면서 이번에라도 방청권을 얻은 것에 감격하기도 했다. 대부분의 프로그램이 연예인들의 신변잡기로 채워지는 시대에서, ‘톡투유’는 관객과 호흡하는 몇 안 되는 프로그램 중 하나다. 그래서 이 프로그램에선 평범한 일상을 사는 사람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아버지, 투석 꼭 받으세요!”라고 말하는 딸, 아내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는 남편, 임신한 몸으로 지하철을 탔을 때 너무 힘들..
요즘 애들이 하나같이 스마트폰을 들고 다니는 것처럼, 30년 전 신세대들은 다들 ‘워크맨’을 허리에 차고 다녔다. 워크맨은 1979년 일본 회사 소니가 만든 세계 최초의 소형 카세트 플레이어인데, 덕분에 사람들은 집 바깥에서도 음악을 들을 수 있게 됐다. 그 뒤 등장한 ‘아이와’, ‘파나소닉’ 등 또 다른 일본제품들이 가세해 소형 카세트 시장을 장악하던 그때, 우리 기술로 만든 제품이 등장한다. 바로 삼성의 ‘마이마이’로, 가격이 싼 데다 국산품 애용 정신이 남아있던 터라 폭발적 인기를 모으긴 했지만, 냉정히 판단할 때 디자인이나 음질은 일본 것들과 비교가 안됐다. 혁신적이고 늘 남보다 앞서가는 소니와 소니의 뒤를 쫓기 바쁜 삼성, 그때만 해도 삼성이 소니를 따라잡을 것이라 생각하는 이는 없었다. 불과 ..
프로도는 호빗족이라고, 인간의 허리 정도 크기의 작은 종족에 속하는 소년이었다. 프로도는 지극히 온순한 성격인 데다 무술이라곤 전혀 할 줄 몰랐다. 위기에 몰리면 창백한 표정으로 어쩔 줄 몰라 하는 게 그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러니 그가 우연히 얻은 반지가 사실은 엄청난 힘을 지닌 절대반지라는 것을 알았을 때 얼마나 충격을 받았겠는가? 게다가 그 반지가 악의 세력을 이끄는 샤우론의 손에 들어가지 않도록 ‘운명의 산’까지 반지를 가져간 뒤 용암에다 던져버려야 한다는 말까지 들었을 때, 프로도는 자신의 운명을 저주하기까지 했으리라. 샤우론이 절대반지를 차지하기 위해 자신을 노릴 게 분명한데, 그 위험에 맞서서 반지를 버리러 가라니 그게 말이나 되나? 하지만 프로도는 흔쾌히 그 제안을 수락한다. 마법사와..
“속으로는 울고 있어요.” 2017년 3월 초, WBC라는 이름의 국제야구대회가 열렸다. 1, 2회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냈지만, 3회 대회 때 예선 탈락의 쓴맛을 본 우리로선 명예회복이 절실했다. 게다가 예선전이 우리나라 고척돔에서 개최됐으니, 여러모로 좋은 기회였다. 하지만 한국은 “이 나라도 야구를 하나?”라는 생각이 들 만큼 생소하기 짝이 없는 이스라엘에 2 대 1로 지는 등 시종 졸전을 거듭한 끝에 또다시 예선 탈락하고 만다. 일정 기간 이상 국내 프로 경기에서 뛰면 큰돈을 벌 수 있는 기회를 주는 FA제도 덕분에 수십억원을 손에 쥔 선수들이 많았지만, 그들 중 자기 몸값에 걸맞은 실력을 보인 선수는 드물었다. 우리 선수들에 대한 질타가 쏟아진 건 당연했다. 특히 선수들의 태도가 비난의 대상이 ..
- 3월 1일 지면기사 내용입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저는 지난 1998년 대구 보궐선거를 통해 정치에 입문한 뒤 대통령인 지금에 이르기까지 단 한순간도 국가와 국민을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제가 어쩌다 시장이나 공장, 노숙자쉼터 등 소외되고 어려운 서민을 찾아갔던 것은 그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함이 아니라, 그저 한번 얼굴을 비치기 위해서였습니다. 제가 입만 열면 신뢰를 강조한 것도 사실은 저 스스로도 저를 믿지 못했기 때문이며, 행여 국민들이 그 사실을 알아챌까 두려워 선수를 친 것이었습니다. 목표했던 대통령이 된 뒤에는 정말 원 없이 놀았습니다. 원래 지킬 생각이 없었던 공약은 잊으려 노력했고, 제가 해야 할 국정과제는 최순실이 챙기도록 했습니다. 대신 피부 관리를 위해 ..
“박 대통령 탄핵은 검찰, 국회, 언론, 종북 세력의 정치적 음모에 의해 이뤄진 것이다.” 서울디지텍고등학교 곽일천 교장이 지난 7일 종업식에서 학생들을 앞에 놓고 했던 말이다. 정권의 하수인이라 불리는 검찰, 박 대통령의 충복인 새누리당이 다수당인 국회, 보수의 지분이 많았던 언론이 그간 배척해 마지않던 종북세력과 힘을 합쳐 음모를 꾸몄다는 그의 말에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하지만 태블릿PC가 최순실의 것인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는 다음 말을 들으면 진짜 음모를 꾸미는 이가 누구인지 짐작이 간다. 80%의 국민이 탄핵을 지지하는 이 순간에도 저들은 뒤집기 한판을 꿈꾸며 음모를 꾸미고 있는 중이니까. 모든 것은 다 고영태가 벌인 일이라느니 트럼프가 탄핵을 반대했다느니 하는 내용의 가짜뉴스는 그 결정판이다...
- 2월 1일 지면기사 내용입니다- 이왕이면 착하게 사는 것이 좋겠지만, 삶이라는 게 꼭 자기 마음대로 되는 건 아니다. 실수로 사람을 다치게 할 수도, 충동적으로 범죄를 저지를 수도 있다. 의도야 어쨌든 범죄를 저지른 사람을 우리는 범죄자라 부른다. 범죄자를 유형에 따라 분류하면 크게 네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자수한 범죄자. 인간의 본능상 범행 후 붙잡히지 않으려고 도망치긴 했지만, 제정신이 들면 대개 자수하고 싶어진다. 하기야, 남은 생애를 언제 붙잡힐까 고민하면서 사는 것보다, 죗값을 치르는 게 훨씬 더 떳떳하지 않은가? 자수는 경찰에게 좋은 일이고, 자수했다고 법원이 형량을 줄여주니 범인에게도 좋다. 2016년 8월, 나와 성이 같은 29세 서모씨는 금은방에 들어가 금팔찌를 보여 달라고 ..
지난 몇 달간, 이 나라에선 거짓말의 향연이 펼쳐졌다. 그들의 거짓말에 처음엔 화가 났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무감각해졌고, 나중에는 누가 거짓말을 더 잘하는지 따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됐다. 이 글은 그러니까 내가 선정한 거짓말 왕에 대한 보고서다. 5위. 박근혜 대통령 거짓말의 포문을 연 것은 박 대통령이었다. 이분은 세 차례 간담회와 올해 초의 신년간담회까지, 총 4차례나 거짓말 리사이틀을 벌였다. 심지어 담화 중에 했던 ‘죄송하다’는 말 역시 거짓말이었다. 그럼에도 이분의 순위가 낮은 것은 거짓말의 수준이 그리 높지 않기 때문이었다. 진실을 말하긴 쉽다. 자신이 겪은 대로 얘기하면 되니까 말이다. 거짓말은 그렇지 않다. 사실이 아닌 말로 다른 이들을 설득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