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경 기자 sunkim@kyunghyang.com 회사 엘리베이터에서 후배를 만났다. 후배가 뜬금없이 묻는다. “왜 우리 부장들은 모두 김치찌개를 좋아할까요?” 부장들이 자주 김치찌개를 먹으러 가자고 하나 보다. 그러고 보니 한국 사람들은 찌개를 참 좋아한다. ‘김치찌개’ ‘부대찌개’ ‘된장찌개’ 등등 종류도 정말 많다. 음식점 차림표를 보면 이들의 표기가 ‘찌개’ ‘찌게’로 제각각이다. ‘찌개’는 ‘찌다’의 동사 어간 ‘찌’에 명사를 만드는 접미사 ‘개’가 붙어 만들어진 말이다. ‘걸개’ ‘깔개’ ‘덮개’ 등이 이에 해당한다. 현대국어에 명사를 만드는 접미사는 ‘개’만 있다. 그래서 ‘찌게’는 될 수가 없다. ‘지게’ ‘뜯게’ ‘집게’는 현대국어 이전 ‘게’와 ‘개’를 구분해 쓰던 때 만들어진 말이다..
김선경 기자 sunkim@kyunghyang.com 경향신문이 칼럼 필진을 크게 보강했다. 새로운 필진이 다양한 칼럼을 통해 국내외 이슈와 현안을 균형 잡힌 시각으로 진단해 독자들에게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줄 것으로 보인다. 신문의 지면에 글이나 그림 등을 싣기 위해 마련된 자리를 ‘란(欄)’이라고 한다. 그런데 ‘란’의 쓰임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 많다. ‘란’은 홀로 쓰이거나 말의 첫머리에 올 때는 두음법칙이 적용돼 ‘난’으로 적는다. ‘독자의 소리를 싣는 난’ ‘빈 난을 채우다’ 따위로 쓴다. 그런데 ‘란’이 어떤 말 뒤에 붙어 한 단어가 될 때는 ‘란’ 또는 ‘난’으로 달리 적는다. 즉 앞말이 한자어이면 ‘란’으로, 고유어이거나 외래어일 때는 ‘난’으로 적는다. 광고란·독자란·투고란은 한자어 뒤이기..
김선경 기자 sunkim@kyunghyang.com 지난 주말 인류 최초로 달에 착륙한 미국 우주비행사 닐 암스트롱이 8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부고기사에서 자주 혼동해 쓰는 말이 있다. 바로 ‘빈소’와 ‘분향소’이다. ‘빈소’는 상여가 나갈 때까지 관을 놓아두는 방으로, 시신을 안치한 곳이다. 이에 비해 ‘분향소’는 향을 피우고 고인을 애도할 수 있도록 마련된 장소이다. 따라서 ‘빈소’는 시신이 있는 곳이기에 한 군데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분향소’는 시신이 없는 장소에도 둘 수 있기 때문에 전국 각지에 얼마든지 설치할 수 있다. 시신이 있으면 ‘빈소’, 없으면 ‘분향소’라고 생각하면 된다. ‘조문객’과 ‘추모객’도 혼동하기 쉬운 말이다. ‘조문’은 ‘남의 죽음에 대하..
선배 얘기다. 선배가 신문사에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다른 부서 여사원에게 “참, 일을 칠칠맞게 한다”고 했단다. 그랬더니 갑자기 그 여사원이 “어떻게 그런 심한 말을 할 수 있느냐”며 불같이 화를 내더란다. 자신을 탓하는 말로 받아들인 것이다. 당황한 선배는 국어사전에서 ‘칠칠맞다’를 찾아 보여준 후에야 오해를 풀 수 있었다고 한다. ‘칠칠맞다’를 ‘일처리가 야무지지 못하고 주접스럽다’는 의미로 잘못 알고 쓰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칠칠하다’를 속되게 이르는 말인 ‘칠칠맞다’는 ‘주접이 들지 않고 깨끗하고 단정하다’ ‘성질이나 일처리가 반듯하고 야무지다’란 뜻이다. 즉 긍정적인 의미만 가졌다. 따라서 “참, 일을 칠칠맞게 한다”는 ‘반듯하고 야무지게 일처리를 잘한다’는 뜻이다. 결국 칭찬인 ..
김선경 기자 sunkim@kyunghyang.com 같은 산악회에 다니는 후배가 전화를 했다. 퇴근 후 소주 한잔하자고 한다. 횟집에서 후배가 소주와 ‘모듬회’를 주문한다. 직업의식이 투철한(?) 글쓴이가 그에게 ‘모듬회’는 틀린 말이라는 거 아느냐고 물었다. 눈이 동그래지면서 ‘모듬회’라고 적힌 음식점 차림표를 글쓴이에게 보여준다. 음식점 차림표에 ‘모듬회’ ‘모듬요리’ ‘모듬구이’라고 적어 놓은 식당이 많다. 그런데 이는 잘못된 말이다. ‘모둠회’ ‘모둠요리’ ‘모둠구이’가 바른말이다. 모둠회의 ‘모둠’은 ‘모도다’에서 유래한 말이다. ‘모으다’의 옛말이 ‘모도다’이다. 그리고 ‘모두다’는 ‘모으다’의 방언이면서 ‘모도다’가 변형된 말이다. ‘모두다’의 명사형 ‘모둠’에 명사 ‘회’가 결합하면서 표준..
김선경 기자 sunkim@kyunghyang.com 퇴근길, 버스정류장에 붙어 있는 한 음료제품의 광고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햇빛은 따갑고, 갈증은 나고!’ 요즘 불볕더위에 딱 맞는 광고 문구와 시원한 배경 그림이 가슴에 확 와 닿는다. 그런데 옥에 티가 하나 있다. ‘햇볕’을 쓸 자리에 ‘햇빛’을 썼다. ‘햇빛’은 단순히 해의 빛을 말한다. 곧 ‘광선’이다. ‘빛’은 눈으로 볼 수 있지만 뜨겁진 않다. “햇빛을 가리다” “풀잎마다 맺힌 이슬방울이 햇빛에 반사되어 반짝이고 있었다”처럼 쓸 수 있다. 또 ‘햇빛’은 “생전에 그의 소설은 햇빛을 보지 못했다”처럼 세상에 알려져 칭송받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도 쓰인다. 이와 달리 ‘햇볕’은 해가 내리쬐는 뜨거운 기운을 말한다. 뜨거운 기운, 즉 ‘열..
김선경 기자 sunkim@kyunghyang.com 현금자동입출금기에서 현금을 찾았다. 필요한 금액을 선택하니 ‘명세서를 출력하시겠습니까?’라고 친절하게 묻는다. 그리고 ‘예’ ‘아니오’라는 버튼이 뜬다. 그런데 이 경우 ‘예’ ‘아니오’가 아니라 ‘예’ ‘아니요’가 바른말이다. ‘아니요’와 ‘아니오’에서 ‘-요’를 붙여야 할지, ‘-오’를 써야 할지 헷갈려 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이 구분은 크게 어렵지 않다. 친구나 동기가 “밥 먹었어”라고 물었을 때 먹었다면 ‘응’이라고 하고, 먹지 않았다면 ‘아니’라고 말한다. 묻는 사람이 윗사람일 경우 먹었다면 ‘예’, 그렇지 않다면 ‘아니요’라고 대답해야 한다. ‘응’의 높임말은 ‘예’이고, ‘아니’의 존대어는 ‘아니요’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아니오’는 ‘..
김선경 기자 sunkim@kyunghyang.com 하루는 찜찜한 기분으로 출근을 했다. 아침에 본 방송 프로그램에서 들은 ‘불치병’이란 말 때문이다. 인터넷으로 관련 기사를 검색해 봤다. ‘불치병에 걸린 소녀…’ ‘희귀병으로 시한부 인생…’이란 내용의 수많은 기사들이 떴다. ‘불치병’은 사전에 올라 있는 표준어이긴 하다. 하지만 의미가 영 마뜩하지 않다. ‘불치병’은 말 그대로 고칠 수 없는 병이다. ‘불치병’은 대개 ‘난치병’으로 쓰면 뜻이 통한다. ‘난치병’은 고치기 어려운 병을 말한다. 한 글자 차이지만 병마와 싸우고 있는 사람에게 다가오는 의미는 너무나 다르다. 병과 관련해 ‘희귀병’이란 말도 자주 쓴다. 아직 사전에 표제어로 올라 있진 않지만 언론을 통해서나 일상생활에서 접해온 지는 꽤 오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