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경 기자 sunkim@kyunghyang.com 글쓴이는 겨울을 참 싫어한다. 겨울엔 특별한 일이 없으면 거의 동면하는 곰 수준으로 뒹굴뒹굴하며 집 밖으로 한 발짝도 나오지 않는다. 추운 게 너무 싫기 때문이다. 날씨가 꽤 추워졌다. 이맘때면 신문이나 방송에서 자주 보거나 듣는 말이 있다. “갑자기 찾아온 추위에 시민들이 옷깃을 여미고 어쩌고저쩌고하는” 따위의 표현이다. 그런데 이때의 ‘여미고’는 바른 표현이 아니다. 옷깃을 잘 여민다고 덜 추워지는 게 아니다. ‘여미다’는 ‘벌어진 옷깃이나 장막 따위를 바로 합쳐 단정하게 하다’라는 뜻이다. 따라서 ‘여미다’는 흐트러진 옷차림을 단정하게 매무시할 때 쓰는 말이지 추위를 막을 때 사용하는 말이 아니다. 추위를 막으려면 옷깃을 세워야 한다. 또 관용구로..
김선경 기자 sunkim@kyunghyang.com 두 사람이 의견이 달라 이러쿵저러쿵하면서 옥신각신하고 있다. 이를 본 한 사람은 ‘실랑이를 하고 있다’고 하고, 다른 사람은 ‘승강이를 하고 있다’고 한다. ‘실랑이’와 ‘승강이’ 중 어느 게 맞을까? ‘실랑이’의 본디 뜻은 ‘이러니저러니, 옳으니 그르니 하며 남을 못살게 굴거나 괴롭히는 일’이다. “버스 운전기사에게 실랑이하는 주정꾼” “빚쟁이들한테 실랑이를 받는 어머니가 불쌍하였다”처럼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남을 못살게 굴거나 괴롭히는 경우에 쓴다. 이에 비해 ‘승강이’는 ‘서로 자기주장을 고집하며 옥신각신하는 일’을 의미한다. 따라서 “접촉 사고로 운전자들 사이에 승강이가 벌어졌다” “젊은이들이 한참을 승강이하다가 화해를 하였다” 따위로 쓴다. ..
김선경 기자 sunkim@kyunghyang.com 글쓴이는 산을 참 좋아한다. 특별한 계획이 없는 토요일엔 어김없이 산에 간다. 예전엔 나홀로 산행을 즐겼지만 3년 전쯤부터는 회사 대선배를 통해 알게 된 산악회에 가입해 단체 산행을 주로 간다. 얼마 전 한 산악회를 따라 경기 동두천시에 있는 소요산에 갔다. 산행 후 ‘뒷풀이’ 장소에서 ‘가온길’이란 회원 옆에 앉아 식사를 하게 됐다. 산악회에서는 서로 본명 대신 ‘닉네임’(별명 혹은 애칭)을 부른다. 우리 말글에 관심이 많은 글쓴이가 호기심이 발동해 ‘가온길’이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우리말 ‘가운뎃길’의 옛말이란다. 글쓴이에겐 생소한 말이어서 국립국어원에 ‘가온길’에 대해 질의를 했다. 국립국어원에 따르면 ‘가운뎃길’이 국어사전에 올라 있지..
김선경 기자 sunkim@kyunghyang.com “도대체 이 나라가 누구의 나라요. 백성들이 지아비라 부르는 왕이라면 금수의 탈을 쓰더라도, 내 빼앗고 훔치고 빌어먹을지언정 그들을 살려야겠소. 그대들이 죽고 못 사는 사대의 예보다 내 나라, 내 백성이 백 갑절은 소중하오!” 영화 에서 광해의 대사 한 대목이다. 그런데 대사 속에 잘못 쓰인 말이 하나 있다. 바로 ‘갑절’이다. ‘갑절’과 ‘곱절’을 섞바꿔 쓰는 사람이 많다. ‘갑절’은 어떤 수나 양을 두 번 합한 만큼을 뜻한다. ‘곱절’도 ‘갑절’과 같은 뜻으로 쓰인다. ‘이곳 집값은 다른 곳의 갑절이다’나 ‘이곳 집값은 다른 곳의 곱절이다’는 같은 의미다. 하지만 ‘곱절’에는 ‘갑절’에 없는 뜻이 하나 있다. ‘갑절’은 두 배라는 의미로만 쓰이지만 ..
김선경 기자 sunkim@kyunghyang.com 글쓴이가 사는 동네 육교에 ‘여유를 띄어 보세요’라고 쓰인 간판이 붙어 있었다. 그런데 얼마 후 ‘여유를 띠어 보세요’로 바뀌었다. 누군가가 ‘띄어’가 아니라 ‘띠어’가 맞는 말이라고 지적한 모양이다. ‘띄다’와 ‘띠다’는 발음이 엇비슷해 서로 섞바꿔 쓰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띄다’와 ‘띠다’는 두 가지만 알면 헷갈릴 염려가 없다. 먼저 ‘뜨이다’의 준말인 ‘띄다’는 “눈에 보인다, 청각을 긴장시킨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원고에 가끔 오자가 눈에 띈다” “아이의 귀가 번쩍 띄었다” 따위로 쓴다. 그리고 ‘띄다’는 “간격을 벌어지게 하다”라는 뜻을 지닌 사동사 ‘띄우다’의 준말이기도 하다. “두 줄을 띄고 써라” “다음 문장을 맞춤법에 맞게 띄어..
김선경 기자 sunkim@kyunghyang.com 완연한 가을 날씨가 이어지고 있다. 고개 숙인 벼들이 수확의 계절이 왔음을 알린다. 잇단 태풍에도 다행스럽게 올해 쌀농사는 풍년이란다. 지난해에 수확한 곡식은 ‘묵은 곡식’, 그리고 올해 농사를 지어 거두어들인 곡식은 ‘햇곡식’이라고 한다. 우리말에서 ‘그해에 난 어떤 것’을 가리킬 때 ‘해’나 ‘햇’이 쓰인다. ‘해쑥’ ‘해콩’ ‘해팥’처럼 첫소리가 된소리나 거센소리인 명사 앞에서는 ‘해’가 붙고, ‘햇감자’ ‘햇과일’ ‘햇사과’처럼 두음이 예사소리인 명사 앞에서는 ‘햇’이 쓰인다. 그런데 왜 그해에 난 쌀은 ‘해쌀’이 아니라 ‘햅쌀’일까? 그 답은 글자 ‘쌀’에 있다. ‘쌀’의 옛말은 지금처럼 첫 자음이 쌍시옷(ㅆ)이 아니라 비읍과 시옷(ㅄ)으로 이..
김선경 기자 sunkim@kyunghyang.com 어느덧 추석이 다가왔다. 올 추석은 높은 물가와 경기불황으로 그리 흥이 나질 않는다. 그래도 찾아갈 고향이 있고, 찾아뵐 부모님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다. 요즘은 명절이라고 해서 특별히 한복을 찾는 사람이 많지 않다. 그나마도 ‘전통한복’보다는 ‘개량한복’을 입는 사람이 더 많은 듯하다. ‘전통한복’이 ‘개량한복’에 비해 입기가 불편하고 움직임이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개량한복’은 문제가 있는 말이다. ‘개량(改良)’은 ‘나쁜 점을 보완하여 더 좋게 고침’을 뜻한다. 그러므로 ‘개량한복’이라 하면 ‘전통한복’에 큰 문제가 있거나 뭐가 나빠서 좋게 고쳤다는 의미로 들리기 쉽다. 입기에 조금 불편하다고 나쁜 것은 아니다. 따라..
김선경 기자 sunkim@kyunghyang.com 글쓴이에겐 1년에 한두 번 입는 옷이 있다. 바로 한복이다. 사실 명절 때 한복을 입으라고 하면 영 달갑지 않다. 입기 불편하기도 하지만 ‘옷매무시’를 아무리 잘해도 ‘옷매무새’가 곱지 않기 때문이다. ‘옷매무시’와 ‘옷매무새’는 어떻게 구별해야 할지 망설이게 되는 말이다. ‘옷매무새’는 옷을 입는 맵시를 말한다. 즉 아름답고 보기 좋게 수습하여 입은 모양새가 ‘옷매무새’인 것이다. 줄여서 ‘매무새’라고 한다. “그는 언제나 옷매무새가 단정하다” “매무새가 추레하다”로 쓰인다. ‘옷매무새’ 뒤에는 주로 ‘추레하다, 곱다, 단정하다, 말쑥하다’와 같은 형용사가 온다.반면 ‘옷매무시’는 ‘옷을 입을 때 매고 여미는 따위의 뒷단속’을 뜻한다. ‘매무시’라고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