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언 곳에 여인의 옷 벗는 소리”(김광균의 설야) “세 번째 줄에서 떨어진 어릿광대”(안톤 슈낙의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고등학교 교과서에서 배운 이후 아직도 안 잊히는 구절들이다. 시조 하나가 더 있다. “눈보라 비껴나는/全──群──街──道//퍼뜩 차창으로/스쳐가는 인정아!//외딴집 섬돌에 놓인/하나/둘/세 켤레”(장순하의 고무신). 완도 식생조사 갔다 오는 길. 까딱까딱 졸다가 깨어나니 스쳐가는 이정표에 부안, 줄포가 나오고 언뜻 군산도 보이는 것 같았다. 꼭 그 도로는 아니겠지만 전군가도와 이웃한 어디쯤일 듯. 어느 순간 퍼뜩 차창으로 달려드는 나무가 있었다. 초례청의 청실홍실 같은 꽃을 가지 끝에 활짝 달고 있는 자귀나무였다. 이 서해안고속도로와 나란히 달리는 경부고속도로에는 이런 안내판이..
제기랄, 난들 어디 이러고 싶었겠나. 온몸의 안테나를 있는 대로 가동했지만 브라주카가 이리 빨리 올 줄 알았나. 모든 신경과 솜털까지도 쫑긋 세웠지만 공이 모서리로 빨려들어갈 줄 알았나. 벼락치듯 공이 쩍 갈라놓은 허공에 허를 찔린 골키퍼는, 공보다 한 박자 늦게, 골문 안으로 내려꽂히고 만다. 철퍼덕! 무릇 축구에선 이기려면 스트라이커의 한 방이, 지지 않으려면 수문장의 선방이 필요한 법이다. 겨우 정신을 차린 골키퍼가 애꿎은 풀을 뽑으며 분을 삭이고 있는 동안, 화면에서는 브라주카의 활약이 한 번 더 펼쳐진다. 중원에서 넘실대던 공은 두 번의 긴 패스와 정교한 헤딩을 발판으로 딱따구리가 제집을 찾아가듯 구멍 안으로 쏙 들어간다. 이번에는 각도를 달리하여 보여주는 골키퍼의 추락. 클로즈업되는 것은 브라..
강릉시 옥계면의 석병산 중턱. 끊어질 듯 이어지는 희미한 등산로에서 녹색 잎들의 터널을 터덜터덜 걸어갈 때, 저만치에서 나무들의 그림자와 햇빛이 뒤엉켜 노는 것을 본다. 흑백의 그림이 총천연색의 그것보다 훨씬 더 생생하다는 것을 확연히 느끼는 순간이다. 바람이 지휘하는 대로 일렁이는 녹색의 잎과 그 잎의 검은 그림자들. 그들을 밟겠다고 덤벼보지만 외려 나의 무딘 등산화를 타고 넘어 발등을 간지럽힌다. 어느새 마음도 그림자에 접착되니 덩달아 출렁거리지 않을 수 없다. 오늘은 단순히 산에 오르는 게 아니고 주위를 두리번두리번거리면서 야생화들과 안면을 익히는 길. 그런 판에 앞서 가던 누군가가 “오매, 저기 박쥐나무 좀 보소!”라고 외치면 모든 눈들이 일제히 그 소리의 꽁무니를 따라 쫓아간다. 나무들 속의 나..
3년 전의 일. 설악산 가는 길이다. 오색에서 올라 대청봉을 어루만지고 희운각에서 일박했다. 희붐한 아침부터 공룡능선을 훑고 마등령에 섰다. 이쪽은 오세암, 저쪽은 비선대로 이어지는 인적 드문 갈림길 고개. 설악의 어깨에 내 키를 더하니 마음은 구름도 뚫을 듯. 이제 나는 세상에서 제법 고귀(高貴)한 거인이라도 된 셈인가. 1박2일을 꼬빡 투자해서 얻은 높이에 취해 잠시 까불었다. 하지만 그것은 아무런 벼슬도 아닌 것이어서 하산하는 순간 발밑에서 높이는 솔솔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산에서 얻는 것은 산에 모두 반납해야 한다. 그래야 산은 산에서 나가는 길을 허락한다. 절룩거리며 돌계단을 서너 시간 걸었다. 금강굴에 거의 다 왔을 무렵 앞장서서 걷던 이가 지팡이를 들었다. 사람주나무 좀 보세요. 처음으로 그..
뻐꾹뻐꾹. 뻐꾸기 우는 소리가 들렸다. 여기는 북악산의 숙정문 앞 공터. 목요일의 오후 4시를 지나는 무렵이었다. 사연이 있다. 노고산 자락에서 학문에 열중하는 일군의 대학원생들이 야외수업을 겸해서 나들이를 왔다. 지도교수와는 오랜 친분이 있는 터라 어렵게 짬을 내서 안내를 자청하고 늙은 복학생이 된 기분으로 수업에 동참했던 것이다. 와룡공원에서 출발했다. 세월의 때를 시커멓게 묻혀가는 성곽과 그 곁에서 함께 늙어가는 식물들. 멀리서 보니 은사시나무가 훤칠하고 며느리밑씻개가 돌틈을 기어 올라가고 있었다. 말바위 전망대에 서니 북한산이 코끝에 걸리고 서울에서도 알아주는 부촌인 성북동이 발 아래 엎드렸다. 대부분 초행인 듯 단 몇 분 만에 확보되는 시원한 시야에 모두들 감탄했다. 몇몇의 입에서 성북동 비둘기..
무등산은 시를 통해서 내게로 왔다. “청산이 그 무릎 아래 지란을 기르듯”에서의 청산이 바로 그 무등산. 청산은 부산에도 있었다. 재수생을 가르치는 학원 이름. 청산학원을 통과하고 부산역을 떠난 이후 세월의 때를 묻히면서 나도 세상의 무릎 아래 정착했다. 무릎은 주름이 심하게 잡히는 곳이라서 그 문양이 아주 복잡하다. 광주도 광주였지만 무등을 만나야겠다는 건 오래된 생각이었다. 여름이 되면 무등산 수박에 침을 꼴깍 삼키겠지만 그보다 먼저 5월이 오면 무등산 꼭대기 생각이 났다. 기회가 왔다. 5월 첫 주말에 대학 동기들과 원효사-서석대-입석대-증심사의 코스를 잡았다. 초입에는 매미가 승천하는 모습으로 신나무 열매가 잔뜩 달려 있었다. 특이한 식물이 있나 두리번거렸지만 애기나리, 현호색, 광대수염 등등의 ..
청초한 꽃이다. 누가 붓으로 이리 고운 난초를 쳤을까. 백암산의 호젓한 길에서 색깔과 자태에 마음을 홀랑 빼앗겼다. 각시붓꽃, 그 이름을 알고 나선 더욱 그랬다. 이후 도톰하게 낙엽이 쌓인 좁은 능선을 만나면 어디 각시붓꽃이 없나? 궁금한 눈길을 던지기도 했다. 출렁이는 마음도 달랠 겸 인왕산 중턱 석굴암에 올랐다. 봄이 와도 봄 같지 않더니 어느새 여름 기운이 물씬하다. 도심에 포위된 인왕산의 야생화들. 진달래가 지더니 철쭉이 피었다. 이제는 붉은병꽃나무가 절정이다. 이 꽃도 곧 매미 소리에 파묻히겠지. 깔딱고개를 치고 오르니 반반한 바위가 있다. 그제까지 창창하던 돌단풍 곁에 각시붓꽃이 한 무더기 피어있는 게 아닌가. 엎드렸다 일어서는데 이리저리 숲속을 누비는 새들의 지저귐. 멀리서 꿩 우는 소리도 ..
어릴 적 시골집 마당 한편에는 손바닥만 한 꽃밭이 있었다. 나무판때기에 붓글씨로 쓴 아버지의 문패가 반짝거리고 송아지가 뛰쳐나가지 못하도록 지게 작대기를 슬쩍 걸쳐두었던 마당 입구. 그 곁에서 가족들의 발소리를 응원 삼아 채송화, 맨드라미, 분꽃, 칸나, 봉숭아, 코스모스 등이 좁은 땅에서 어울려 자라났다. 식물의 종수는 턱없이 빈약했지만 무성한 잎들로 꽉꽉 채운 꽃밭이었다. 식구들이 같은 밥을 먹고 같은 사투리를 쓰듯 같은 물을 마시고 같은 햇빛을 쬐며 경쟁하는 건강한 생태계. 바닥에 바짝 붙은 채송화는 아래를 담당했고 봉숭아 무리는 조금 높은 공중의 한 귀퉁이를 의젓하게 차지했다. 하늘에서 비라도 오는 날. 꽃들은 고개를 들고 얼굴을 말갛게 씻었고 꽃밭의 모래들도 모처럼 자리를 서로 바꾸었다. 울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