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함민복) 이는 거대한 은유일 뿐만 아니라 사실의 정확한 진술이기도 하다. 청와대 뒤 북악산에 가 보면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완고한 철조망에 드문드문 호제비꽃 혹은 서양민들레가 딱 붙어 피어 있는 것을. 경계병의 매서운 눈초리에도 전혀 주눅 드는 법 없이 나비는 이편저편을 마구잡이로 횡행하고 다니는 것을. 효자동에서 인왕산으로 올라가자면 인간의 마을이 끝나는 곳에서 식물의 동네는 시작된다. 그 경계에도 어김없이 꽃은 피어난다. 나의 일천한 관찰에 따르면 가을이면 보라색 닭의장풀, 봄이면 노란색 애기똥풀.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고 했던가. 그중에서도 가장 절정은 꽃봉오리인 아기들. 줄기나 잎을 찢으면 아기들의 향기로운 똥 같은 노란 즙이 나온다고 해서 그 이름을 얻은 애기..
고개를 숙이고 되돌아보면 떠오르는 한 토막의 풍경이다. 내 고향은 덕유산의 무릎 저 아래에 자리 잡은 아주 궁벽한 촌동네. 천방지축 뛰놀며 철없이 자랐다지만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달그락거리는 필통소리와 함께 책보 집어던진 뒤 찬물에 후다닥 밥 말아 먹고 소먹이를 하러 가는 것. 소를 산으로 몰고 가 배를 든든하게 채워주는 일이 나의 몫이었다. 어느 날의 일이었다. 동무들과 멱을 감고 소를 찾으러 나섰는데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졌다. 비에 젖은 꼴(풀)을 망태에 대충 담고 서둘러 소를 풀어논 골짜기로 흩어졌다. 아뿔싸, 모두들 소를 찾아 고삐를 붙들고 집으로 내려가는데 아무리 헤매도 우리 송아지는 찾을 수가 없지 않은가. 축 처진 어미소의 꼬리를 따라 힘없이 처진 어깨로 동네로 돌아오니 어른들이 말씀하셨다..
또 한 끼니를 때운다. 새싹에 초고추장을 끼얹은 비빔밥이거나 ‘틉틉한’ 고깃국물에 양념장을 푼 설렁탕 혹은 가정식 백반. 오늘은 청국장이다. 점심 메뉴가 매일 달라도 마무리는 늘 같다. 이쑤시개로 입안에 남은 음식을 마저 먹는 것. 주말이면 먼 산에 가서 목을 길게 빼고 나무의 신분을 알아내려 한다. 가지 끝에 정보가 많이 숨어 있는 법이다. 그 버릇은 묘한 중독성이 있다. 서울에 와서도 버릴 수가 없다. 본래를 잃고 날카로움만 남은 채 플라스틱통에 쑤셔 박힌 이쑤시개의 고향이 문득 궁금해졌다. 이것은 무슨 나무였을까. 작년 가을 가야산 소리길을 걸어 해인사에 도착했다. 대장경세계문화축전 중 장경각을 개방했다는 기회를 놓칠 수가 없었다. 후박나무로 만들었다는 대장경판을 눈으로 쓰다듬듯 오래오래 바라보았다..
꽃망울을 터뜨리는 백목련. 담장을 기웃거리는 매화. 동백은 벌써 지는가. 담 아래 떨어진 통꽃이 즐비했다. 속절없이 이어지는 남도의 마을 풍경. 완도대교를 지나 왼편의 납대대한 곳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동네 입구의 길가에서 범상치 않은 간판을 보았다. 시동을 끄고 내리니 양지 끝에 자리 잡은 교인리 마을이 한눈에 들어왔다. 스님이 누워 잠든 모습을 닮았다는 숙승봉(宿僧峰). 그 작은 산 아래 양지바른 곳이었다. 지금 나는 완도식물조사단의 일원으로 어제는 완도의 최고봉인 상황봉에 올랐고 오늘은 산자락의 식생을 살펴보는 중이다. 남도 끝의 섬이라지만 맵싸한 추위가 발톱을 숨기고 있어 야생화는 아직 더딘 걸음이었다. 울타리처럼 마을 수로가 돌아나가고 그 곁으로 꽃들이 총기있게 피어났다. 발끝에 차이는 ..
요즘 지리산은 봄철 산불조심 기간이어서 통제구간이 많다. 피아골 농평마을에서 출발해 황장산을 거쳐 쌍계사 근처 모암마을로 내려오는 길을 걸었다. 황장산은 말하자면 지리산의 발치쯤에 자리한 산이다. 인위적으로 구분한 국립공원에 속하지는 않지만 엄연히 ‘지리 대가족’의 일원이다. 3월 중순임에도 산에는 눈이 두툼하게 쌓여 있었다. 밑에서 보면 적설이 상당한 곳도 막상 올라보면 눈은 관목의 하부를 붙들고 겨울의 패잔병처럼 웅크리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나 이곳의 눈은 아직도 발목까지 푹푹 빠질 정도였다. 지리산 자락이라 획기적인 야생화를 볼 수도 있겠다는 기대는 당재를 지나면서 접었다. 높은 나무에서 녹는 눈이 눈을 때려 눈밭이 곰보처럼 움푹움푹한 사이로 작은 발자국이 보이기도 했다. 요란한 등산화 자국..
요즘 밥상에서 젓가락으로 반찬을 건져 올리다가 봄나물 하나 없다는 사실을 문득 알아채고 부엌으로 눈을 슬쩍 흘기기도 하겠다. 계절이 계절이니만큼 두툼한 옷을 벗어던지고 겨우내 텁텁했던 입맛을 갱신하며 봄을 맞이하려는 정당한 투정으로 이해해 줄 법도 하다. 어디 봄나물이 대수랴. 밥상보다 아주 넓게 들판으로, 그 들판보다 조금 높게 야산으로 시선을 옮기면 바야흐로 벌어지는 꽃들의 잔치판. 그중에서도 봄의 교향악을 울리듯 먼저 피는 꽃들이 있다. 그리 멀리 갈 것도 없이 안양의 수리산에서 변산바람꽃을 보았다. 희끗희끗한 잔설 틈에서 꽃샘추위를 이기며 바람에 맞서며 피어나는 꽃이다. 중지(中指)로 키를 가늠하면 내 손가락 사이 골짜기에 닿을락말락. 그 작은 꽃 앞에 엎드리는데 스웨덴 생각이 났다. 사연이 있다..
예전 북한산 갈 때 구기동에서 올라 백운봉 찍고 우이동으로 하산하는 날도 있었다. 도떼기시장처럼 왁자지껄한 식당 한구석에 자리 잡으면 찌그러진 주전자에서 콸콸콸 쏟아져나오는 막걸리. 방앗간을 그냥 못 지나치는 참새처럼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모인 쨍한 자리에서 그 한 사발을 생략할 순 없었다. 산중에선 발을 사용하느라 제법 홀쪽해졌지만 시내에선 젓가락을 분주히 놀리느라 또 띵띵해졌다. 무릇 등산이란 산으로 상승할 때도 좋지만 집으로 미끄러져들 때는 더욱 좋은 법 아닌가. 은근한 취기와 종아리의 뻐근함에 취한 채 까딱까딱 졸면서 버스에 실려갔다. 그렇게 불콰한 기운으로 단풍잎 같은 얼굴을 달고 귀가하면서 문득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오늘 하루 밟은 북한산의 능선이 귀에 걸렸다. 이런저런 등산객들을 배출하고..
바닥에 납작하게 붙은 족도리풀, 양지꽃을 찍고 후다닥 일행의 뒤를 쫓아가는 길이었다. 누군가 길가에 바짝 가까이 있는 나무를 가리켰다. 가는 줄기가 몇 개 모인 내 키만 한 나무였다. 우와, 길마가지잖아! 이름을 안다고 나무를 다 아는 건 아닐 테지만 그래도 나무 공부할 때 이름으로 알아차려야 하는 건 기본이다. 쭈글쭈글해진 나무껍질처럼 내 머리의 주름도 그리 변했는가. 그게 잘 외워지지가 않는다. 그런데 이상했다. 길마가지. 그 이름을 처음으로 들으매 가슴속을 휙 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꽃향기가 너무 강해 지나가는 길손의 발길을 막아선다 하여 길마가지라 했다는 나무. 그 이후 여러 차례 길마가지를 보았다. 만날 땐 언제나 길가였고 홀로 외로이 서 있었다. 압도적인 나무들 옆에서 그저 있으나마나한 존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