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수피, 줄기는 물론 전체적인 수형에 기품이 있는 나무. 유서 깊은 서원이나 사찰의 고졸한 풍경을 완성하는 나무. 배롱나무다. 그 많은 나무들 중에서 나에게 특히 감명 깊은 것은 따로 있다. 몇 해 전. 지리산에 가자고 마음을 모처럼 모았는데 태풍 무이파가 남부 지역을 강타했다. 지리산 출입이 금지되었다는 뉴스를 들었지만 종주가 아니면 원주(圓走)라도 하자고 집을 떠나 주천~운봉~인월의 둘레길을 걸었다. 판소리 동편제의 가왕(歌王) 송흥록의 비전마을 생가. 흥(興)인가 한(恨)인가. 구성지게 흘러나오는 명창의 가락을 떠받들어 가지마다 실어 나르듯 흐느끼며 흔들리는 나무가 있었다. 배롱나무였다. 지난주 동북아식물연구소(소장 현진오)가 주관하는 희귀특산 식물 조사의 말석에 끼어 내장산에 들렀다. 연자봉에..
한라산 꽃산행. 멸종위기종으로 지정되어 함부로 접근하지 못하는 정상 부근의 귀한 꽃들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깔끔좁쌀풀을 보지 못한 것이 두고두고 아쉬웠다. 인솔자에 따르면 몇 해 전만 하더라도 윗세오름 대피소에서 조금만 더 오르면 등산로에서 흔히 발견되었다고 했다. 풍광을 좇아다니는 나 같은 자들의 둔탁한 등산화와 날카로운 지팡이에 쫓겨 터전을 잃은 듯했다. 깔끔좁쌀풀. 대체 어떤 용모를 지녔기에 이런 똑떨어지는 이름을 얻었을까. 아쉬운 마음을 잔뜩 짊어지고 산을 내려와 바닷가로 갔다. 제주시 한경면 신창리 해변. 뭍과 바다가 치열하게 다투는 이곳은 햇빛과 물이야 노다지이지만 식물이 살기에 녹록지 않은 환경이다. 사나운 바람과 거친 물보라를 이기며 악착같이 뻗어가는 덩굴성 식물들이 주로 살고 있었다. 제주..
광화문광장은 거대한 용광로 같았다. 인왕산을 바라보면서 깊게 끓는 그 속을 가로질러 걸었다. 횡단보도 중간에 서명대가 있고 그 뒤로 곡기를 끊은 채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분들, 그들을 응원하는 분들이 함께 있었다. 유례를 찾기 힘든 엄청난 참사에도 책임 있는 자들은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무참하게 바다에 침몰한 세월호를 따라 가랑잎 같은 돛단배들이 지금 광화문 바닥에서 가라앉는 중. 그 와중에 멀리 십자가가 보였다. 낮은 곳으로 임하시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직접 주재하는 시복식의 제단에 우뚝 솟은 큰 십자가. ‘차라리 한 채의 소슬한 종교’(서정주)라고도 하였지만 광화문은 말 그대로 하나의 문(門)이다. 출퇴근길에 혹은 저마다의 약속에 바쁜 걸음으로 빠져나가기도 하지만 이 문으로 수많은 사연들이 흘러오고..
정금, 나직이 불러보면 시골 초등학교 동창생 가시내 이름 같기도 하고 다시 정금, 중얼거리면 입에 침이 가득 고인다. 박수근 그림의 바탕이 되는 회백색의 질감은 우리나라 어디에서나 흔한 무른 바위의 거친 표면을 아주 닮았다. 어릴 적 고향 뒷동산에서 뛰놀 때 부드럽게 휘어진 능선을 돌아들면 굵은 소금 같은 알갱이로 부서지는 다정한 바위들. 그 가까이에 주로 자라는 나무가 있었다. 정금나무였다. 소 먹이러 갔을 때 후두둑 깜보랏빛으로 익은 열매는 늘 우리들 차지. 정금나무의 키는 내 머리통에 수박 하나를 얹은 것과 어금버금해서 겨드랑이에서 팔을 쭉 빼면 딱 따먹기 좋은 위치였다. 어느 땐 익기를 기다리지 못해 초록의 띵띵한 열매를 훑기도 했다. 깨물면 퍼지는 시금털털한 맛도 얼굴 한번 찡그리고 나면 뒷맛이..
권위 있는 연구자에 따르면 김수영 시인은 자유가 아니라 꽃의 시인이라고 해야 마땅하다고 한다. 시인이 남긴 작품을 조사해 보면 꽃이란 시어를 무려 127회나 부렸다는 것. ‘꽃’ 하나로 ‘꽃의 시인’의 지위를 누렸던 김춘수 시인이 듣는다면 뭐라고 하실까. 이제 시의 업(業)에서 홀가분하게 벗어나 고인(故人)의 반열에 드신 분들이니 그게 무슨 대수랴 싶기도 하다. 꽃이 홀연 자취를 감춘 계절. 가로수 줄기 끝에선 꽃잎 대신 매미소리가 펄, 펄, 펄 떨어져 내린다. 시인들은 이 수상한 시절을 어찌 견디고 있을까 궁금해졌다. 여름에 발표하는 시를 살피면 그 속내의 한 자락이라도 혹 알 수 있지 않을까. 종로도서관에서 계간지를 일별해 보았다. 내 수준을 함부로 벗어날 순 없고 그저 작품 속의 구체적인 나무나 꽃..
어릴 적 기억을 뒤적이면 그 내용을 다 발굴할 순 없어도 희미한 얼개는 간신히 수습할 수 있다. 바다로 나간 뒤 돌아와야 할 이를 기다리고 기다리다 주인공은 죽고, 그 자리에서 자라나 붉은 꽃을 피웠다는 전설 속의 나무. 이미자의 노래보다 먼저 동화에서 그 나무를 알았다. 휴일이 없는 달력이라면 누가 가까이 걸어놓겠는가. 하루가 짬뽕 국물처럼 빨갛게 표시된 날이면 짬을 내어 야외로 간다. 지난주 강원도 양양의 어느 석호(潟湖)에서 사초과 식물을 관찰했다. 화려하지도, 드러나지도 않으면서 지표의 한 면을 담당하는 흔한 풀들. 세상의 마무리가 이리도 오밀조밀하고 정교하다. 큰고랭이, 민하늘지기, 진퍼리사초, 병아리방동사니, 세대가리, 통보리사초 등등. 부르기도 힘들지만 구별하기는 더욱 힘든 사초과 식물들 사..
사무실 근처의 통인동 재래시장에 즐비한 좌판들. 요즘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옹기종기 담겨 있는 여름 과일이다. 살구, 복숭아, 자두, 포도. 플라스틱 바구니에 담긴 녀석들은 얼굴이 서로 닮았다. 토마토는 비닐하우스에서 살다가 비닐에 포장되어 여기까지 왔다. 울긋불긋한 것들 중에서 내가 오늘 특별히 찾는 건 알알이 빨간 딸기였다. 딸기는요? 물었더니 제철이 지나 출하가 안된다는 대답. 없는 딸기에 더욱 군침이 돌면서 생각은 곧장 경북 상주의 황금산으로 날아갔다. 굽이굽이 흐르는 낙동강과 푸른 들판을 마주한 산. 바람이 강의 습기를 배달해주는 덕분일까. 황금산에는 귀한 식물들이 많다고 했다. 임도를 따라 오르는데 길섶으로 산딸기가 주렁주렁 달렸다. 훅훅 볶아대는 땡볕 아래에서 만난 공중의 오아시스. 뱀딸기..
너구리가 다녀갔다. 너구리 다음은 더우리. 어느 신문의 날씨와 관련한 재치 있는 기사 제목에 외려 마음속 더위가 쪼끔 꺾이는 것도 같다. 너구리 꼬리를 붙들고 뒤따라온 건 폭염만이 아니었다. 모처럼 일요일에 한가히 뒹구는데 창문 너머로 들려오는 게 있었다. 올해 처음 듣는 매미 소리가 아닌가. 매미가 가만히 기다리고 있다가 특별히 나의 사정을 살핀 뒤 우는 건 아닐 테다. 귓구멍으로 지푸라기처럼 쏟아지는 무수한 말과 소리 중에서 그 가느다란 가락을 이제야 비로소 내가 잡아챘다는 얘기. 자글자글 우는 매미의 꽁무니를 붙들고 따라오는 기억이 있다. 일 년 전 이맘때의 일이라서 정확하게 생각난다. 강원도 영월군 중동면의 녹전중학교. 운교산으로 통하는 학교 뒷산은 그야말로 깔딱고개였다. 가볍게 생각했다가 큰 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