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장집 | 고려대 명예교수·경향시민대학장 대통령 임기 말이 되면 정치권 어디에선가 헌법 개정 논의가 제기되고는 한다. 거기에는 두 방향에서의 동인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나는 헌법을 바꾸면 정치가 지금보다 훨씬 좋아질 것이라는 가정, 말하자면 헌법을 바로세우는 것이 정치를 바로잡을 수 있는 방법이라고 이해하는 법적·제도적 접근이랄까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개헌 논의라는 것이 대개는 기존의 권력 관계를 흔들어 뭔가 자신에게 유리한 정치적 자원이나 전략적 지위를 확보하고자 하는 단기적인 동기에서 비롯된다는 점이다. 그러다보니 초점은 언제나 대통령 임기를 늘리는 문제 아니면 대통령제냐 내각제냐 하는 권력 관계에 맞춰져 있다. 그것은 민주주의의 법적 근간으로서 헌법을 이해하는 방법이 극히 협애하다는 것을 ..
최장집 | 경향시민대학장·고려대 명예교수 지금의 민주당에는 두 개의 진보 노선이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나가 ‘민주 대 반민주’의 싸움에서 승리해야 한다는 ‘진영 간 대립의 노선’이라면 다른 하나는 어떤 정부를 만들 것인지를 준비하는 ‘대안 정부 노선’이라 할 수 있다. ‘민주 대 반민주’라는 진영 간 대립노선은 반권위주의, 반부패, 반권력과 같이 도덕적 가치나 이념적 담론에 기초를 두고 있다. 이상주의적 열정과 정조를 불러일으키고 ‘운동의 정치’를 되살리고자 하는 경향도 강한데, 그러다보니 이 노선은 자주 반정치의 태도와 정조를 동반한다. 또한 반엠비, 반박근혜, 반새누리당의 슬로건이 말하듯 적대적 대립의 축 내지 두 블록 간의 전선을 상정한다. 격렬한 언사를 동원해 상대를 공격하고 사람들을 흥분시..
최장집 | 경향시민대학 학장·고려대 명예교수 지난 칼럼(5월22일자 31면)에서 만났던 신용불량자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구로구 궁동의 박영신씨(가명)는 현재 다섯 식구를 위한 최소한의 생계비 월 150만원의 절반인 70만~80만원의 수입으로 절대적인 마이너스 생활을 하고 있다. 그런데도 기초생활보장 혜택을 받지 못하고,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증후군을 갖고 있는 큰아이로 인해 월 15만원의 장애수당만 받는다. 지난 총선 때는 선거운동 일을 봤고, 지금은 식당에서 일하는 등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나 파트타임 노동을 하며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녀는 왜 수입이 더 나은 일자리를 찾지 않을까. 신용불량자라는 전력이 있기에 점포의 계산대나 콜센터 서비스와 같이 돈·신용과 관계된 일자리를 가질..
최장집 | 고려대 명예교수 외국인노동자 문제는 우리 사회 모든 영역에서 다양한 형태로 일상 속 깊숙이 들어온 지 오래다. 공식통계만 보더라도 중국동포 47만명을 포함해 외국인체류자 142만, 장기체류자 100만, 외국인노동자 55만명에 이른다. 그 규모는 계속, 크게 늘고 있다. 그런데도 이 문제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많지 않은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외국인과의 결혼이 증가함에 따라 ‘다문화주의’ 담론이 넘쳐나는 것과는 너무 대조적이다. 외국인노동자 문제의 실상은 어떠한가? 그들은 무엇을 원하고, 우리는 무엇을 생각해봐야 할까? 이런 질문을 가지고 내가 처음 찾아간 곳은, 경기도 광주시 초월읍 용수리에 있는 한 비닐하우스 농장이었다. 로즈마리, 제라늄, 페퍼민트 등 300여종의 허브식물을 재배..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경향시민대학 학장 총선을 앞둔 지금, 필자는 두 가지 의문을 갖는다. 하나는 복지나 재벌개혁과는 달리 비정규직 문제는 왜 중대 쟁점이 되지 않는가 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젊은 세대의 노동문제는 누가 대표하는가 하는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최근 나는 하급 서비스직 부문에서 시급으로 일한 경험이 있는 ‘청년유니온’ 조합원들과 인터뷰를 가졌다. 이종필씨는 피자 배달 일을 했다. 유사 업종에 비해 상대적으로 임금은 높았지만 오토바이 사고 위험이 컸다. 그는 대학 시절 학생운동을 했고, 청년유니온 1기 조직팀장을 지냈다. 서유란씨는 해외 일자리를 찾기 위해 네일아트 기술을 배울 학원비를 충당하고자 대형마트 안에 있는 베이커리에서 일을 하는 시급 노동자였다. 이번에 ..
최장집 | 고려대 명예교수 오늘의 농업·농민 문제를 생각하면 ‘극측반’(極則反)이라는 노자의 말이 떠오른다. 극에 다다라 반전될 수밖에 없다는 뜻처럼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는 느낌 때문이다. 농업은 경제의 성공신화를 주도했던 제조업과 지식정보산업의 눈부신 발전과 정확히 반비례하면서 퇴행해왔다. 급속한 고령화와 인구감소, 농가부채 증가, 생산비중 축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낮은 식량자급률 등의 통계를 말하지 않더라도 상황이 얼마나 나쁜지는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다. 농촌이 이토록 피폐화된 사회가 과연 좋은 사회일 수 있을까? 농업의 붕괴 위에서 산업 발전이 지속가능할 수 있을까? 결코 그럴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농촌의 피폐와 농업의 붕괴는 방치되어 왔을까? 농민들의 요구..
최장집 | 고려대 명예교수 재벌대기업의 2세, 3세들이 제빵제과점, 커피숍, 순대사업을 비롯해 분식, 떡볶이에 이르기까지 돈 되는 데마다 무차별 진출하여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었다. 이마트, 홈플러스, 롯데마트, 농협유통 등과 같은 대형 유통업체들이 재래시장을 밀어내면서 보통사람들의 삶의 터전을 송두리째 해체하는 일 또한 더 널리, 더 공격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우리에게 자유롭고 인간적인 경제생활의 공간은 얼마나 남아 있는가. 일본 도쿄를 방문할 때면 나는 어떤 특별한 느낌을 갖곤 한다. 골목 상권이 살아있고 이웃과 더불어 경제생활을 하는 공간이 있어서다. 그런 경제공간이 유지될 수 있는 것은 도시의 주거환경 자체가 우리와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큰 규모의 현대적 건물과 작은 옛 건물들이 공존하고, 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