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결정이 임박했다. 8명의 헌법재판관들에게 대한민국의 운명이 맡겨진 느낌이다. 헌법재판관들의 평소 성향이 어떻든 간에,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은 인용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금까지 밝혀진 사실만 보더라도 탄핵은 열 번 인용되어도 지나치지 않다. 국회 소추위원단이 최종변론에서 얘기한 것처럼, 박근혜 대통령은 헌법과 법률을 광범위하게, 그리고 중대하게 위반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과정을 보면서, 대통령을 탄핵시키는 시스템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갖게 된다. ‘왜 탄핵 여부에 대한 결정을 헌법재판소에 맡길 수밖에 없는라?’라는 것이다. 대통령을 국민들이 뽑았다면, 파면시킬지 여부도 국민들이 결정하는 것이 원칙일 것이다. 오스트리아 헌법의 경우에는, 연방 하원에서 대통령을 해임시키자는 발의안이 통과되면..
2012년 12월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는 천막들이 들어서 있었다.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복직, 용산참사 진상규명,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 원전과 송전탑 건설 반대를 외치던 사람들이 친 천막들이었다. 이 천막들을 친 사람들은 정말 다른 방법이 없었다. 이명박 정권 5년 동안 밀려나고 쫓겨난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선택한 방법이 천막농성이었다. 대통령 선거가 임박하면서 천막 안에서도 대선에 대한 얘기들이 떠돌아다녔다. 정권교체가 된들 크게 달라지겠느냐는 의견도 있었지만, 그래도 정권교체가 되어야 한다는 의견들도 많았다. 그래서 박근혜 후보에게 밀리던 문재인 후보가 막판에 역전했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화젯거리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결과는 박근혜 당선이었다. 정권교체 실패로 인한 후폭풍은 천막들로 밀려 ..
12월24일 크리스마스이브에 경남 창원에서 열린 촛불집회 연단에 24세 청년이 올라왔다. 유튜브를 통해 본 영상에서, 그는 20세에 취직해 4년째 최저임금을 받고 있는 전기공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했다. 세금 떼고 나면 손에 쥐는 월급이 120만원인데, 방세와 교통비, 식비, 공과금을 내고 나면 저축을 할 돈이 남지 않는다고 했다. 좋아하는 사람이 있지만, 지금의 월급으로는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린다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다고 했다. 그는 궁금해서 촛불집회에 나왔다고 말했다. 그는 박근혜 퇴진 이후에 자기 삶이 나아질 수 있는지가 궁금하다고 했다. 1987년에도 시민들이 거리로 나왔고, 그다음에 노동자들이 대투쟁을 해서 임금도 오르고 삶이 나아졌다고 알고 있는데, 이번에도 그렇게 될 수 있는 건지 궁금하다고..
촛불혁명, 시민혁명이라고 한다. 그러나 혁명은 체제(시스템)의 교체를 의미한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결의안이 통과되었지만, 아직 탄핵이 된 것도 아니고 박근혜·최순실을 만든 시스템도 여전히 그대로다. 그래서 샴페인을 터뜨리기에는 너무 빠르다. 아직은 혁명이 아니다. 물론 탄핵소추가 성사된 것은 시민의 승리이다. 그러나 지금의 승리는 견고하지 못하다. 현재 상황을 냉정하게 평가하자면 시스템의 교체는커녕 정권교체도 이루지 못할 수 있는 상황이다. 그래서 1987년으로부터 교훈을 얻을 필요가 있다. 87년 6월 100만명이 거리에서 최루탄과 맞서서 ‘독재타도 민주쟁취’를 외쳤다. 그러나 대통령 직선제를 받아들이겠다는 6·29선언이 나온 후에 상황이 급반전했다. 여당과 야당은 자기들끼리 모여서 ‘8인회의’라는..
박근혜 대통령이 스스로 물러날 뜻이 없다는 것은 분명해졌다. 그러나 검찰이 수사한 결과만 보더라도 박 대통령은 제3자 뇌물죄 등을 저지르고, 국정을 파탄으로 이끈 몸통이라는 것이 명백해졌다. 스스로 물러나지 않겠다면 헌법이 정한 절차에 따라 물러나게 해야 한다. 이것은 특별검사가 진행해야 할 수사와는 별개의 문제이다. 원내 야당이 해야 할 몫과 광장의 촛불이 해야 할 몫도 명확하게 구분되어야 한다. 그래야 박 대통령이 ‘국정복귀’ 운운하는 행태를 막을 수 있고,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공동체를 지킬 수 있다. 원내 야당은 탄핵 절차에 집중해야 한다. 지금처럼 우왕좌왕하는 모습이 계속되어서는 안된다. 야 3당 대표들이 모여서 범국민 서명운동을 결의했다고 하는데, 자기 역할을 못 찾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 국회 ..
대한민국 헌법 제1조 제1항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고 되어 있다. 1948년 헌법이 제정될 때부터 이 조항은 있었다. 그러나 1968년에 태어난 나는 과연 민주공화국에서 살고 있었나? 최근 최순실·박근혜의 민주주의 유린 사태를 보며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내가 태어나서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는 박정희, 전두환으로 이어지는 군사독재자가 집권하고 있었다. 20살이 될 때까지 나는 자유의 공기를 맡지 못했다. 대학 1학년 때 6월 민주항쟁이 일어났고, 그 결과 변화가 일어날 것 같았다. 그러나 1987년 12월 전두환의 친구였던 노태우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당시 노태우의 득표율은 36.6%에 불과했다. 그런데 100%의 권력을 차지했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었다. 당시 야당과 민주화운동 세력은 대..
캐나다의 현 총리인 ‘저스틴 트뤼도’ 같은 사람이 한국에도 필요하다. 그의 젊은 나이나 잘생긴 외모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의 과감한 정치개혁 의지를 얘기하는 것이다. 트뤼도는 아버지가 총리를 지낸 ‘금수저’ 출신이지만, ‘부자증세’를 내걸고 2015년 캐나다 총선에서 정권교체를 이뤄냈다. 그가 속한 자유당은 39.5%를 득표했지만, 캐나다의 소선거구제 선거방식 덕분에 54%의 의석을 차지했다. 캐나다의 선거제도는 비례대표가 전혀 없고, 100% 지역구 선거로 국회의원을 뽑는 방식이다. ‘단순다수 소선거구제’ 방식이어서 득표율에 관계없이 1등을 하면 무조건 당선된다. 이런 선거제도 덕분에 트뤼도는 39% 득표로 과반수를 차지해 100%의 권력을 획득했다. 그런데 트뤼도는 이런 캐나다의 선거제도를 전면 ..
현재 한국의 정치인들을 분류한다면, ‘반인권’, ‘비겁’, ‘용기’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바로 성소수자 인권에 관한 얘기다. 세계적으로는 성소수자의 인권을 옹호하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동성결혼 또는 그에 준하는 시민결합(civil union)을 인정한 국가의 숫자가 35개국을 넘어서고 있다. 이른바 ‘선진국’이라고 하는 나라들은 대부분 인정하고 있는 추세이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경우 동성결혼 법제화는커녕 차별금지법 제정조차도 막혀 있다. 바로 ‘혐오’와 ‘비겁’의 정치 때문이다. 김무성, 박영선 같은 유력 정치인들은 지난 4·13 총선 당시 성소수자에 대해 노골적인 혐오발언을 해서 물의를 일으켰다. 혐오발언을 하지 않더라도 비겁하기 짝이 없는 행태를 보인 정치인들도 많았다. 19대 국회에서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