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의 이 칼럼에서 나는 중대한 실수를 저질렀다. 나는 내 스승이 한·일 혼혈이라고 말했는데, 그게 사실이 아닌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선생이 소년기를 일본인 의모 아래서 보냈던 사실을 다른 제자들과 마찬가지로 나도 잘못 이해하여 혼혈로 생각해 왔던 것이다. 이 오해는 두 문화를 아우르는 선생의 철저한 지식에서도 어느 정도는 연유했다. 한·일의 문화적 정수를 매우 깊은 자리에서 이해하고 있었던 선생은 일본의 문화적 근간에서 늘 한국적 뿌리를 발견하고, 현대 한국의 문화적 외피에서 자주 일본적 형식을 간파하곤 했다. 그러나 그 이야기를 입 밖에 내는 일은 드물었다. 당신 자신은 그 이야기가 정교하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선생은 논리와 표현에서 한 오라기의 실만 빠져도 거기에서 오는 마음의 짐을 쉽게..
내 스승은 거의 일본인이나 같았다. 일본에서 제주도 출신 한국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성장하고 일본에서 교육을 받았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일본에서 교수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국적을 바꿔야 했기 때문에 한국으로 들어왔다. 한국어도 그때부터 배우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10년쯤 살고난 후 한국어를 능숙하게 사용하고, 가장 고급한 한국어로 글을 쓸 수 있게 되었지만, 일기는 여전히 일본어로 썼다. 당신이 타계한 후 장서를 정리하다 발견한 길고 짧은 메모들도 모두 일본어였다. 스승이 지닌 지식의 깊이와 절차탁마의 수행력은 범인이 흉내내기 어려웠다. 교실 밖에서건 안에서건 공부와 관련되지 않은 이야기는 한번도 한 적이 없었다. 세상을 떠나기 일주일 전까지, 하루에 열 시간 이상을 책상 앞에..
자기 자신을 “생산성 낮은 만화가”라고 소개한 최규석씨가 1985년에 제작된 가족계획협회의 광고를 찾아내어 트위터에 올렸다. “셋부터는 부끄럽습니다”라는 제목을 단 이 광고는 형제 많은 집안의 자식들이 학교에서 수모를 당하는 내용을 한 컷짜리 만화로 전한다. “형제가 몇이냐”는 교사의 질문을 받고 손가락 하나 또는 둘을 내민 급우들 곁에서 손가락 셋을 내민 한 학생은 부끄러움에 얼굴을 들지 못한다. 정부가 국민을 그런 식으로 “협박했던 그 때나, 외동은 성격이 더러울 것이라고 협박하는 지금이나 국민을 대하는 방식은 동일”이라고 최규석씨는 이 광고 만화에 짧은 논평을 했다. 사실상 산아제한정책과 다르지 않았던 그 시대의 가족계획정책과 관련해서 내게도 몇 가지 기억이 남아 있다. 한 텔레비전 방송의 낱말 맞..
새해는 푸른 양의 해라는데, 그런 양을 머릿속에 떠올리는 일이 쉽지는 않다. 지지의 열두 동물을 늘어놓고 보면, 푸른 용이나 푸른 뱀은 말할 것도 없고, 푸른 닭이나 푸른 원숭이도 상상이 가능하다. 천지가 개벽할 때 닭이 울었다면 푸른 닭이 제격일 것 같고 원숭이는 그 간교함이 푸른빛을 띠기도 할 것이다. 하늘나라의 견우가 끄는 암소는 푸른빛이 짙어져서 검다고 말할 수 있고, 달나라의 옥토끼도 푸른빛이 은은할 터이다. 우리가 푸른 양을 상상하기 어려운 것은 양이 우리의 신화나 전설 속에 등장한 적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니 신화를 들먹일 것도 없이, 아마도 한국전쟁 전까지는 우리의 삶에 양이란 동물이 없었다. 전쟁 후에 ‘백양’이라는 담배가 있었다. 양이 없던 나라의 담배에 그런 이름이 가능했던 것은..
“일천칠백도 남쪽 바다 달무리만 고요한데”라는 말로 시작하는 노래가 있다. 초등학교를 들어갈 무렵 옆집 누나의 노래를 들으며 따라 불렀다. “일천칠백도”가 무슨 뜻인지는 물론 몰랐다. 나이가 들고 한자와 한자어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나는 그것이 ‘일엽편주의’가 와전된 말일 것이라고 지레짐작했다. 그것이 실은 ‘1700개의 섬’이란 뜻이며 그 노래가 진방남이 부른 ‘명사백리’라는 것을 알려준 것은 문화평론가 이영미씨이다. 노래로 불러야 할 서정과는 아무 관계가 없을 것 같은 숫자도 그것이 섬의 수와 연결될 때는 시적 환기력을 지닌다. 캐나다와 미국 사이 세인트로렌스 강과 온타리오 호수가 만나는 지역의 1860여개 섬을 가리키는 ‘사우전드 아일랜드’는 샐러드드레싱의 이름으로도 사용된다. 사람들은 세상살이의 번..
우리 세대의 인문학 연구자들이 처음 대학 강단에 설 때, 선배 교수들은 3년에 논문 한 편씩을 쓰면 학자로서 성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 해는 주제를 설정하여 자료를 모으고, 한 해는 논문을 구상하여 얼개를 짜고, 마지막 해는 논문을 집필한다는 것이다. 시간이 매우 넉넉했을 것 같지만 그때에도 논문 쓰는 사람들은 크게 압박을 받았다. 진지한 연구자들은 지금 자신이 쓰고 있는 논문에 자신의 미래가 걸려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추구하는 학문의 방향이 결정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세상은 이 넉넉한 시간을 용서하지 않았다. 언론사의 대학평가가 시작되면서 학교는 교수들에게 1년에 최소한 논문 한 편씩을 쓰라고 독려했다. 특히 IMF 사태 이후에는 ‘교수 철밥통론’이 나오기 시작했다. 존경 받는 교수 같은 것이 ..
제 나라 글자와 말을 기리고 가꾸기 위해 기념일을 제정한 국가는 많지 않을 것이다. 한국이 한글날을 만들어 그날 하루만이라도 나라의 언어생활에 특별한 관심을 나타내는 것은 우선 한글이 오래오래 기림을 받아야 할 우수한 문자이기 때문이지만, 제 나라의 말과 글을 마음 놓고 쓰지 못했던 한 시기와 관련된 역사적 한에도 그 이유가 있을 듯하다. 한글날을 맞으면 사람들은 외래어의 범람이나 언어의 왜곡된 사용을 염려한다. 신문과 방송이 가끔 한글을 발전시킨 인물들에 관한 특집기사를 준비하기도 하더니, 요즘은 외국인들을 불러 한글을 예찬하게 하는 것이 유행이다. 그러나 관심은 그 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국가나 민간에서 한국어의 발전을 위해 대대적인 사업을 기획했던 적은 없는 것 같다. 내 관심도 그런 선에 ..
조제팽 술라리라는 프랑스 시인이 있었다. 19세기 중엽에 재기 있는 시들을 제법 많이 발표했지만 뒤이어 나온 보들레르, 말라르메 같은 거대한 이름에 묻혀버려 지금은 거의 잊힌 시인이다. 그의 고향인 리옹에 그의 이름을 붙인 거리가 하나 있고, 보들레르의 평문에 그의 이름이 한 번 등장해서 전문가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정도다. 그의 제목 없는 소네트에 이런 시구가 있다. “함께 자던 나비 날아가니, 혼자 자는 장미 끝에 폭풍 인다.” 한 사람이 떠난 후, 뒤에 남은 사람의 꿈이 어지럽다는 뜻을 비유하는 말이다. 그런데 한 세기도 더 후에 기상학자 로렌즈 같은 사람이 “브라질에서 나비 한 마리가 날갯짓을 해서 텍사스에 토네이도를 일으킬 수 있는가”라고 물으며, 하나의 원인이 하나의 결과를 초래하는 복잡한 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