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들은 가 손 가까이에 있다면, 이 책의 제6장을 열어보시라. 어린 왕자는 슬플 때 해가 저무는 풍경을 바라보며 그걸 유일한 위안으로 삼는다는 이야기를 읽을 수 있을 것이다. 그 장의 끝 부분에서 어린 왕자가 ‘어느 날은 마흔네 번이나 해넘이를 보았다’고 말하는 내용의 문장을 만날 텐데, 어떤 책에는 ‘마흔네 번’이 아니라 ‘마흔세 번’이라고 적혀 있을 것이다. 앞으로 좀 더 거슬러 와서 제4장을 펼치면, 터키의 어느 천문학자가 어린 왕자의 작은 별을 발견하게 된 과정이 서술되어 있다. 여기서 저자는 천문학자들의 관행에 대해 그들이 ‘작은 별을 하나 발견하면 이름 대신 번호를 붙여 주는데, 예를 들어 소행성 325라고 부른다’고 쓴다. 그런데 어떤 책은 ‘소행성 3251’이라고 적고 있을 것이다. 기왕..
는 1955년에 출시된 쥘리앙 뒤비비에 감독의 영화다. 원제(Marianne de ma jeunesse)를 그대로 번역했더라면 이 영화는 우리에게 ‘내 청춘의 마리안느’나 ‘내 젊은 날의 마리안느’ 정도의 말로 기억되었을 것이다. 저 ‘의역’에 관해 말한다면, 당시 조사 ‘의’의 용법이 오늘날처럼 다양하지 않았던 탓도 있겠으나 ‘의’로 연결된 두 명사보다 나란히 놓인 두 명사가 더 멋있어 보였던 시대적 감각의 힘도 크겠다. 그러나 ‘내 청춘’이 아닌 ‘나의 청춘’에는, 그때까지도 여전히 강력했을 일본어의 영향을 제쳐 둔다면, ‘마리안느’와 ‘청춘’ 사이의 생략된 ‘의’에 대한 아쉬움도 어느 정도 개입했을 듯싶다. 아무튼 이 영화는 내용보다 먼저 제목으로 이 땅의 청춘들을 오랫동안 설레게 했다. 내가 다닌..
한국과 일본이 월드컵을 공동개최했던 것이 2002년이었다. 그 해 6월 한 달 동안 붉은 옷을 입은 응원단이 거리를 뒤덮었다. 사람들은 모두 “아 대한민국”을 외쳤다. 사람들이 외친 것은 국호였지만, 그것이 어떤 국가주의의 표현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웠다. 거기에 배타적 감정 같은 것은 없었다. 이방인들을 차별하거나 폄하하려는 생각도 없었다. 한국 사람이 아닌 사람도 그 대열에 끼어들고 싶어 했으며, 그렇게 끼어든 사람을 막는 사람도 없었다. 거기에는 오직 대범하다고 말해야 할 ‘행복의 표현’이 있었다. 일상의 근심을 잠시 잊어버리고 인간관계의 속박에서 풀려난 사람들은 자기 안에서 해방된 생명력을 발견할 뿐만 아니라 서로서로 다른 사람 안에서도 억압을 이겨낸 생명력을 확인하고 그 개화를 축하했다. 사람들은 ..
추석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원칙적으로 말한다면, 추석에 고향을 찾는 것은 제사를 지내기 위해서다. 조상들이 찾아오는 날이 따로 있듯이 찾아오는 곳도 따로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추석처럼 특별한 날은 몸 둔 곳과 고향만 연결시키는 게 아니라 이 세상과 조금 다른 세상을 생각하게도 한다. 물론 요즘에는 그 다른 세상의 기운이 많이 엷어져서 고향의 부모가 타지에 사는 자식을 찾아와서 제사를 지내기도 한다. 제사에 귀신을 부르는 여러 절차와 함께 축문을 읽는 일도 생략하고 있을 것이다. 어렸을 때 왜 축문이 한문으로 되어 있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 그게 진짜 글이라서 그렇다고 어른들은 대답했다. 나는 어른들의 말을 믿었고,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었기에 진짜 말인 것처럼 생각되었다. 말과 관련된 일..
이미륵의 는 그 첫 대목에서 나라가 나라로서의 권리를 빼앗기던 시대의 슬픈 일화들을 열세 살 소년의 눈으로 전한다. 그 시대는 또한 학문의 패러다임이 결정적으로 바뀐 시대이기도 했다. 이미 과 와 을 읽은 어린 선비소년은 신식학교 2학년에 배정되어 서구의 지식을 배우기 시작한다. 삼각형 유리막대를 통과한 빛이 여러 색으로 나뉘는 그림, 구리그릇 2개를 진공 상태로 맞붙여놓고 네 마리 말이 양쪽에서 끌어당기는 그림을 그는 자연책에서 보지만 그 이치를 쉽게 이해하지 못한다. 소년보다 더 딱한 것은 그의 아버지다. 지방의 대학자였던 아버지는 그 원리를 아들에게 설명해주지 못하고, 오직 선생의 말을 더 찬찬히 들으라고 말할 수 있을 뿐이었다. 이 아버지에게는 평생을 두고 쌓아온 학식이 무용지물이 되려는 순간이었..
생텍쥐페리의 는 100개가 넘는 한국어 번역본이 있으며, 그 가운데는 내가 번역해서 출간한 책도 들어 있다. 길다고 할 수 없는 동화 한 편이 이만한 대중적 인기를 누리게 된 것은 무엇보다도 이제 어른이 되려는 청소년들에게 사랑에 대한 어떤 인식의 첫걸음을 이 책이 안내해 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저자가 ‘길들이다’라는 동사 하나를 걸어놓고 사랑을 설명하는 말은 명쾌하고 순결하지만 그 내용은 현대의 문화와 제도 전반에 대한 근본적인 반항을 사랑과 연결한다. 나는 최근에 한 출판사의 제안을 받아들여 예전에 번역했던 를 다시 번역하여 출판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하나의 문명을 누리면서 그 문명을 비판한다는 것이 어떻게 가능할지를 묻는 질문에 줄곧 사로잡혀 있었다. 어린 왕자는 지구에서 여우를 만났다. 세상의..
당나라 시인 송지문(宋之門)의 시 에는 “해마다 꽃은 그대로건만, 해마다 사람은 달라지네(年年歲歲花相似 歲歲年年人不同)”라는 유명한 시구가 들어 있다. 이 구절은 본디 송지문의 사위 유희이(劉希夷)의 소작이었으나, 장인이 사위를 죽이고 시구를 편취해 자기 시에 넣었다는 말이 있다. 디드로의 소설 에서, 18세기 프랑스의 유명한 작곡가 필립 라모의 조카인 건달 작곡가 프랑수아 라모는 자기 삼촌의 작품이 자기 작품이었더라면 자신을 둘러쌀 영광을 오랫동안 몽상한다. 그리고는 가끔 자기 삼촌이 미발표 작품을 한두 편이라도 남겨놓고 죽기를 바란다. 앞의 이야기는 믿기 어려운 야사이고, 뒤의 이야기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희화적 어조의 소설이지만, 두 이야기가 모두 창조의지와 표절의 욕망이 비극적이건 희극적이건 얼마..
어느 초등학생이 펴내려던 동시집에, 자기 어머니를 살해하고 그 시체를 먹겠다는 내용의 시가 들어 있어서,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식자들의 논란거리가 되었던 것이 얼마 전이다. 다시 거론하기에는 뒤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실은 이 사건이 알려진 직후 나는 트위터에 이와 관련해 일련의 작은 글을 올렸고, 그 가운데 하나가 이런저런 매체의 기사에 인용되기도 했다. 그러나 인용된 글이 내가 올린 글의 일부일 뿐이었기에 내가 말하려던 생각이 왜곡된 방식으로 전달되지 않을 수 없었다. 재주 많은 아이가 시적 재능이 번뜩이는 여러 편의 동시를 썼고, 아이의 부모와 출판사가 그것들을 묶어 출판을 꾀했으나, 저 ‘잔혹동시’가 야기한 사회적 물의를 이기지 못해 출간이 취소되기까지의 이 사건에는, 한 아이의 글쓰기와 그 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