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여운 모글리가 주인공인 을 쓴 러디어드 키플링은 제국주의자다. 대표작인 에 등장하는 인도 사람들은 유럽인들과 다른 열등한 종족일 뿐이다. ‘백인의 부담(The White Man’s Burden)’이라는 시에서 그는 “반쯤은 사악하고 반쯤은 어린애 같은” 식민지 사람들을 정복하고 교화하는 백인들을 찬양하고 있다(이 시는 필리핀의 독립운동을 탄압한 미국인들에게 영감을 얻어서 쓴 것인데 당시 필리핀인 25만명이 살해당했다). 키플링은 1907년 영국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대니얼 디포의 는 한술 더 뜬다. 무인도에 표류해서 28년간 살면서 그곳을 개척하고 원주민을 잡아 하인을 삼는 주인공은 사실 영국 제국주의 그 자체의 상징이다. 대영제국을 꿈꾸던 당대의 독자들이 열광한..
귀에 대해 궁리해본다. 신체발부 중에서 가장 상부에 속하는 귀는 어쩐지 내 것이 아닌 것 같다. 세수할 때도 그것만 쏙 빼놓고 씻지 않는가. 귀는 누가 몰래 내 생각을 한 삽 푹 뜬 뒤 자루만 달랑 빼들고 가버린 것 같기도 하다. 뜨거운 냄비를 들다 앗, 뜨거울 때 찾는 건 귀. 몸에서 손가락보다 더 먼 변방, 가장 추운 곳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장 노자나 공자를 생각하더라도 그렇게 소홀히 대접해야 할 귀가 아니다. 오대산 오르는 길. 우리 사는 세상 쪽으로 나와 궁금한 눈길로 두리번거리는 야생화들이 많다. 이맘때면 거의 모든 등산로에서 눈 밝은 이들의 발길을 붙드는 건 초롱꽃, 노루오줌. 이름이 좀 사나워도 서슴없이 얼굴을 들이대면 향기 혹은 털이 코를 찌른다. 어느 돌계단 옆에선 그 귀한 청닭의난초..
‘사법 자제’, 가수 조영남씨의 화투 그림 대작(代作) 사기 혐의에 대해 대법원이 무죄판결을 확정하면서 사용한 언어다. 사법통치(juristocracy)와 사법 과잉이 지적되고 있는 상황에 시의적절한 원칙 선언이자 경고의 메시지다. 앞으로 끼어야 할 데만 끼겠다는 사법부의 다짐으로 들린다. “미술 작품 거래에서 기망 여부를 판단할 때 위작 여부나 저작권에 대한 다툼이 있지 않은 한 가치 평가는 전문가의 의견을 존중하는 사법 자제 원칙을 지켜야 한다.” 이 원칙은 비단 예술이나 문학작품의 표절 시비, 친일 역사 논쟁 등에 한정되지 않아야 한다. 정치가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고 검찰과 사법의 손을 빌리는 형사사건에도 적용되어야 한다. 정치의 사법화에 던지는 경고장이어야 한다. 고소장을 들고 검찰청으로 달려가고..
한국의 방역은 분명히 성공적이었다. 거기에는 몇 가지 요인이 있었다. 진단키트의 선제적 개발, 보안카메라나 스마트폰을 이용한 철저한 추적 및 격리 시스템, 드라이브 스루와 같은 대량검사 체제, 정부와 지자체의 투명한 정보공개, 물리적(사회적) 거리 두기 등 시민사회의 적극적 협조 등. 이 모두가 지난 메르스 방역 실패에서 얻은 아픈 교훈 덕분일 것이다. 애초에 중국의 방역은 서구의 모델이 될 수 없었다. 서구는 중국의 공산주의적 방식보다는 한국의 자유주의적 방식을 선호했다. 각국 정상이 한국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와 방역의 노하우를 물었다. 세계 속에서 한국의 위상은 드높아졌다. 모범으로 알았던 서구의 나라들이 거꾸로 한국에서 배워간다는 사실에 한국인들은 열광할 수밖에 없었다. 나라는 세계를 정복한 듯한..
이렇게 시작하는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 전국에 수만명은 되겠지만, (1939)는 나의 어머니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다. 그 덕분에 나는 초등학생이던 때에 이미 ‘비비안 리’와 ‘클라크 게이블’을 정확하게 발음할 수 있었고(어쩌면 클라크 ‘케이블’이라고 발음했을지도 모른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뜰 테니까” 운운하는 대사를 외우기까지 했다. 어머니만큼은 아니겠지만 나에게도 이 영화는 아련한 향수의 대상이다. 고전 할리우드 영화를 볼 때 우리 모자(母子)는 언제나 백인이었다. 물론 이제는 안다. 내 또래의 어떤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이 영화는 나의 어머니가 가장 싫어한 영화였다’라고 말할 수도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워너미디어’의 스트리밍 서비스 ‘HBO 맥스’가 론칭되자 <노예..
평창의 발왕산은 만만한 산이 아니다. 희미한 등산로를 따라가는데 원시림을 방불케 하는 평전이 나온다. 걸음을 조절하여 일행과 뒤떨어져 혼자 있는 풍경을 만들어 본다. 어디선가 새 울음이 들리는 ‘옴방한’ 공간에 나를 밀어넣었다. 아무리 깊숙한 산중이라도 물리의 세계는 변함이 없다. 나무들은 크고 풀들은 작다. 이끼 덮인 돌에 내 그림자가 덮칠 땐 둘이 무슨 꿍꿍이라도 있는 듯 묘한 느낌을 연출하였다. 아연 숙연한 기분이 들 때 나는 문득 내 나이를 생각하였다. 이건 지난 주말 나에게 틀림없이 벌어진 일이었다. 일주일이 어지럽게 흐르고 오늘은 태양이 가장 높다는 하지. 이에 더하여 일식이 일어났다. 태양-달-지구가 나란히 배열하면서 달의 그림자가 지구에 생기고, 이 그림자 안에서 태양이 달에 가려져 보였다..
소년원은 감옥처럼 보안시설이다. 본래 기능은 보호지만 담벼락은 높다. 닫힌 공간이라 의심의 눈초리를 받기도 한다. 먹고 자는 것은 어떤지, 시설이나 운영은 어떻게 하는지 늘 궁금한 곳이기도 하다. 몇 년 전 들렀던 한 소년원은 엉망이었다. 사람 냄새라고 하기에는 무척 고약한 냄새가 났다. 겨울인데도 그랬다. 목욕, 세탁, 청소를 자주 하지 않은 탓이었다. 눈 내린 지 3주가 지났는데도 운동장에는 발자국 하나 없었다. 운동장은 운동하는 곳이 아니라, 그저 관상용이었다. 말로는 학교라면서 도서관조차 없었다. 복도 중간에 책장 몇 개 갖다 놓은 게 전부였다. 소년원에선 극구 부인했지만, 소년들에게서 구타의 흔적도 찾아볼 수 있었다. 오래된 건물, 널찍한 방에 10여명을 한꺼번에 가둬놓고 있었다. 엉망진창이었다..
앗, 쥐오줌이네! 앞장서 가던 일행이 한마디 던졌다. 등산지팡이 끝에 다소곳이 서 있던 꽃은 이제 막 피어나려는 쥐오줌풀이다. 나도 안다. 저 꽃의 활짝 피어난 아름다움을! 그런데 웬 오줌? 몸 안에서야 어디 나무랄 데 없이 훌륭한 성분이지만 몸 바깥에서야 어디 그런가. 우리나라 식물 이름에 참 사나운 게 많다. 그래도 저 정도면 얌전한 편에 속한다. 식물 이름 입에 넣고 중얼거리자고 했건만 여기에 열거하기가 좀 민망할 만큼 사나운 이름들. 말과 글을 독점하는 인간들의 횡포가 이리도 심하다.톨스토이의 는 원래 베토벤의 작품을 모티브로 쓴 동명의 소설이다. 베토벤이 작곡한 이 바이올린 소나타는 이름에 관해 흥미로운 사연이 있다. 원래 이 곡은 베토벤이 친구를 위해 작곡하고 둘이서 초연까지 마쳤다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