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확산으로 연기되었던 초·중·고 등교가 지난달부터 진행되었다. 여론을 보면 집단감염이 전개되는 수도권에서라도 등교를 멈춰야 하는 것 아닌가, 입시가 그렇게 중요하냐는 이야기가 나온다. 실제로 학부모 설문을 하면, 결과는 의아하게 나오기 일쑤다. 등교를 희망하는 학부모가 많았다. 입시와 연계된 고·중3의 학부모만 그러리라 여겨졌지만, 실제로는 다수가 아이의 등교를 바랐다.몇 달 전 SNS에서 많은 사람에게 회자된 포스터 한 장을 봤다. 어느 집 엄마가 써 놓은 ‘코로나19 방학 생활 규칙’이었다. 5개의 조항은 “주는 대로 먹는다” “TV 끄라고 하면 당장 끈다” “사용한 물건 즉시 제자리” “한 번 말하면 바로 움직인다” “엄마한테 쓸데없이 말 걸지 않는다”였다. 말 안 들으면 “피가 ‘코로 나..
검은 뿔테 안경을 처음 쓴 건 중학교 2학년 때였다. 참 가소로운 치기였다. 칠판 앞에서 코끝으로 내려온 안경을 검지로 슬쩍 밀어 올릴 땐 텔레비전이 아니라 공부 때문에 눈이 나빠졌다는 은근한 자부가 있었던가. 얼굴에 부착하는 이물질이 안경으로 족하려니 했는데 난데없이 마스크가 들이닥칠 줄은 예전엔 미처 몰랐다. 한번 나빠진 시력을 다시는 돌이킬 수 없듯 잠깐 쓰고 벗을 마스크가 아니다. 이 얄궂은 물건이 찰거머리같이 오래 들러붙을 것이란 불길한 예감. 이 마스크 한 장의 사회학을 어찌해야 하나.어수선한 나날들 속에 또 하루는 새로 시작된다. 버들개회나무의 개화를 관찰하러 화천 가는 길. 청정한 이 지역에도 현수막이 요란하다. 탐사 계획을 몇 번 미룬 탓에 시기를 놓쳤을까, 불안함을 내내 떨치지 못했다...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원내대표가 3일 “법이 정한 날짜에 국회를 연다”고 밝혔다. 미래통합당의 동의가 없어도 5일 본회의를 열어 국회의장단을 선출하겠다는 것이다. 원구성 협상 타결 후 개원을 주장하는 통합당의 주호영 원내대표는 이를 ‘히틀러식 독재’라며 반발하고 있다. 법정 시한 내 개원은 당연히 지켜야 한다. 늑장개원이란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자는 주장도 맞다. 문제는 177석 거대여당 민주당의 협상 의지와 태도다. 여야가 함께하는 시한 내 개원을 성사시키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민주화 이후 원구성은 교섭단체 간 협상으로 이뤄졌다. 그런데 민주당은 18개 상임위원장을 모두 가질 수도 있다고 엄포를 놓고 있다. 제1야당의 주장은 아우성 정도로 취급한다. 협상전술이겠지만 지나치다. 일하는 국..
코로나 시대를 어떻게 견뎌야 할까. 지난 세기의 책 속에서 몇 가지 그림을 찾아볼 수 있다. 1348년 이탈리아의 피렌체에 치명적인 흑사병이 돈다. 감염되면 사타구니와 겨드랑이에 달걀 크기의 종기가 생기고 온몸에 반점이 나타난다. 증상이 보이면 예외 없이 며칠 안에 죽는다.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사망자가 나오는 가운데 온 도시가 혼란에 빠져든다. 절제된 생활을 하면 병이 피해갈 것이라고 여기고 무리를 지어 은둔을 하는 사람들, 어차피 닥쳐올 죽음을 면할 수 없다고 생각해서 음주와 방탕으로 불안을 달래는 사람들을 뒤로하고 열 명의 선남선녀가 시골 별장으로 표표히 떠난다. 조반니 보카치오의 은 이 귀족들이 각자 하루에 하나씩 열흘에 걸쳐 풀어놓는 이야기를 모은 것이다. 중세사회의 모순에 대한 날카로운 묘사..
고인돌은 시신과 유물을 묻고 그 위에 큰 덮개돌을 올린 구조물을 일컫는다. 덮개돌의 무게는 보통 10t 미만이지만, 큰 것은 100t이 넘는 것도 있다고 한다. 고인돌이 만들어진 건 청동기 시대라는데, 그 시절 그렇게 큰 돌을 구하기도 쉽지 않았겠지만, 더 어려운 것은 그 돌을 무덤까지 옮기는 과정이었다. 실험 결과 1t짜리를 옮기는 데도 20명가량이 필요했다니, 100t이 넘는 돌을 옮기려면 정말 많은 인력이 동원됐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고인돌이 많이 발견되는 나라로, 지금까지 남한에서만 3만여기가 발견됐다고 한다. 우리 조상들은 대체 왜 이리도 많은 고인돌을 만들었을까? 무슨 대단한 쓸모가 있는 것도 아닌 것 같은데. 건축학자 유현준이 쓴 를 보면 그 답이 나온다.ㄱ이라는 부족이 정복을 위해 ..
어느 스님의 말씀이라고 전해 들은 말. 나이 마흔부터는 항상 보따리 쌀 준비를 하고 살아라. 이는 나를 정확하게 겨냥하는 듯해서 지금도 가슴에 고이 얹어 운반하는 중이다. 한번 꽂히면 그것만 보이듯 학교나 공항에서 가방, 아니 보따리가 유독 눈에 들어오기도 했다. 산에서 만나는 곤충이나 벌레들은 몸 하나가 그대로 집인데 사람이란 집 말고 따로 보따리를 든 존재가 아닐까.벌써 유월. 그 첫날을 붙잡으려니 올해의 절반을 낭비한 느낌이다. 계절 감각은커녕 코로나19에 짓눌려 언제 여기까지 왔는가 싶기도 하다. 현충일도 묵상할 겸 일요일 오후에 현충원을 거닐었다. 조금 숙연한 기분으로 정처 없이 걷다 보니 호국지장사. 연혁을 보니 현충원의 지장사가 아니라 지장사의 현충원이라 해도 될 만큼 아주 오래된 절이다. ..
21대 국회가 4년의 대장정에 올랐다. 임기 시작과 개원일은 법에 정해져 있어 닻을 올리긴 했으나 언제 등원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국회 문은 아직 닫혀있어 행정부나 사법부 소속 공무원이 임기 시작과 동시에 일터로 출근해 본연의 업무를 시작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최대 의석 차 여대야소의 입법 지형이 다를 뿐 국회 개원 언저리의 모습은 여느 때와 다를 바 없다. 개원을 앞두고 여야가 상임위원장 배분을 두고 벌이는 대치국면과 지각 개원 우려는 익숙한 풍경이다. 여야 모두 20대 국회가 대통령 탄핵이라는 역사를 쓰고도 최악이라는 오명을 받은 만큼 일하는 국회에 대한 공감대는 형성되어 있다. 180석의 여당은 독자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아 개혁 입법에 박차를 가할 것이고 쪼그라든 야당은 존재감을 드러..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어느 매체에서 느닷없이 10년 전 한명숙 전 총리 수뢰 사건의 기억을 끄집어냈다. 당시 재판에서 검찰이 증인들의 증언을 조작했다는 것. 증언을 조작당했다는 당사자들이 언론 인터뷰에 나서고, 이를 신호탄으로 여기저기서 사건을 재수사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한명숙 전 총리에 동병상련”을 느낀다며 그 사건의 “재심운동을 응원”하겠다고 밝혔다. 실제로 당시 검찰 수사는 명백히 정치적이었다. 1심에서 무죄가 나오자, 검찰에서 바로 ‘별건 수사’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누가 봐도 눈앞에 닥친 서울시장 선거에 영향을 끼치려는 정치적 기동임에 분명했다. 오죽하면 당시 여당인 한나라당 소속 김성식 의원마저 적어도 선거가 끝날 때까지라도 수사를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겠..